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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Oct 20. 2015

미드레벨의 시크릿 가든,
자미아 모스크

시크릿하지 않았다면, 특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홍콩별 여행자 08.

미드레벨의 시크릿 가든, 

자미아 모스크


미드레벨(Mid-Level)은 홍콩의 부자 동네들 중 하나다. 한 달에 수 백만 원에서 천 만원 이상을 넘나드는 월세를 내야만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런 까닭에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센트럴 근처의 외국계 금융기관에 근무하는 고액 연봉자이거나 홍콩 로컬의 고액 자산가들이 대부분이다. 


영화 <중경삼림>으로 유명해진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0분 정도 올라가면, 멋스러운 바와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소호 거리가 나타나고, 소호 거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고급 빌라와 초고층 아파트들이 모여 있는 미드레벨에 도착하게 된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본래 미드레벨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출퇴근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오전 출근 시간대에는 센트럴 방향으로 움직이고, 오후 퇴근 시간대에는 미드레벨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직장이 센트럴 근처에 있어 종종 이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소호 거리에 가서 점심식사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물론, 이 에스컬레이터의 끝은 당연히 미드레벨의 고급 아파트촌이었다. 


늘 익숙했던 소호의 복잡한 거리들을 지나 미드레벨에 가까워질수록 좀 더 한적해지고,  군데군데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눈에 띈다. 센트럴이나 소호 근처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차분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왠지 마음이 끌린다.



거의 미드레벨 근처에 이르렀을 때, 에스컬레이터 옆길로 멋진 철제 대문 하나가 눈에 띈다. 마치 유럽의 어느 고택처럼 멋스러운 문양으로 꾸며진 철제 대문이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페인트칠로 남아있는 듯, 녹슬고 빛바랜 색깔에 화려함은 덜했지만, 덕분에 깊이 있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 철제 대문을 열고, 조심스레 한 걸음 들어가 보았다. 


그 순간, 나는 순간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여 어느 비밀스러운 옛 저택의 정원에 발을 들여 놓은 것 같은 아련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오랜 세월에 걸쳐 돌담을 타고 이어져 자란 담쟁이 넝쿨과 돌계단을 녹색으로 물들인 이끼, 잿빛의 회색과 어우러진 푸르름이 아련한 세월의 흔적들을 느끼게 해 주고 있었다. 


이 비밀스러운 느낌의 입구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눈 앞에 연녹색의 사원이 나타난다. 바로 자미아 모스크(Jamia Mosque)다.


1840년대에 세워진 이 사원은 홍콩에 세워진 최초의 이슬람 사원이라고 한다. 1915년에 확장과 보수가 있었으나, 벌써 100년 가까이 이 자리에 이 모습 그대로 있었으니, 오랜 세월의 흔적과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처음 세워질 당시, 이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세운 것은 근처 경찰서와 감옥에서 근무하는 무슬림들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다 보면, 할리우드 로드 근처에서 영국 식민지 시대의 옛 경찰서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그 곳에 근무하던 무슬림들을 위한 사원이었을 것이다.




현재 홍콩에는 22만 명의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중에는 약 3만 명의 중국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위하여 홍콩에는 5개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데, 자미아 모스크는 네이든 로드의 이슬람 사원과 더불어 홍콩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 중 하나라고 한다.


나는 세월의 벽을 넘어 조심스러운 느낌으로 좀 더 깊숙한 정원까지 들어가 보았다. 기독교 신자인 나는 사원의 깊숙한 내부까지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사원의 근처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원의 내부도 한 번 슬쩍 들여다 보았다.


사원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홍콩의 도심 안에 이처럼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비밀스러운 느낌의 정원과 이국적인 느낌의 모스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사원의 옆에는 아주 오래된 건물 하나가 남아 있는데, 현재 용도는 알 수 없지만, 홍콩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건물이라고 한다. 홍콩에 흔치 않은 역사의 유산 중 하나이다 보니, 종종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와 함께 나타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건물일까 궁금하여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긴 하지만, 알 수 없는 광둥어로 ‘쏼라 쏼라’하는 바람에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 책자를 찾아 보아도 이 건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세월의 깊이가 있는 그대로 느껴지는 외관만큼이나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는 것 이외에는…… 


자미아 모스크는 유럽의 성당이나 사원들처럼 웅장하거나 화려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특별한 느낌이 있다. 


미드레벨의 초고층 아파트 숲 사이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정원과 같은 느낌이랄까? 



초고층의 현대적인 마천루 숲 속에 옛날 모습 그대로 먼지가 쌓이고, 빛이 바랜 채 역사를 더해가는 시크릿 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특별했다. 아마도 현대적인 도시, 홍콩의 도심이라서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자미아모스크, ‘미드레벨의 시크릿  가든’이라 제목을 붙여 보았다. 


시크릿 하지 않았다면, 전혀 특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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