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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l 05. 2015

낯선 문명과의 만남,
중남미 문화원

당신은 보고 느끼고 즐길 준비가 되었나요?


가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얽힌 실타래처럼 머릿속이 복잡하고, 꽉 막힌 수도관처럼 가슴이 답답하며, 해결되지 않는 일상의 난제들이 뇌의 혈관을 짓누르고 있을 때, 나는 가끔 그것들로부터 무작정 떠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미리 계획하지 않았던 예정에 없는 여행을 떠나는 것,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지만, 결국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고 있다. 우린 대부분 그렇게 일상에 짓눌려 살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우리 주변엔 그 일상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예정에 없었던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들 모두의 로망, 여행자. 그 거침없는 일탈이 부럽긴 하지만, 그 부러움을 따라가기엔 우리들 모두의 현실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말의 작은 여유에 기대어 집 근처 가까운 곳으로 반나절 정도 나들이를 떠나는 것이 유일하다.  뻔한 일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런 뻔한 일상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그렇게나마 잠시 숨 쉴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 있다면, 그건 삶의 큰 위로가 될 것이다. 


구파발을 지나 약 2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중남미문화원”은 나에게 그런 공간이다. ‘중남미’만큼 멀리 떠나진 못했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일상의 주변과는 조금 다른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 




중남미 문화원은 중남미에서 30여 년 간 외교관으로 주재했던 이복형 대사와 그의 부인 홍갑표 이사장이 주재 기간 중 수집한 중남미 지역의 풍물들을 모아 세운 박물관이다. 


태평양을 건너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곳, 중남미. 그 먼 거리만큼이나 우리에겐 많이 생소한 지역이다. 그 생소한 지역의 이국적인 문화를 내 일상의 주변 가까운 곳에서 체험할 수 있다니, 이거 호기심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고양시의 어느 주택가 골목을 지나 중남미 문화원의 입구에 이르면, 제일 먼저 양철로 제작된 거대한 돈키호테 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돈키호테는 중남미 문학의 산물은 아니지만, 같은 라틴 계열의 문학이므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돈키호테가 정문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일견 이해 가는 일이긴 했다. 그렇게 중남미 문화원은 그 본연의 생소함 대신 익숙함으로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돈키호테 상을 지나 문화원 안뜰로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의 미술관과 전시관 건물이 있고, 그 사이로 작은 산책로를 따라 가면 야외 조각공원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중남미 문화원의 그 알찬 내용의 구성과 멋진 공간의 배치 등을 보면, 개인이 세워 운영하는 박물관이 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중남미 문화원의 설립자는 어쩌면 돈키호테처럼 현실로부터 이탈한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이 멋진 공간이 우리 집에선 차로 3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아 나는 날씨 좋은 주말 오후면 종종 중남미 문화원을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야외 정원의 카페에 앉아 멕시코 특유의 전통 음식인 타코와 함께 타코만큼 특별하진 않았던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주말 오후의 여유를 마음껏 즐긴다. 그 여유마저 조금 지루해질 때 즈음, 야외의 조각공원을 산책하고, 가끔 미술관이나 전시실에 들러 새로운 전시물이 있는지 살펴본다. 


얼마 전, 아주 오랜 만에 중남미 문화원을 다시 찾아갔을 때, 조각공원 한 켠에 새로운 볼거리가 하나 생긴 것을 발견했다. 


조각공원의 가장 깊숙한 끝자락에 자리 잡은 거대한 마야 벽화. 길이 23미터, 높이 5미터에 이르는 이 거대한 벽화에는 신비로운 형태의 고대 상형문자와 기호, 그림 등이 새겨져 있었다. 




마야 문명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무한 탓에 이 기괴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일정한 형태의 배열이 무얼 의미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이 벽화가 중남미 문화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볼거리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만큼, 그 신비로운 느낌이 대단했고, 생소한 이질감에 호기심이 자극되었다. 


가끔씩 대중매체를 통해 생소한 중남미의 문화유적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중남미의 고대인들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기존의 문명을 뛰어 넘어 외계인과 소통해왔던 최초의 인류가 아니었을까 ‘


페루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 또한 외계인과 소통하기 위한 비밀 장소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만큼 마야의 고대 문명이 앞서 발전하기도 했거니와 그 남은 흔적들의 범상치 않는 형태들이 나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햇살이 따스하게 감싸 주는 주말의 늦은 오후가 되면, 이따금씩 중남미 문화원에 가고 싶어 진다. 


그 곳의 안뜰에 앉아 잠시 쉬며, 산책하며, 늦은 오후의 여유를 마음껏 즐기다 보면, 일상의 굴레로부터 잠시 벗어난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진다. 






일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잠시 낯선 문명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흔히 우리는 주말에 서울에서 갈 만한 곳이 없다고 불평을 하곤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부족한 건 볼 만한 유적이나 대단한 명소들이 아니라, 잠시 떠나 보고 느낄 수 있는 내 마음 속의 여유가 아닌가 싶다.

 

100이 전부라면,  그중에 30은 빈 공간의 여유가 있어야 우리 마음도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30만큼의 마음 속 여유를 간직하며 살 수 있다면, 우린 언제나 행복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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