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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Oct 31. 2015

셩완, 느리게 가기

낡은 트램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나다

홍콩별 여행자 09.

셩완, 느리게 가기


셩완은 홍콩섬의 번화가 중에서도 가장 홍콩스러운 매력을 지닌 곳 중 하나다. 셩완은 홍콩섬의 가장 번화한 센트럴 지역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여전히 홍콩의 로컬스러운 옛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식민지배 당시 도심 개발을 하면서, 센트럴 다음으로 번화한 곳이 바로 셩완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이주한 관리와 무역상인들은 주로 빅토리아 피크로 올라가 거주하였기 때문에 셩완 지역에는 대부분 중국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 까닭에 셩완은 현재까지도 홍콩 특유의 예스러운 정취가 은연중 많이 느껴진다. 나는 이 묘한 매력이 있는 셩완의 골목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구석구석 찾아가는 골목 여행이야 말로 홍콩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니까...


셩완으로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아일랜드 라인의 시발점인 셩완역에 내리면 되지만, 좀더 홍콩스러운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다면, 센트럴에서 트램을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센트럴에서 셩완 방향으로 가는 트램이라면, 어느 트램이라도 상관없다. 





트램은 느리고, 덥고, 비좁고, 흔들리고, 땡땡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낡은 트램이 좋은 이유는 셩완까지 느릿느릿 달리는 내내 서서히 홍콩의 옛 거리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아련한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센트럴에서 셩완으로 향하는 트램에 올라탔다. 당연히 전망 좋은 2층 좌석의 맨 앞 자리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트램은 ‘땡땡’하는 그 특유의 경적 소리와 함께 셩완을 향해 느릿느릿 달려간다. 마치, 해변에서 전력을 다해 질주했으나, 아직 제자리에 멈춰있는 거북이처럼...


무조건 숨 가쁘게 질주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요즘 시대에 여전히 옛 시대의 느린 속도로 생존해 나가고 있는 이 낡은 트램을 타고 있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멍하니 사색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지하철로 가면 5분도 채 안 되는 거리지만, 센트럴에서 셩완까지 트램을 타고 약 20분 동안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하루 동안 지친 뇌에게 “잠시 정지”를 명령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트램의 열린 창문으로 날라 오는 바람을 음미하며, 바깥 풍경을 내려다 본다. 



높고 세련된 현대식 마천루  사이사이의 오래된 골목과 낡은 건물의 상점들,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 오르는 거리의 국수집, 무질서하게 널려 있지만, 그 자체로 홍콩스러움을 연출하고 있는 거리의 간판들, 그리고 반대편에서 마주 보고 다가오는 트램들...


센트럴에서 셩완까지 창 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 올드 한 매력이 있는 셩완의 구석 구석 골목에는 어떤 모습들이 숨겨져 있을지 궁금증이 더해간다. 그렇게 느리지만 짧았던 20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트램은 셩완의 끝자락에 도착하게 된다.


그 곳에는 ‘프린지클럽’과 마찬가지로 옅은 빨간색 줄무늬가 인상적인 오래된 건물 하나가 서 있다.  셩완의 예스러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이 건물의 정체는 바로 ‘웨스턴 마켓’이다. 





에드워디안 양식으로 지어진 이 역사적인 건물은 1906년에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본래 항만 관리소(Waterfront Harbour Office)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8년까지는 농수산물 시장으로 사용되었고,1990년대 들어서는 이 오래된 건물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2년 간의 보수공사를 거쳐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입주한 현재의 관광명소로 재탄생하였다.

 

나는 트램 정류장에서 길을 건너 이 멋스러운 옛 건물로 들어가보았다. 1층에는 주로 트렌디한 상점들이 몇 군데 입점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상점은 ‘80미리 버스 모델샵’이다. 


홍콩의 명물인 2층 버스의 미니어처 모형을 정교하게 만들기로 유명한 상점이다. 이 상점에는 2층 버스뿐만 아니라, 트램이나 스타페리 등 홍콩의 대중교통수단을 미니어처로 만든 기념품들이 가득하다. 




홍콩 사람들 중에는 무언가를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많은데, 역시 소소하면서도 작고 세밀한 것들을 수집하는데 집착하는 홍콩 사람들의 취향이 이 곳에서 잘 드러난다. 작은 면적에 오밀조밀 모여 살다 보면, 그 성격이나 취향도 세밀해지는 것은 아닐까? 


‘80미리 버스 모델샵’과 더불어 웨스턴 마켓의 1층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상점은 바로 ‘허니문 디저트’다.  ‘허유산’과 더불어 홍콩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전문점인 허니문 디저트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래도 기왕 허니문 디저트를 발견했으니, 뭐라도 하나 먹고 가야겠다는 심보로 구석에 남은 한 자리를 잡아 메뉴판을 펼쳐보았다. 메뉴판에 그림이 있어 주문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빙수”와 비슷하게 생긴 디저트를 골랐다. 새로운 것을 탐험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지만, 낯선 곳에 오게 되면, 언제나 그나마 익숙한 것을 찾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럴거면, 왜 메뉴판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게 될까?  늘 반복되지만, 어쩔 수 없는 여행자의 고민이다.  새로운 것과 익숙한 것 사이의 갈등...


잠시 후, 주문한 빙수가 나왔다. 살얼음이 약간 섞인 빙수에 아이스크림과 젤리 토핑을 얹었는데, 구수하면서도 담백한 옛 팥빙수의 맛이 나면서도 미세한 달콤함이 배어 있는 살얼음이 입 안에서 녹는데, 그 찰나의 순간에 느껴지는 맛이 미묘했다. 




실상은 우리나라의 “레드망고”와 같은 빙수 전문점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나, 차이가 있다면 약간 “홍콩의 맛”이 섞여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맛이 무어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렵고, 그 미묘한 맛의 차이는 직접 체험해 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기분의 차이일지도……  아무튼, 셩완의 웨스턴 마켓에 들렀다면, 허니문 디저트는 셩완 여행에 빠질 수 없는 필수코스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1층을 둘러보고 나서, 2층으로 올라가면 옷감을 파는 상점들이 가득하다. 최근에는 근처에 윙온 백화점이 생기면서 상점들이  그쪽으로 많이 이전해갔다고 하는데, 그래도 여전히 화려한 색의 옷감 들을 걸어 놓고 장사하는 가게들이 2층 통로를 따라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리고, 3층에는 옛날 사교 파티장 같은 분위기의 딤섬 레스토랑“그랜드 스테이지”가 있다. 예스럽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면서도 옛 홍콩스러운 분위기가 살아 있어 은근히 매력 있는 곳이다. 직접 먹어보진 않았지만, 주변의 평은 맛도 괜찮다고 한다.



셩완 여행의 출발점이 되는 웨스턴 마켓…… 너무 많은 것들을 기대하고 찾아 왔다면, 별로 볼 것이 없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 예스러운 분위기의 건물을 둘러보고, 몇 개의 유명한 상점들을 둘러보는 것이 이 여행의 전부일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웨스턴 마켓은 단지 본격적인 셩완 골목 탐험을 위한 시발점일 뿐이니까. 셩완의 골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항상 먼저 찾게 되는 곳이니, 웨스턴 마켓에 들려 허니문 디저트도 맛보고, 본격적인 셩완 여행을 떠나 보면 어떨까?  


너무 서두르지도 말고, 너무 기대하지도 말고, 복잡한 거리를 느릿느릿 배회하는 트램처럼, 여유로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셩완, 그 아련한 시간 여행……그 여유로운 마음이 준비되었다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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