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슈즈 길들이기
토슈즈 수업은 정규 수업 뒤에 짧게 진행되었다. 도착한 택배 상자를 연습실 가운데에 놓고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포장을 벗겨낸 토슈즈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평평한 덧버선 같아 낯설었다. 이제부터 길들이기(부수기)는 온전히 신는 자의 몫이다.
먼저 발목 고무줄과 리본은 발목에 묶을 때 헐렁거리지도 조이지도 않을 위치에 볼펜으로 살짝 표시하고 꿰맨다. 날것의 토슈즈를 발 아치 모양에 맞게 손으로 꺾어준다. 쉽게 꺾이지 않아서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들었던 방법 중 가장 기발했던 건 문 경첩 사이에 끼우고 문을 닫아 토슈즈를 꺾는 것이었다. 이건 초보자는 힘 조절이 어려우니 함부로 따라 하다 신어보지도 못하고 토슈즈가 망가질 수 있다고 선생님은 따라 하지 말라고 했다. 앞부분의 토 박스도 새것은 엄청 딱딱하다. 그냥 신으면 작은 박스에 발을 구겨 넣는 느낌이 든다. 처음엔 체면 차리느라 손으로 조물조물 만지다가 영 진전이 없어 바닥에 냅다 때리게 된다.
여기까지는 내가 배웠던 방법과 같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토박스 꿰매기였다. 예전에 배울 때, 토 박스 꿰매는 건 선택사항이라고 따로 배우지 않았다. 이번 선생님은 토박스 꿰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 방지 때문이었다. 입문자들은 수업 시간이 지날수록 아프고 힘들어 몸을 잘못 사용해 다칠 확률이 훨씬 크다. 두 발 자전거 배울 때와 비슷하다. 균형 잡는 게 힘들다고 몸에 힘을 풀어버리면 자전거가 휘청거리다 쓰러져 넘어진다. 자전거를 토슈즈라고 생각하면 토박스 꿰매는 것은 토에 보조바퀴를 달아주는 격이라 생각하면 쉽다. 토 박스가 안정감 있게 설 수 있도록 슈즈 자체에서 잡아주는 것이다. 박스를 꿰매 토슈즈에 가이드라인이 잡혀있으면 '내가 잘못 섰구나.' 하고 바로 인지하여 교정도 가능하다.
꿰매는 정해진 방식은 없다고 하셨다. 정해진 룰이 없다는 말은 발레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몸의 마디마디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고 계산하며 움직였던 나는 아싸 그냥 맘대로 꿰매면 되는 건가!! 하고 신이 났다. 안타깝게도 입문자에게는 자유는 적용되지 않았다. 토슈즈가 소모품이라 프로 무용수들은 공연이 있으면 하루에 서너 켤레씩 갈아치우기도 한다며, 본인이 했던 수많은 방법 중에 가장 쉽고 간단하게 끝내는 방법을 알려주신다고 하셨다. 일명 '한 바퀴로 끝내기'였다. 보통 바늘에 실을 엮으면 두 가닥으로 꿰매게 되는데, 탄탄하게 두 바퀴를 돌려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바늘에 두 가닥 실을 넣어 한번에 네 가닥으로 한 바퀴만 꿰매면 간단하다는 설명이었다. 나의 토슈즈를 시범 삼아 선생님이 한 코 꿰매는 걸 보여주셨다. "이렇게 바늘을 넣어서~ 요렇게 이렇게 안쪽으로 돌려 빼면 끝! 이걸 한 바퀴 하시면 됩니다." 하는 순간, 주변에서 ‘저기 한 번만요.’ ‘다시요.’ ‘못 봤어요.’ ‘천천히요.’가 줄줄이 터져 나왔다.
몇 번의 설명 끝에 다들 방법을 터득했고, 나도 토슈즈를 건네받고 바늘을 잡았다. 막상 해보니 보통의 바느질이 아니었다. 꿰매야 할 토 박스는 너무 딱딱하고 바늘이 통과해야 하는 천은 자칫하면 찢어질 것처럼 유약했다. 게다가 네 가닥의 실을 품은 바늘은 또 너무 굵고 뭉툭해서 불가능과 겨루는 바느질 그 자체였다. 난관은 또 다른 데에 있었다. 제법 두꺼운 실 네 가닥을 바늘이 감당하지 못하고 바늘구멍이 부러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바늘이 부러졌고 학원에 있는 바늘들을 다 끌어 모아 쓰다가 결국 각자 집에서 각자 꿰매오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호롱불 켜듯 스탠드를 켜고 바닥에 앉아 배운 대로 바늘을 잡았다. 토슈즈 사이로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바늘은 빠질 기미가 없었다. 골무도 소용이 없었다. 고무장갑의 도움을 받으니 그나마 수월했다. 꾸역꾸역 꿰매다 세코 정도 뜨니 손목이 욱신거렸다. 빨리 끝내려고 욕심부리면 바늘도 부러지고 실도 끊어지고... 완전히 도 닦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바늘도 여러 개 사놓고 며칠을 토슈즈와 씨름을 했다. 차라리 두 바퀴 돌리는 게 바늘을 아끼는 길이 아닐까 생각했다. 어깨와 손목, 눈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틈날 때마다 토슈즈를 꿰매고 만지는 걸 본 남편은 '그럴 거면 DIY로 처음부터 만들어 쓰지 그러냐.' 하며 나보고 '갖바치'* 같다고 놀렸다. 웃프지만 맞는 말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고무장갑과 토슈즈. 조합이 신선하면서도 살림하며 발레 하는 나 같아서 친근감이 들었다. 꾸역꾸역 꿰매 나가는 바늘이 발레를 향한 내 마음 같아서 더욱 소중하게 다뤘다. 그 마음가짐 꿰매서 그런지 그날 이후로 바늘이 부러지지 않았다. 대신 토슈즈 천이 좀 많이 찢어졌다…
며칠에 걸쳐 꿰맨 토슈즈를 들고 선생님께 들고 가서 보여드렸다. 잘 꿰맨 토슈즈는 혼자 설 수 있다고 하시며 내 토슈즈를 바닥에 세우셨다. 신기하게도 토슈즈 혼자 우뚝 섰다. 서 있는 슈즈가 너무 신기하고 '자식 키워 독립시킨 느낌이 이런 걸까.' 싶을 정도로 뿌듯하고 대견했다. 너덜너덜 찢어진 부분은 함께 꿰맨 토 박스가 통째로 뜯어질 수 있으니 목공 풀로 잘 덧발라 말리라고 하셨다.
나의 슈즈 길들이기는 이렇게 끝났지만 프로 무용수들은 자신의 발에 더욱 잘 맞춰 오래 신기 위해서 더 많은 과정을 거친다. 슈즈를 오래 신기 위해서 토 박스 안쪽에 접착제를 바르기도 하고, 발에 딱 맞게 하기 위해 내부 밑창을 발 아치에 맞게 잘라내기도 한다. 또 마찰력을 높이려고 외부 밑창을 연장으로 벅벅 긁어낸다. 그래서 프로들의 발레가방엔 마동석 연장 가방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접착제, 망치, 칼 등 무서운 공구들이 들어있다. 세상 요정 같은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강력한 연장의 향기.. 그런 모습이 내가 발레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발레단 시절 공연 준비하며 하루 종일 발레 하고 집에서 토슈즈 꿰매고 뻗으면 다음날 아침이었다는 선생님께 나는'발레 하는 것도 힘든데 토슈즈 만드는 것도 발레리나 몫인 게 너무 가혹하지 않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며 항의 섞인 투정을 부렸다. 선생님은 모두들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는데, 예민하게 몸을 써야 하고 또 사람마다 발 모양이 다 달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예전보다 더 다양한 브랜드들과 발 보호 장비들이 생겨나면서 토슈즈의 세상도 많이 바뀌었다며 희망을 가져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다 부쉈으면 신어볼까요?" 하셨다.
그 환하고 부드러운 미소에 홀린 듯 슈즈를 신고 리본을 묶는 나를 발견했다. (이 타이밍에 튀었어야 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난 또 토슈즈를 신고 거울 앞에 서있었다. 수업을 한 달 남짓 착실하게 다녔다. 수업 첫날 발가락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고 이후엔 고통스러워했으며, 2주가 넘어가자 발가락도 정신줄을 놓았는지 감각이 없었다. 이렇게 마취가 되어서 발레리나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신는 건가.. 하며 적응하는 와중에 발을 다치게 되었다. 토슈즈는커녕 발레도 못 할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한참 뒤 학원에 복귀하니 토슈즈 수업이 사라져 버렸다. 역시나.. 토슈즈 수업은 쉽지 않다. 이제 내 인생에 토슈즈는 없다. 신으면 진짜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