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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l 19. 2015

마흔, 마음의 전쟁을 시작하다

문제는 몸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마음이 더 큰 문제다

나이, 과연 숫자에 불과한 것인가?

언제부터인가 술을 먹고 난 다음날, 예전만큼 숙취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오래 앉아 일을 하고 나면, 허리가 아프다.

언제부터인가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눈이 따갑다.

언제부터인가 조금 바쁘고 정신이 없으면, 방금 전 들었던 얘기가 잘 기억나질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밥을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소화가 잘 되질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내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나는 양치 중이었고, 문득 거울에 비친 내 자신을 보았다. 그리고, 오른쪽 머리 위로 길게 삐쳐 나온 흰 머리카락을 보았다.


그 날 흰 머리카락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며, 시간이 정지된 듯 흰 머리카락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나의 양치질 또한 몇 초간 정지되었다. 


그 때 나는 비로소 깨닫고 말았다. 예전보다 내 몸이 조금 더 힘들어진 까닭이 이제 나도 마흔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제 나도 늙어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고 말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결코 숫자놀음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문득 슬퍼졌다. 



마흔, 마음이 흔들리다


그런데, 문제는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 마음이 더 큰 문제다. 웬만해서는 흔들리거나 헷갈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 마흔에 나는 흔들리고 헷갈리며 방황하고 있다. 사춘기에도 겪지 않았던 질풍노도의 방황을 나이 마흔에 뒤늦게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흔들린다. 14년 동안 평생 직장이라 믿고 달려왔던 일터에 더 이상 장밋빛 미래가 없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고, 하나 둘 동료들이 떠날 때도 나만은 끝까지 남아서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다짐했던 믿음도 끝내 부질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 하루 치열하게 살아오는 동안,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하나 둘, 귀찮고 피곤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런 변화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동료들과 친구들에게도 14년 동안 공통되게 일어난 변화였다. 


2015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제 막 마흔이 되어가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삶이자 고민이다. 단지, 누구는 여전히 치열한 삶의 전쟁 속에 그러한 변화를 잊은 채 살고, 또 어떤 누구는 그러한 삶의 전쟁 속에서도 문득 내면의 변화를 인식하게 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그 내면의 변화를 인식하게 된 이후에도, 누구는 사회의 통념과 시스템 안에 자신을 가둔 채, 꾸역 꾸역 버티는 삶을 살고, 또 어떤 누구는 과감히 안정된 삶의 틀을 내던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아버지, 당신도 그렇게 힘들었나요?



문득, 나는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졌다. 가장 가까이서 사십 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정작 나는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평생 말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단지, 내가 지금 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은 유난히 머리 숱이 많고, 검 했던 아버지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있었다는 것과 어렸을 적 산과 들로, 강과 바다로 나를 데리고 다니며, 많은 세상을 구경시켜주려 했던 아버지는 이제 계단 하나 오르기가 힘들 만큼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시절 20대에 성공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중년 시절 사업의 실패로 지금 남은 것은 빚으로 얻은 집 한 채뿐이라는 것. 


아버지 또한, 지금의 나처럼 인생에서 많은 고민과 방황이 있었을 것인데, 지난 40년 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나에게 힘들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삶의 무게와 아픈 마음을 스스로 감내하며 이겨낸 아버지였다.


나는 대단하게 성공해서 자식들에게 큰 재산을 물려 준 누구 누구의 아버지들보다 그런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스럽다.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자신과 가족에 대하여 책임을 다하였고, 그런 아버지는 아들에게 충분히 자랑스러워도 좋을 만큼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다.


사업의 실패로 어려웠던 시절, 늘 자식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고, 안타까워했던 아버지.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지금껏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가 쑥스러워 늘 무뚝뚝했던 아들이지만, 아버지 또한 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가 살아 온 인생을 이미 다 살아봤으니까…… 


내가 지금 힘든 것도 아버지는 예전에 다 겪고 이겨 낸 사람이니까…… 그렇게 아버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게 더욱 큰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아픈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는 것을……


세상을 많이 알아갈수록 마음이 아프다. 세상이 그리 녹녹하지 않으며, 세상이 내 뜻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일까……아니면, 예전에 미처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들을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기 때문일까……


마흔, 마음의 전쟁을 시작하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에서 소중한 가치들은 과연 무엇일까?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와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고민이 같을 수 없기에, 지금 내 머릿속에 머무는 물음들에 대한 답을 아버지께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버지 또한 지금의 나처럼 치열한 삶의 여정 속에서 그런 고민들과 부딪쳐 싸워왔을 거라는 동병상련이 내 마음에 의지가 되고 있을 뿐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큰 우산처럼 거센 비바람으로부터 늘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이제는 그 큰 우산이 낡고 헐거워져 나 스스로 우산 속 그늘을 벗어나 치열한 삶의 전투를 치러야 할 나이가 되었다. 아니, 이미 나는 맨몸으로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그러했듯, 나 또한 그 치열한 전투의 현장 속에서 내 인생에 대하여, 내 소중한 가족들에 대하여 나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아버지의 시대에 이루지 못했던 세상의 풍파 속에서 나를 지키는 일. 그것 또한 이뤄내야 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살고 싶다. 사회의 통념과 시스템 안에 가두어, 안정적인 배부름을 추구하기 보다는, 그 틀을 깨고 나와 진정한 자아를 찾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마흔 즈음에 몸은 힘들어졌고, 마음은 더욱 아프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삶을 더욱 사랑해야겠고, 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들부터 챙겨보아야겠다.


행복은 결국 먼 곳에 있지 않다. 가장 가까운 내 안에서부터 행복이 시작된다.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따뜻하게 전해드려야겠다. 당신의 삶 덕분에 내가 든든했었고, 당신의 사랑 덕분에 나는 이렇게 마음이 풍족한 사람이 되었다고. 지금 마음이 아픈 것은 결국 마음이 풍족하기 때문이라고. 


마음이 풍족하다는 것은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이고, 감정이 풍부하다는 것은 미세한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고 생각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때론 그로 인해 마음이 힘들고 괴롭지만, 그래도 건조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기 보단, 끊임없이 치열한 마음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이고 싶다. 


아버지처럼 묵묵히 그렇게……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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