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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n 30. 2015

도심 속의 힐링 산책, 하늘공원

봄의 싱그러움을 따라 걷다


5월은 싱그럽다. “싱그럽다”는 말은 싱싱하고 맑은 향기가 있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나는 요즘 싱그러운 분위기를 자주 느끼고 있다.  봄날의 맑고 푸른 빛깔을 마주할 때마다 “싱그럽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이 단어를 이제서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이런 봄날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려면, 산책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나는 5월의 어느 토요일 이른 아침, 늦잠보다 더 상쾌한 봄날의 산책을 위해 상암동으로 향했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에 내리니,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봄의 싱그러움을 만끽하러 나온 상춘객들로 역 주변이 제법 혼잡했다. 그렇게 봄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건너편에는 이런 봄날에 산책하기 좋은 하늘공원이 있다. 이 곳은 본래 서울의 온갖 쓰레기를 매립하여 처리하던 쓰레기 매립지, 난지도였다.


그랬던 것이 2002년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면서 월드컵 주 경기장의 부지를 상암동으로 정하게 되었고, 이와 더불어 건너편 난지도에 쓰레기 매립지 대신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하늘공원은 평화공원, 난지천공원, 난지 한강공원, 노을공원과 함께 약 5만 평 규모의 월드컵 공원을 이루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대회가 남겨 준 또 하나의 유산이다.


 

[ 쓰레기매립지에서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하늘공원 ]



난지도의 2개 봉우리 가운데, 첫 번째 봉우리에는 하늘공원이 조성되었고, 두 번째 봉우리에는 노을공원이 조성되었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에 난지도는 온갖 쓰레기와 폐기물들이 모이는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불결한 곳으로 인식되었는데, 지금 이 곳은 그 옛날 말로만 듣던 난지도와는 전혀 딴판의 다른 세상이다.


쓰레기 더미가 쌓여 봉우리를 이루던 이 곳에 풀과 나무가 자라 숲이 우거졌고, 자연 생태가 복원되면서 떠났던 새와 곤충, 작은 들짐승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숲은 더욱 울창해지고, 숲의 식구들은 점점 늘어났으며, 생태계는 더욱 공고히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제 하늘공원은 서울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쉼터이자, 폐와 허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처럼 자연의 복원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대단하다.



[ 자연의 복원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 그 이상이다 ]


하늘공원이 있는 난지도의 첫 번째 봉우리 앞에 서니, 이 곳이 예전에 쓰레기 더미로 가득했던 곳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금 이 곳은 녹색의 푸르름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봉우리의 한쪽 비탈엔 가파른 경사를 지그재그로 연결하여 만든 나무 계단길이 있는데, 이름 하여 “하늘계단”이다.


녹색의 푸르름이 가득한 땅을 딛고 올라간 그 곳에는 파란 하늘과 맞닿아 펼쳐진 푸른 들판이 있었다. 하늘 계단은 하늘공원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자랑하며, 정상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하지만, 이 가파른 지름길이 버겁다면, 대신 숲의 향기와 봄 내음을 만끽하며, 조금 천천히 완만하게 돌아서 정상까지 이르는 희망의 숲길이 있다.


희망의 숲길은 하늘 공원의 둘레를 감싸고 도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이다. 끝도 없이 양 옆으로 도열해 있는 메타세콰이어 나무 사이를 걷다가, 봉우리의 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올라가면, 마침내 하늘공원에 이르게 된다.


하늘 계단길에 비하면, 엄청 느린 완행길이지만, 이 길에서는 걷는 내내 피톤치드 가득한 숲의 향기를 마음껏 흡입할 수 있었다.



[ 하늘공원 메타세콰이어길 ]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힘든 줄도 모르고, 하늘공원의 정상에 이르게 되고, 그 곳에 펼쳐진 파란 하늘과 넓은 들판에 또 한 번 감동하게 된다.


하늘공원에는 지붕이 없지만, 대신 파란 하늘이 있으며, 그 하늘 아래 넓은 들판엔 녹색의 청보리가 익어가는 중이다. 가을 무렵엔 은빛의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겠지만, 지금 5월의 들판엔 녹색의 청보리가 들판의 주인공이었다.


나는 이 곳에 와서 깨달았다. 봄의 빛깔은 녹색이며, 녹색은 싱그럽다는 사실을.


서울의 한 복판에 이처럼 넓은 녹색의 들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들판이 본래는 쓰레기 더미였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하늘공원의 들판에 서서 조용히 숨죽여 귀를 열어보았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녹색 들판의 속삭임. 푸른 잎사귀들이 부딪치며 재잘거리는 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니들도 이렇게 재잘거리는 걸 보니, 봄이 좋긴 좋은 가보구나’



[ 청보리가 피는 계절 ]



지난 가을, 억새가 장관을 이루었던 하늘공원엔 시나브로 봄이 왔다. 어느새 봄은 가고 또 가을이 오겠지만, 봄날의 기억은 차곡 차곡 쌓여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할 것이다.


하늘공원의 들판을 산책하고 나서, 난지 한강공원 방면으로 내려오면, 다시 한 번 이어진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걷게 된다. 이번엔 처음보다 더 길게 이어진 메타세콰이어 숲의 터널을 지나게 된다.


신기하게도 숲길의 바로 옆은 강변북로다. 나뭇가지 사이로 간혹 대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흔적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숲길을 걷고 있으면, 바로 옆이 강변도로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숲은 고요하며, 세상과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다.


이 곳에서 나는 온전히 숲을 느끼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간다. 봄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5월, 나는 녹색의 푸르름과 봄의 향기가 가득한 이 곳에서 곧 지나갈 봄날의 추억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숲처럼 추억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풍성하게 깊어질 것이다.


* 참고로, 이 글이 작성된 것은 지난 5월이었습니다. 어느새 봄이 가고, 여름의 한 가운데에 있군요.


(글/사진) Tripp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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