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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Nov 04. 2015

쑨얏센 역사 트레일

근대 중국의 기초는 홍콩에서 시작되었다

홍콩별 여행자 11

쑨얏센 역사 트레일


소호의 윗 동네인 미드레벨에는 초고층 아파트들이 밀집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이 곳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 오른 초고층 건물들은 그 끝을 모르고 하늘로 향하고 있다.


어떤 건물은 보기만 해도 아찔할 만큼 가파른 언덕길에 위태롭게 서 있기도 하다. 이 마천루 숲속을 배회하다 보면, 도대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이 어지러운 마천루의 숲, 미드레벨의 거리를 배회하다가 나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손중산 박물관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쿰통 홀(Kum TongHall)’이라 불리는 손중산 박물관은 중산 쑨원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근대중화민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쑨원은 홍콩과 인연이 깊다.


광둥성 중산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쑨원은 형을 따라 하와이로 건너가 호놀룰루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다. 


서양식 교육을 받으며, 근대 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쑨원은 고향으로 돌아와 낡은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계몽 운동을 펼치다가, 마을의 수호신인 목상을 절단하는 사건을 일으킨 후, 고향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때 쑨원이 찾아간 곳이 바로 홍콩이었다. 




그는 홍콩에서 의과대학을 다녔다. 이때 대학을 같이 다닌 친구가 호 쿰통(Ho Kom Tong)이었고, 그의 형인 로버트 호 퉁(Robert Ho Tung)은 훗날 쑨원의 혁명을 지지한 동지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인해 오늘 날 쑨원이 한 번도 발을 들여 본 적 없는 건물인 ‘쿰통 홀’은 쑨원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0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3층짜리 아담한 건물인 ‘쿰통 홀’ 에는 쑨원의 동상과 사진,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사료나 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관람 순서에 따라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면, 쑨원의 일생을 한 바퀴 둘러보는 셈이 된다. 


쑨원은 중국보다 앞서가는 홍콩의 문물을 경험하며, 늘 낙후된 중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타까움은 훗날, 중국 근대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 


쑨원의 일생에 있어서 홍콩에 머물렀던 청년 시절은 사실상 혁명의 기초를 다진 중요한 시기라 볼 수 있다. 쑨원의 홍콩 시절은 중국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홍콩인들에게 있어서도 매우 자랑스러운 역사의 한 순간이기도 하다. 



쑨원의 홍콩 시절은 훗날 혁명의 모티브가 되었던 시기였고, 그런 까닭에 홍콩인들은 ‘홍콩의 깨어있는 지성이 낙후된 중국을 깨워 근대화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고 있다. 


쑨원의 130번째 생일이었던 1996년 11월, 홍콩 시의회는 센트럴과 셩완 일대에 쑨원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15개의 장소를 연결하여 쑨얏센 역사 트레일(Dr. Sun Yat Sen Historical Trail)을 만들었다.


이 역사 트레일은 그가 의학을 공부했던 홍콩대학에서 시작하여 혁명을 논의했던 장소까지 그 흔적을 따라 이어진다. 이 트레일을 따라가면, 쑨원의 청년시절, 홍콩에서의 행적들을 따라가 볼 수 있다. 


민족, 민주, 민생의 삼민주의를 제창하며, 낙후된 중국의 근대 혁명을 선도하였고, 중화민국의 성립을 선포했던 ‘근대 중국의 아버지’ 쑨원.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인 쑨원이 근대 사상의 기초를 세운 곳이 바로 홍콩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어쩌면, 홍콩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근대 중국의 기초는 홍콩에서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이 남아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Trippers


* 쑨얏센(Sun Yat Sen)은 쑨원의 영문 이름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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