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의 씨앗
어머니는 각종 모임에 다녀오면 다른 집 자식들과 나를 비교했다. 그 시절 모임은 왜 그렇게 많은지... 다른 집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를 듣고 있으면 '엄마가 되면 비교하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같은 반에 모두가 좋아하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고 예쁜 친구가 있었다. 나도 정말 좋아하고 동경했었는데 처음으로 미워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우리 엄마가 하도 너랑 비교해서 너를 미워했었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게 생각난다. 어머니는 그 비교를 듣고 딸이 좀 더 나아지길 바란 것이겠지만 내 안에 반항만 잔뜩 심겼다. 비교는 성장의 비료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며 어른이 되었다.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를 매개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있을 일이 의도치 않게 정말 많다. 자연스럽게 내 아이와 다른 아이, 나와 다른 엄마의 다른 점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비교가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하며 어머니를 조금은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눈에 비교되는 무언가가 보여도 내뱉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려고 무한히 노력한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그 노력이 많이 해이해졌다. 학기 초 학부모 모임에 다녀와 나도 모르게 다른 집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부를 뻔했다. 눈치 빠른 아이는 "옆에 있는 사람은 나인데 왜 다른 애들 얘기를 해?"하고 느슨해진 나에게 경각심을 줬다. 비교는 방심하면 훅 찾아온다.
비교의 씨앗을 자기 자신에게 심으면, 오래 지켜왔던 노력은 쉽게 무너지고 무한대로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오래전 처음 발레학원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배울 사람들을 쭉 훑어보고 선생님도 어떤 분일까 괜히 추측했다. 둔탁한 몸뚱이로 혼자 낑낑대는 동안 이 사람 저 사람 흘긋거리면서 능숙한 사람을 동경하고 미숙한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반갑기도 하고 동시에 경계심도 들었다.
오래 배운 고수의 기운을 풍기는 수강생이 오면 더욱 그랬다. 흘끔 훔쳐보며 '저렇게 되려면 얼마나 해야 할까?' 혼자 질문 리스트를 짰다가 정작 마주치면 쓱 눈을 피하고 결국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괜히 '나는 왜 오래 해도 이 모양일까..' '나는 왜 발전이 없을까.' 한탄하고 나를 질책한다. 아이러니하게 그렇다고 딱히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 짓거리를 참 자주 오랜 시간 해왔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발레 한다고 하면 누가 내 몸이라도 훑어볼까 두려워서 헬스 한다고 뻥치며 살았다. 발레를 발레라 부르지 못하고 마치 홍길동의 아버지 같은 존재랄까.
한창 발레 홍길동으로 살아갈 때, '나 알아가기'라는 주제로 글쓰기 수업을 받은 적이 있다. 짧지 않은 시간 자문자답하며 스스로를 탐구하고 글로 써 내려가면서 많이 울고 웃었다. ‘나 발레 해요!’ 당당히 고백을 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연습실 거울에 비친 다른 사람들을 보며 나를 깎아내리는데 열중했던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참으로 바보 같아 부끄러웠다. 그 공부가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거울로 다른 사람들만 힐끗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직 거울 속 나만 마주하고 내 움직임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교의 방향이 바뀌니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다. 도움이 될만한 스트레칭이나 운동을 찾아서 해보고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도 하기 시작했다. 월등한 발전이 없어도 미세하게 나아지는 움직임에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며 발레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힘 또한 많이 자랐다. 발레에 대한 호감이 사랑으로 바뀌었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여러 개의 가치들을 발레가 밑에서 탄탄하게 받쳐줘 안정감을 느꼈다. 발레가 희로애락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내면의 아지트가 되었다.
삶의 일부라고 여길 정도로 애착이 강해져서 그런가 종종 이상기류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그 든든함이 예상치 못하게 크게 자라나 나를 잠식했다. 사랑도 과해지면 집착이 생겨 잘못된 방향으로 가듯 자신에게 과도한 엄격함이 생겨버린다. 가장 컨디션이 좋았던 나를 기준으로 삼아 또다시 끊임없이 비교를 했다. 따지고 보면 컨디션이 좋았었다고 딱히 대단했던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연차가 쌓이면서 꼴에 눈은 높아져 발레 영상이나 사진에 나오는 이상적인 발레리나들 모습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했다. 얘랑 비교하고 쟤랑 비교하고 혼자 비교하고 난리통이 따로 없다. 그 이상기류를 온몸으로 느끼고 매번 속앓이를 하며 고통받았다. 골백번 속앓이를 해보니 이제는 ‘비교의 덫이 또 오는구나. 정신 차리고 거울로 현실을 직시하자.’ 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생각해 보면 ‘비교’는 잘못이 없다. 모든 세상 만물이 똑같을 수 없고 하물며 쌍둥이도 차이점이 있기 마련이니까. 내 손에 쥐어진 비교의 씨앗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거나 마구 뿌리고 다니거나, 아니면 내 안에서 왕창 키워서 스스로 잠식당하거나… 다 겪어보니 고통이었다. 그 씨앗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장의 발판으로 쓰고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발레로 코어 근육 단련하듯 나는 발레로 멘탈을 수련한다. 나무아미타발레…(불교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