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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Nov 01. 2015

셩완, 올드한 매력의 거리

셩완의 골목에서 옛 추억을 소환하다

홍콩별 여행자 10.

셩완, 올드한 매력의 거리


낡은 트램을 타고, 셩완의 종점에 내려 웨스턴 마켓을 둘러 보았다면, 이제 셩완의 구석진 골목 안으로 본격적인 여행을 떠날 차례다.


웨스턴 마켓에서 길을 건너 셩완의 구석진 골목을 헤매다 보면 본햄 스트리트에 이르게 된다. 약재와 건어물 상점이 밀집된 거리다. 


본햄 스트리트는 "인삼과 제비집 거리(Ginseng and Bird's Nest Street)" 또는 "건어물 거리(Dried Seafood street)" 나 "약재 거리(Herbal Street)"로 불리기도 하는데, 분위기는 흡사 서울의 경동시장과 비슷하다.  


재래시장과 같은 분위기에 약재나 건어물 등을 거리에 내 놓고 팔다보니, 홍콩의 덥고 습한 날씨에 이 거리를 지나게 된다면, 쾌쾌한 냄새에 괴로워해야 할 수도 있다. 


지극히 로컬스러운 시장 분위기에 잠깐 호기심이 가기도 하지만, 쾌쾌한 냄새가 스물 스물 올라와 절대 호감가는 골목은 아닌지라, 나는 이 비호감의 거리를 재빨리 지나 다음 골목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셩완의 골목에는 페인트칠이 벗겨진 낡고 오래된 건물들이 빈틈없이 자리잡고 있다. 옛 홍콩 영화에나 나올 법한 누추한 건물들이 거리 곳곳에 빼곡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6~70년대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는 오래된 상점들도 눈에 띄고, 그런 와중에 간혹 굉장히 세련되고 트렌디한 카페나 상점들도 종종 눈에 띈다. 


트렌디한 상점들은 대부분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나 패션잡화 또는 인테리어 소품들을 판매하는 곳들이다.  그런 상점들은 낡은 회색빛 건물에 어울리지 않게 밝고 화려하게 꾸며진 곳들이라 더욱 눈에 띄고, 그 세련됨이 돋보인다. 


이렇게 독특하고, 개성 있는 셩완의 거리들을 걷다 보면, 이제 셩완에서 가장 흥미로운 거리인 헐리우드 로드를 만나게 된다. 


헐리우드 로드는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너온 물품들을 거래하던 곳인데, 지금은 골동품 상점들이 밀집된 거리로 유명하다. 


이 거리를 걷다 보면, 도로 양 옆으로 각양 각색의 골동품 상점들을 볼 수 있다.  이 곳에 진열된 골동품들 중에는 정말 값비싼 진품들도 있고, 아주 값싼 모조품들도 있다.



아주 운이 좋으면, 정말 싼 가격에 굉장히 가치 있는 골동품을 구할 수도 있다는데, 그런 행운은 전문적 식견을 가진 이들에게나 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진품을 가장한 가짜 골동품들도 섞여 있으니, 골동품에 조예가 깊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냥 기념품 정도나 구입하고 가는 것이 좋겠다.  아무리 좋은 진품이 있다해도 그냥 스쳐가는 여행자들에게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일뿐이다.


할리우드 로드를 따라 걷다가 도중에 아래 블럭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캣 스트리트'로 이어지는데, 나에게는 셩완의 수 많은 골목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곳이다. 


이 곳에는 먼지 쌓인 골동품에서부터 집에서 쓰다 버린 듯한 잡동사니 고물, 이소룡과 같은 옛 홍콩 스타의 빛바랜 사진과 오래된 달력, 액자, 포스터, 마오쩌둥의 얼굴이 들어 가 있는 손목시계 등 볼수록 흥미로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학창 시절 간혹 방을 정리하다가 책상 한 구석에 쳐 박아 둔 유년 시절의 장난감이나 구슬, 카드, 또는 아주 오래된 수집품들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향수에 빠져 흐뭇해지던 때가 있었는데, 캣 스트리트를 구경하다보면, 문득 그 때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흥미로운 물건들을 구경하며, 캣 스트리트를 걷다보면, 100미터 남짓한 거리를 지나는데, 30분이 넘게 걸린다. 결국,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사실, 이런 물건들이 여러 가지 감상을 떠올리게 하긴 하지만, 막상 돈 주고 사기에는 망설여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냥 구경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마음이 흐뭇해지는 곳이니, 이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마음에 드는 신기한 물건들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캣 스트리트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계단을 올라오면, 바로 길 건너편에 사원이 하나 있다. 바로 “만모사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만(文)”은 백성을 의미하고, “모(武)”는 전쟁을 의미한다. 


향 피우는 냄새가 가득한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학문의 신 “문창제”와 전쟁의 신”관우”를 모신 사당이 나란히 있다. 


무속신앙이 강한 홍콩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곳 사원에 와서 소원을 빌곤 하는데, 오늘도 그런 소망과 기원이 가득한지 사원 안에는 눈을 뜨지 못할 만큼, 향 피우는 냄새와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이 오래된 사원을 가득 메운 연기 속에서 따가워진 눈을 비비다가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옛날부터 이 곳에 남겨진 수 많은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들은 다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여전히 이루어야 할 꿈으로 남아 있을까? 

어쩌면, 그런 소망과 기원들을 모아 홍콩이 현재의 번영을 누리는 토대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만모 사원을 잠깐 들여다보고 나와서 다시 할리우드 로드를 따라 걸었다.  한참 걷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큰 길에서 안쪽으로 이어진 어느 뒷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후미진 골목 안쪽에는 언덕 윗 동네로 이어진 계단이 있는데, 벽을 타고 내려온 나무 뿌리와 담쟁이덩쿨, 그리고, 계단 위로 크게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고목이 어울려 아주 멋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계단은 어느 책자에도 소개되지 않은 나만의 시크릿한 발견 장소다. 나는 이 계단에 서서 사진을 몇 컷 찍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때마침 우연찮게 포착된 흥미로운 장면이 있었다. 늘어진 흰 러닝셔츠 차림의 중년의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의자에 앉혀 놓고, 보자기를 씌운 채 머리를 깎아주고 있는 모습. 


아마도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머리를 직접 깎아주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어린 시절 내 어머니가 내게 보자기를 씌워 놓고, 집 베란다에서 머리를 깎아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 땐, 집에서 머리 자르는 게 참 싫었는데,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많은 것들 중에는 내가 참 싫어했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그토록 싫어했던 그것들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그리워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내가 어머니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평생 내게 주신 것보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턱 없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래서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고, 내가 받은 사랑만큼 다 되돌려 드릴 순 없겠지만, 그 남겨진 몫은 여전히 빚진 채로 나 역시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그 한없는 내리 사랑을 이어가는 것으로 대신해야 할 것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내게 그러했던 것처럼...



셩완의 어느 골목에 서서 나는 잠시 뜬금없이 떠오른 옛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셩완의 골목에는 뜻밖의 진한 향수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키는 장면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 뜻밖의 장면들을 대할 때마다 나는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한 동안 그곳에 서서 옛 기억 속을 여행하게 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떠나듯…… 그 순간 나의 시간은 십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거꾸로 흘러간다. 


홍콩섬에서 가장 홍콩스러운 거리, 옛 모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올드한 매력이 있는 거리, 골목 구석구석에 보물 같은 장면들이 많이 숨겨져 있는 거리. 이 거리를 걷고 있으면, 어느 순간 갑자기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이 소환되곤 한다. 


셩완, 이 매력적인 골목들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을까?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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