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
발레를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에게 피와 땀, 눈물은 흔하고 당연히 품어야 하는 것들이다. 그들의 노력과 간절함, 절실함의 또 다른 말이 아닐까. 방송에서 발레리나 강수진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치열하게 연습에 매진하다 보니 발 상태는 엉망 되어버렸고 무대에 오르기 위해 발에 생고기를 덧대고 작품을 해냈다고 한다. 무대에서 내려와 보니 생고기의 피가 토슈즈를 적셨다는 이야기는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 같다. 나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 모두 잦은 부상으로 늘 아픈 부위가 하나씩 있었다. 해맑게 웃으며 흉터를 보여주거나 특정 동작을 할 수 없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들에겐 부상은 너무나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를 사랑하는 마음을 접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아팠다.
전공생들 콩쿨 시즌이면 학원은 더 분주해진다. 그래서 아이들의 피, 땀 눈물을 가까이에서 접하고 있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친구도 작은 물통에 담긴 셰이크로 끼니를 때우며 신체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새 모이도 안될 거 같은 그거 먹고 또 연습은 엄청 한다. 그럴 때는 엄마의 마음이 되어 짠하고 속상하다. 콩쿨이 다가올수록 핼쑥해지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빠지는 살에 살짝 혹해서 다가가 "친구야 그거 어디서 산 거라고?" 하며 셰이크 정보를 물어본 적도 있다.
2분 남짓한 음악에 맞춰 같은 작품을 매일매일 연습하는 아이들을 보면 어린 친구들임에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잘 안 되는 동작을 연습하다 성에 안 차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는 그런 모습들이 해이해진 나의 삶에 기강을 잡아주기도 한다.
그런 의미들과 다르게 나는 발레를 하면서 피와 땀,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던가. 땀은 지금은 사시사철 흘리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하다. 체질이 바뀐 것 같다. 땀이 잘 안나는 체질이었고 발레 시작 초반에는 수업 끝날 무렵에야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쁠리에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그랑바뜨망 할 때면 땀이 온몸에 흐르는 게 느껴진다. 끝날 때쯤이면 땀으로 샤워를 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땀샘 버튼이 제대로 눌렸는지 요즘은 이게 땀인지 눈물인지도 모르게 줄줄 흘리며 발레를 한다. 쉬는 텀에 수건으로 닦아내도 또 땀범벅이 되어서 의미 없다. 원장님이 자세 잡아주느라 내 몸을 잡으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하다. 장갑이라도 끼셨으면 좋겠다 말씀드렸더니 일상이라고 괜찮다고 하시는데 과연 괜찮을까.
나의 눈물 버튼은 발레를 못하게 되었을 때 눌리는 편이다. 당장이라도 누가 '발레 금지' 하면 울 것 같다. 발레 가기 전에 열받는 일이 생기지 않는 이상 발레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는 것 같다. 토슈즈를 작은 사이즈로 잘못 신고 처음 스텝을 배웠던 날 아파서 눈물을 흘렸었다. 엄지발가락을 절구로 찧는 느낌이었다. 오지게 아프다를 넘어선 고통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멀쩡하고 나 혼자 울 때 잘못된 걸 알아챘어야 하는데, 내가 인내심이 없는 줄 알고 억지로 신고 버텼던 무식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부터 토슈즈를 싫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만약 언젠가 발레를 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면 고통의 눈물이 아닌 감격, 기쁨의 눈물이길 바란다.
발레를 하다 피를 본 적이 한번 있다. 연습을 너무 많이 해서 발가락 살이 벗겨져서 피가 났다면 영광의 상처겠지만... 예상외의 신체에서 피를 봤다. 가끔 두피나 등에 엄청나게 강력한 에너지를 품은 뾰루지들이 있지 않은가. 언젠가 그 에너지를 등에서 느꼈었다. 내 등판까지 신경 쓰며 살아가지 않으니 그 뾰루지가 꽁꽁 뭉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으로 자라난 걸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발레를 하는데 바 뒤에 서있던 분이 "쿠크다씨! 등에서 피 나!" 하는 걸 들었다. 등을 펴라는 소리인 줄 알고 더욱 등에 힘을 주고 꼿꼿이 섰다. 그분이 휴지를 주섬주섬 가져오더니 "피난다고..." 하며 내 등판을 틀어막았다. 곯아있던 뾰루지가 매트 운동하려고 누워 등을 자극해서 터진 모양이었다. 태어나서 코 피조차 난 적 없는데, 등에서 피가 나는 희한한 경험을 발레 하며 겪었다.
사실 나의 발레는 이상하고 엉뚱한 곳에서 피 땀 눈물을 흘린다. 셋 다 흘리지 않는 삶이 쾌적하고 행복하겠지만 발레와 쾌적함은 공존할 수 없는 것 같다. 발레를 하며 피와 땀을 보는 노력, 간절함과 절실함에 흘리는 눈물도 겪어보고 싶다. 콩쿨 연습하던 아이들이 들으면 '저 아줌마 배부른 소리 하고 있잖아!' 하며 노할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조용히 글을 마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