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발레 하는 쿠크다씨

에스메랄다를 배워보자 3

by 쿠크다

누가 보면 오디션 준비하는 사람인 줄 알 정도로 정말 열심히 순서를 외웠다. 확실히 효녀가수 현숙만큼 탬버린 많이 흔들었던 거 같다. 그리고 약 한 달 만에 진도를 따라잡아 같이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도 같이 배우는 수강생들도 진짜 빨리 외웠다며 신기해했다. 이제야 마음 편히 배울 수 있겠다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피날레를 배우는 시간. 파이널 동작은 아래와 같다.


내 마음대로 네 단계로 나누어보면 이렇다.

Step1. 탬버린을 관중을 향해 흔들며 무대 구석으로 가서 준비하기

눈으로는 레이저를 쏘며 강렬하게 흔들면서 이동해야 한다. 여전히 난 탬버린과 내외 중이라, "제가 이걸 좀 흔들고 지나가겠습니다..." 이런 느낌으로 흔들면서 구석으로 사라진다.

이런 강렬한 포스가 필요하다


Step2.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린 탬버린을 발끝으로 과감하게 차올리기.

탬버린을 높이 들고 허벅지를 그 높이까지 최대한 끌어올려 탬버린에 발끝을 붙인다는 생각으로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선생님은 팡팡 발로 차는 게 아니라 사진 찍힌다 생각하고 다리를 들어 올려 발끝이 탬버린에 머물러야 한다고 강조 또 강조하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어깨 높이까지 다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다리를 올리지 못하고 탬버린을 점점 내리고 있었다. 선생님이 큰 소리로 "자 이제 찰칵! 찰칵! 머물러야 됩니다! 누가 찍는다! 찰칵!" 외친다. 그럼 또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내가 반드시 탬버린을 차야겠다!' 하고 발로 팡팡 차면 찰칵 찍히지도 못할뿐더러 '탬버린 격파쇼'가 된다. 실제로 탬버린 뚫은 사람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Step3. 점프로 높고 멀리 날아오르기.

격파쇼를 끝내면 맞은편 무대 앞으로 그랑 줴떼를 뛰어야 한다. 마지막을 향한 도약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 그랑줴떼를 뛰기 전에 도움닫기처럼 샤쎄(chasse)를 뛴다.

샤쎄 (Chasse)
한쪽 발을 다른 쪽 발이 쫓아가는 듯하므로 ‘쫓는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두 무릎을 굽힌 채 어느 방향으로든 발을 미끄러뜨리는 것. 이때 무게 중심은 두 발 사이에 고르게 남아 있어야 하며 양쪽 발이 동시에 마룻바닥을 떠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샤쎄 [chassé] (발레용어사전, 2011. 9. 5., 메디컬코리아 편집부)-

처음 수강생들의 샤쎄를 보고 선생님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겨울 왕국 1에서 엘사가 렛잇고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 문을 여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엘사가 문을 "아.. 예.. 저 엘산데요.. 내버려 두라고 소리 좀 지를 건데.. 이 문 좀 열어도 될까요..." 하며 열지 않는다. 콰광하고 문을 박차고 두 팔을 벌리고 세상을 다 씹어 먹을 것처럼 문을 연다.

샤쎄도 몸을 T자로 만든다 생각하며 두 팔과 몸을 과감하게 뻗고 도약을 해야 다음에 뛰는 그랑줴떼도 훨씬 높고 멀리 뛸 수 있다. 그랑줴떼가 완벽하지 않아도 샤쎄에서 자신감만 충전하면 충분히 전달력이 생긴다고 한다. 샤쎄 뛰기 전에 엘사를 떠올린다.


Step4.'자 이렇게 카리스마 있는 나를 봐!' 하며 엔딩 포즈로 마무리.

그랑줴떼를 높이 뛰고 앉은 자세로 착지하여 엔딩 포즈를 하면 된다. 처음 다 같이 뛰고 착지하는 순간 슬개골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쿠궁 쿠궁 마치 천둥소리 같았다. 음악의 마무리와 함께 다들 무릎을 부여잡았다. 우리의 그랑줴떼 뒤에 선생님의 "무릎 조심!!" 하는 소리가 따라왔지만, 다들 늘 히어로처럼 착지했다. 피날레를 배우고 난 뒤 다들 오른쪽 무릎에 멍이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연습 시작 전 다들 보호대를 차거나 워머를 둘둘 말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무릎을 보호했다. 그 후 나도 황급하게 보호대를 착용했지만 좌우를 잘 구분 못하는 사람인지라 왼쪽 무릎에 차고 오른쪽으로 쿠쿵!! 착지하며 좌절을 맛봤다. 무릎이 너무 아파서 K-유교 에스메랄다 권법을 쓴다. 줴떼를 뛰고 세배하듯 조신히 무릎을 내려놓는 권법이다. 모두의 슬개골, 그중에 내 슬개골도 소중하니까.


다 같이 피날레 부분을 배우고 처음부터 해보기로 했다. 각자 나름대로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음악에 맞춰 시작했다. 문제가 생겼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어 주변 시야 확보가 안된다는 것이었다. 옆 사람이랑 부딪힐 뻔할 때도 있고, 동작을 하다 인기척이 느껴져 옆을 보면 누군가가 바싹 붙어있어 손잡고 함께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발에 차일까 봐 무서워서 나는 몸을 세로로 접으며 탬버린을 조심스럽게 내 몸에 품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피날레 점프까지 가기도 전에 누구 하나 다칠 거 같으셨나 보다. 축구장 심판처럼 중단하고 '스페이싱'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스페이싱을 배우기 전에 기본적으로 몸 방향의 번호를 알아야 한다. 거울을 향한 나를 기준으로 방향마다 번호를 매긴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2번 방향' 했을 때 얼굴만 그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 얼굴, 가슴, 골반이 통째로 그 방향을 향해야 한다. 바 수업에서도 몸 방향 쓰는 법을 배운다. 선생님들이 "몸 방향 1번에서 2번으로~" 이렇게 설명하면 전반적으로 수강생들은 '음 그래서 2번이 어디지..'하고 버퍼링이 걸린다. 이걸 몇 번 당하면 선생님들은 "정면에서 에어컨 쪽으로~", "정면에서 맞은편 삼겹살집 방향으로~" 쉽게 풀어주신다. 나중에는 '정면~삽겹~정면~'하며 구호가 바뀌었는데, 발레학원에서 퍼지는 '삼겹'이라는 단어는 매번 들어도 어색했다.



'스페이싱'은 공간을 쓰는 공식을 배우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무대에서 같은 동작을 하지만 각자의 동선 이동으로 합을 맞추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무대 어디쯤에서 시작해서 움직이느냐에 따라 점프를 뛸 공간도 확보된다. 독무인데 스페이싱 없이 보폭을 좁게 해서 공간을 좁게 써버리면 큰 무대 가운데서 알짱거리게 되고, 동작이 아무리 화려해도 볼품이 없어진다. 군무에서도 마찬가지로 각자 제멋대로 움직여 위에서 말했던 상황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선생님은 첫 포즈를 잡는 위치 바닥에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주셨다. 그리고 동작에 따라 어디로 이동해야 하는지, 시선을 어디를 바라보며 움직여야 하는지 하나하나 알려주셨다. 중간에 놓인 시계부터 에어컨 숫자판, 요가 블록, 맞은편 건물 간판의 숫자 모든 것들이 총동원되었다. 설명을 들으며 나도 머릿속으로 과거 삼겹살 외우듯 외웠다. 동작에 맞는 스페이싱을 배우고 함께 연습실에 섰다. 다들 각자의 공간을 가진 듯 전혀 부딪히지 않고 그랑줴떼부터 엔딩 포즈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스페이싱까지 배우고 난 뒤, 수업할 때마다 한 명씩 에스메랄다를 했다. 눈으로 볼 때는 소요시간이 짧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할 때마다 숨이 터져나갈 것 같고 무릎도 아작 나는 것 같았다. 다들 헉헉대며 기진맥진 상태로 마치고 나면 선생님은 "마무리로 한 번씩만 더 해봅시다."를 반복하셨다. 너무 힘들어서 원망스러웠던 순간들도 많았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다시 엔딩까지 마무리하면, 느껴보지 못한 쾌감도 느낄 수 있다. 엄청 더운 날 제일 시원한 맥주를 마신 듯 시원하고 짜릿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런 매력으로 무대에 오르나 보다. 엄마라는 자리는 항상 주변에 레이더를 곤두세워야 하는 자리이다. 늘 가족 구성원의 삶을 향해 레이더를 돌려야 해서 정작 내게 몰입할 여유가 없다. 학원에서 발레를 하면서도 사실 '내일까지 해야 하는 일이 뭐가 있지.' '아이 아까 기침하던데, 내일 병원을 가봐야 하나.'같은 고민의 레이더는 항상 곤두섰다. 그 틈 사이로 나를 위해 탬버린을 잡았던 그 순간들. 현실을 유교걸이지만 마음만은 자유로운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였다. 돌이켜보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좋았다. 몰입하는 삶이 참 오랜만이라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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