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발레 하는 쿠크다씨

쿠크다스

by 쿠크다

한 때 가방에 과자 한두 개씩 넣어 다니며 꺼내 먹는 걸 좋아했다. 하루 종일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던 과자들은 어지간하면 모양이 멀쩡했는데, 유독 쿠크다스는 늘 부러져있거나 가루가 되기 직전이었다. 그 시절엔 포장 비닐 까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사방으로 뜯으려다 실패해 결국 가위로 잘라 가루가 된 쿠크다스를 입에 털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커피 향과 매력적인 과자가루 맛에 쿠크다스를 가방 속 과자멤버에 꼭 포함시켰다. 나는 초록색 쿠크다스가 최애다.


맨날 다치는 나를 보고 누군가 "아주 온몸을 뽁뽁이로 감고 다녀야겠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이 대여섯 살 때까지 정말 많이 다쳤다. 전복 손질하다 손목 인대 나가고 아이랑 줄넘기하다 발목 나가고…. 내 관절들은 왜 못 나가서 난리인가 싶었다. 팔다리 손가락 돌아가며 깁스를 해댔고, 나아진 기미가 보이면 위염 장염 등등 염병이 나 내과 질환으로 병원을 들락거렸다.

워낙 어릴 때부터 자주 다치긴 했다. 그땐 삶이 불편해졌구나 흑흑.. 하고 일시적 낙담으로 살다 어느새 나았던 것 같다. 발레가 인생을 점령하면서부터 부상이 찾아오면 하늘이 무너진다.


부상으로 치료를 시작하면 일단 발레를 쉬어야 한다. 내가 쉬고 싶어서 쉬는 거랑 어쩔 수 없이 쉬는 건 천지차이다. 처음엔 아파서 정신 못 차리다가 점점 살만해지면 좀이 쑤신다. 이때 몸을 사리지 않고 발레 하러 가면 장기전이 된다. 근질근질함을 잘 참아내다 보면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쉬기 전보다 근육도 빠지고 전보다 실력도 퇴보되어 있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 된다. 물러설 실력도 없으면서 말이다.


잦은 부상으로 터득한 것들이 많다. 다쳤을 때 찾아온 근육통이 천사인지 악마인지 구분하는 능력이 생겼다. 악마의 근육통일 때는 마음속으로 ‘동작 그만’ 호루라기를 분다. 48시간 이내의 통증은 냉찜질 이후의 통증은 온찜질. 그 이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면 꼭 병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의사의 발레 금지령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수용하지 못한 자는 몸에 만성 통증을 줄줄이 키링처럼 달게 될 것이다.(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한 번도 다치지 않고 발레 하는 사람이 세상에 실존할까. 만나보고 싶다.


'쿠크다씨'는 크게 다쳐서 오랫동안 발레를 쉬며 우울함이 초고조로 찍었을 때 떠오른 이름이다. 발레에 빠져서 오지게 부서지는 내 모습이 마치 가방 속 쿠크다스 같았다. ‘발레 하는 쿠크다씨‘ 외에는 아무 계획이 없었다. 부상당한 발이 나을 기미도 없고, 다시 발레를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편지 남기듯 글을 썼다. 글을 쓰며 발레에 대한 애정을 해갈하고 미련 없이 떠나보낼 예정이었다. 글로 발레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얀 메모장에 덩그러니 남겨져있던 쿠크다씨를 꺼내며 미련은 점점 커졌고, 미련왕이 되어 다시 발레를 시작했다. 발레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하며 다시학원 문을 두드렸다.


무의식적으로 담던 쿠크다스 상자에 눈길이 가 유심히 본 적이 있다. 왕실 벽에 있을 법한 큼지막한 무늬에 작은 글씨로 ‘쿠키의 명작’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약하기 짝이 없는 과자가 쿠키의 명작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쩐지 질리지 않게 맛있더라.

요즘은 잘 안 쓰던데… 한때 사람들이 정신 힘들 때 ‘멘탈이 쿠크다스처럼 바스러졌다.’라고 표현했었다. 다들 상자 속에 있느라 쿠크다스 상자를 못 봐서 그렇다. 다들 각자 인생의 명작을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이제부터 심신이 바스러졌다 느낄 때마다 상자 표지의 ‘쿠키의 명작’을 떠올리며 바스러져야겠다. 바스러지는게 또 쿠크다스의 매력이니까 단단해지진 않으련다.



작가의 이전글71 발레 하는 쿠크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