이미지 트레이닝
바와 센터에서 다리의 움직임이 능숙해지면 폴 드 브라가 섞이기 시작한다. 처음 배울 때 다리와 팔을 각각 움직여야 하니 머리가 도는 거 같았다. 치매자가진단검사 하는 기분이랄까.. 단순히 팔만 움직인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놀랍게도 지금도 그렇다. 팔을 누군가가 옆에서 잡아 뽑는다고 생각하며 노력해야 제법 자연스러운 팔 동작이 나왔다. 선생님의 움직임을 똑같이 따라 해 보면서 차이를 발견했다. 선생님들은 피어나는 나팔꽃 같고, 나는 피어나긴 하는데 뭔가 굽은 할미꽃 같았다. 단순한 형태 묘사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예쁜 꽃이다.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솟은 승모근과 굽어있는 어깨, 앞으로 튀어나온 목이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백날 팔을 예쁘게 써도 몸의 본체가 굽어있으면 원하는 느낌이 나지 않는구나.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어서 개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선생님이 수업 중에 핸즈온을 해주시다 종종 내 뒷목을 잡아 쭉 뽑아주셨다. 그때마다 어린 시절 애들끼리 하던 서울구경이 생각났다. 여기서 응용해 '셀프 서울구경'을 습관화했다. 누가 뒤에서 머리를 잡아 뽑는다고 상상하면 저절로 턱을 당기고 정수리는 천정으로 향하며 교정이 된다. 내가 거북목이다 싶을 때 반사적으로 서울구경을 떠올리며 자세 교정을 했다. 미세하지만 고개만 곧아도 폴 드 브라가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다.
팔동작 앙오는 당당히 두 팔을 하늘로 든 자세인데, 내가 하면 무언가를 굽어살피는 느낌이 들었다. 위에서 말한 할미꽃 딱 그 모습이다. 선생님이 연신 등!! 을 외치고 목을 뽑아 올려줘도 교정은 잠시, 다음에 앙오를 하면 똑같았다. 어느 날은 나를 붙잡아두고 굽은 어깨를 편다는 생각을 버리고 과감히 "자 내 겨드랑이를 보시오!" 하고 만천하에 겨드랑이를 보여준다 생각해 보라고 하셨다. 민망했지만 시도해 보니 효과가 대박이었다. '앙오 = 겨드랑이 공개' 이런 맥락으로 몸을 쓰니 일주일 만에 자세가 좋아졌다는 칭찬을 들었다. 역시 자극적인 것이 효과는 빠르다.
백 깜블레(Back cambre)는 표면적으로 보면 '허리 유연성이 엄청나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척추의 신이 보면 "제발 그만!!!!" 하고 외칠지도 모른다. 깜블레는 허리가 휘는 게 아니라 몸통(Core)은 단단히 잡고 브라(브래지어) 후크 라인 윗부분만 젖히는 것이다. 깜블레를 할 때 내 브레지어 후크 위치를 생각하면 훨씬 바르게 쓸 수 있다. '백 깜블레 = 브래지어 후크' 이렇게 직관적으로 떠올리면 쉽다. 물론 동작은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해내려면 등 근육을 키우고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이건 앞에서 설명한 폴 드 브라와도 연관이 있는데, 등 근육이 굽은 어깨와 승모를 잡아줘 몸이 더욱 곧아진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 살아가면 어쩔 수 없이 어깨가 굽고 승모근이 솟을 수밖에 없다. 승모근 스트레칭도 효과가 있지만, 등 운동이 병행되면 시너지가 일어나 효과가 더욱 좋다. 폴 드 브라와 백 깜블레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다양한 운동 중 개인적으로 정말 기피하는 등 운동이 하나 있다. 내가 다닌 모든 발레 학원에서 해본 적 있는 바로 2인 1조로 하는 이 운동이다.
사진 속 멀리 거울에 비치는 사람들이 바로 현실이다. 낯선 사람의 다리에 내 궁둥이 깔고 앉는 것도 마음이 불편한데, 앞사람의 버둥거림이 미래라고 생각하면 더욱 암담하다. 파트너가 훅훅 잘 올라오면 멋지고 대단하지만, 돌아올 차례가 부담스럽다. 반면 파트너가 낑낑거리면 응원해 주고 싶은데, 어색한 사이니까 눈빛으로나마 격려를 표한다. 어찌 되었든 부담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학원에서 언제부터인가(코로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안 하게 되어 너무 좋았다.
학원을 옮기고 수업시간에 2인 1조로 짝지으라는 소리에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어색하게 엎드려있는 파트너에게 가서 조심스레 내 궁둥이로 깔고 앉았다. 미안한 마음에 몸에 힘주며 슬쩍 앉았더니 선생님이 "푹 앉아서 꽉 잡아주세요." 하셨다. 하긴 내가 꽉 눌러앉아 고정해야 몸 들어 올리기 수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서 상체 들어 올리기를 열 번 했다. 보면서 '아… 정말 하기 싫다.' 생각했다. 교대하여 내가 엎드렸다. 그분은 내 다리 위치를 잘 잡아 안전하게 잡아주셨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넙치처럼 파닥거리며 열 번을 해내고 있는데, 선생님이 "열 번 더!" 하며 "열 하나"를 외치셨다. 배신감이 치밀어올라 "으악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하고 털썩 엎드려버렸다. 그리고 혼날까 봐 무서워서 '열셋'부터 다시 낑낑 몸을 들어 올렸다. 전공하는 아이들은 혼자서 막 몸을 올려재끼는 데 그 아이들 등에는 뭐가 붙어있는 게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파닥거렸다. 힘들게 근육을 자극해서 그런가.. 그날따라 백 깜블레가 잘 되었다. 그래서 시키는 건가 보다.
발레를 10년쯤 하면 나팔꽃 같은 폴 드 브라와 세상 판판하고 곧은 몸을 갖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약간의 경각심을 가진 라운드 숄더와 거북목을 가지게 되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을 몸에 새기고 살아서 그런가... 나의 폴 드 브라는 여전히 겸손하고 겸손하다. 언제쯤 당당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