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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n 19. 2016

시간이 정지된 아름다운 해변,
섹오 마을

섹오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기억으로...


홍콩은 섬이다. 사면 어디에서라도 바다를 볼 수 있다. 홍콩에 살면 좋은 점들 중 한 가지는 버스나 택시를 타면 30분 내에 홍콩의 멋진 해변 어디라도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리펄스베이, 디스커버리 베이, 스탠리, 사이쿵, 클리어워터 베이, 딥워터베이, 빅 웨이브 비치 등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해변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찾아가 볼 수 있다는 점은 홍콩 생활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비록 홍콩의 바다가 환상적인 에메랄드 빛깔의 투명색은 아닐지라도 홍콩이라는 세련된 도시의 이미지와 어울려 만들어내는 도회적인 해변의 풍경과 가공되지 않은 홍콩 로컬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어촌 마을의 풍경이 공존하는 것은 홍콩의 해변만이 가진 색다른 매력이다.


리펄스베이, 디스커버리 베이, 스탠리 등과 같은 홍콩의 유명 비치는 사람에 비유하면 멋쟁이다. 세련된 옷차림으로 가지런히 정리된 멋쟁이 말이다. 이런 멋쟁이 홍콩의 해변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덜 세련되었지만,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해변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섹오 비치를 먼저 꼽을 것이다.




홍콩 최고의 경치를 자랑하는 “드래곤스 백 트레일”이 끝나는 지점에 닿아 있는 섹오는 홍콩의 다른 멋쟁이 해변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삶의 현장, 그리고 세련된 서양풍의 고급 저택들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섹오로 가려면, 우선 쇼케이완 역에 내려 9번 버스를 타야 한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여름철이 되면, 주말마다 섹오 비치를 가기 위해 9번 버스 앞에 줄지어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이 많은 사람들을 섹오로 데려다 주기 위해 피크 시즌에는 평소보다 배차간격이 좀 더 짧은 편이다.


지금은 쇼케이완에서 버스를 타고, 약 30분 정도면 섹오 비치에 도착할 수 있어 주말마다 홍콩섬의 많은 사람들이 섹오 비치를 찾고 있지만, 과거 1923년까지 섹오는 도로가 개발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불모의 땅이었다고 한다.


나는 9번 버스에 타자마자 2층으로 올라가 맨 앞 줄의 오른편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리다. 이 좌석은 나에게 있어 공연장의 로얄석이나 다름없다. 섹오 비치까지 가는 동안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정말 멋진데,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려면, 이 자리가 정말 최고다.


운 좋게도 로얄석을 선점했다면, 이제부터는 멋진 풍경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차례. 


도심을 벗어나 홍콩섬 남부로 이어지는 좁은 언덕길을 오르고 나면, 10분 정도 지나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오른편은 스탠리로 향하는 길이고, 왼편은 섹오로 향하는 길이다. 지도에서 보면, 타이 탐 베이를 사이에 두고, 왼편으로는 스탠리, 오른편으로는 섹오가 있다.





버스는 갈림길에서 왼편으로 향하여 산 중턱을 따라 이어진 섹오 로드를 달린다. 버스의 왼편 창밖으로는 산이 있고, 오른편 창밖으로는 탁 트인 바다전망이 펼쳐진다. 내가 오른편 좌석을 선점한 이유가 바로 이 전망 때문이다. 


버스는 타이 탐 베이를 달리며, 멋진 풍경을 연달아 보여준다. 타이 탐 베이의 건너편에는 홍콩의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레드힐 빌리지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스탠리, 그 앞편으로는 여유 있게 타이 탐 베이를 유람하는 요트들이 보인다.


이 멋진 풍경에 넋을 잃고 있을 무렵, 버스는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듯 서서히 언덕길을 오르며, 하늘을 향해 달린다. 그러고는 잠시 후 언덕길의 끝에 있는 터닝포인트에서 방향을 돌려 되돌아 내려오는데, 이때부터가 정말 하이라이트다.


홍콩에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의외의 멋진 풍경이 스택터클 하게 펼쳐진다. 이 언덕길을 내려오면서 9번 버스는 한 편의 아이맥스 영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언덕길에서 나는 섹오 비치와 주변 풍경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이와 똑같은 풍경을 “드래곤스 백 트레일”에서도 내려다볼 수 있다. 바로 이 풍경 때문에 드래곤스 백 트레일이 뉴욕타임스로부터 아시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멋진 절정의 순간이 지나고 나면, 이제 버스는 섹오의 버스터미널로 진입한다. 2층 버스의 오른편 좌석에 앉았다면, 정말 후회하지 않을 멋진 여행이었을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왼편 좌석에 앉아야 했다면, 계속 절벽만 쳐다보고 왔을 테니, 정말 답답한 여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갈 때 다시 한 번 기회가 있으니,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억해야 할 점은 돌아갈 때는 반대로 왼편 좌석이 로얄석이라는 점, 다른 곳은 몰라도 섹오 비치만큼은 택시보다 이층 버스를 타고 가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


이제 섹오에 도착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다 구경이다. 해변 마을에 왔으니, 당연히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기 전에 해변을 먼저 거닐어 보아야겠다. 섹오 버스정류장에 내려 약 5분 정도만 걸어가면, 금세 파도 소리와 해변을 뛰노는 아이들의 즐거운 외침이 들려온다. 


날씨 가무 더워진 탓인지 예전 가을에 왔을 때보다 해변가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넓은 모래사장에 개미처럼 흩어져있는 가족 단위의 휴양객들, 그리고 ‘쏴아’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밀려오는 파도와 그 오른편에 삼각형 모양으로 높게 솟은 돌산. 이 독특한 모양의 돌산이 섹오 해변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섹오는 한자로 표기하면, 돌 석(石) 자와 깊을 오(澳) 자를 써서 “石澳”라고 표기한다. 직역하면 “돌이 깊은 곳”이라는 뜻인데, 추측컨대 아마도 저 높은 돌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언제든지 멋진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집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만에 이런 멋진 해변에 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더군다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그 30분 동안은 또 멋진 풍경에 얼마나 더 행복해지는가?  홍콩이라는 좁은 땅에 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섹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어디선가 고기 굽는 냄새가 바닷바람에 실려 날아온다. 본능적으로 코 끝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를 따라가 보니, 해변의 한쪽 구석에 바비큐장이 있다. 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모닥불 위에 고기나 소시지를 구워 먹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홍콩의 해변에는 가족 단위로 바비큐를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종종 있는데, 섹오 비치는 홍콩섬의 주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바비큐 장소라고 한다. 한 자리다 홍콩달러 250 불정도만 내면, 바비큐 장비 일체를 대여해주고, 불도 피워준다. 물론, 예약은 필수지만……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바비큐장을 지나 해변을 벗어나면, 이제 섹오 마을의 골목으로 접어들게 된다. 이 골목길에는 홍콩 특유의 작고 아담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군데군데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카페와 레스토랑들도 몇몇 눈에 띈다.




저마다 개성이 독특한 개인 주택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데, 어떤 집은 서양식이고, 어떤 집은 홍콩식이고, 또 어떤 집은 정체불명의 짬뽕식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집 하나도 아주 고급 저택들은 아닌데, 미적인 감각들이 살아있다. 


특히,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전혀 촌스럽지 않고, 강렬한 색채의 마법으로 다가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골목을 걷고 있으면, 마치 유럽의 어느 작은 마을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이 멋진 골목길을 따라 좀 더 깊숙한 동네까지 걸어가 보았다. 골목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니, “섹오 헤드랜드 로드(Shek O Headland Road)”라는 이름의 완만한 경사로가 나타난다. 


나는 호기심에 이 언덕의 끝까지 걸어가 보기로 하였다. 언덕길은 가파르지 않아서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은 코스였다. 언덕을 올라갈수록 점점 더 멋진 고급 저택들이 눈에 띈다. 


이 동네 특유의 멋스러운 분위기 때문인지, 이 곳에도 역시 야외 촬영 중인 예비 신랑 신부들이 종종 눈에 띈다. 꼭 웨딩 촬영이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작품 사진을 남기려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사진을 찍는 모습도 보인다.







섹오 빌리지는 사진가들에게는 참 흥미로운 동네다. 누가 일부러 꾸며 놓은 것도 아닐텐데, 뷰파인더로 보이는 사물 하나하나에 아기자기한 미적 감각들이 살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골목길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언덕길의 끝에 이르게 되는데, 이 막다른 길의 끝에서 나는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했을 멋진 풍경을 만나게 되었다. 


파란 바다를 앞에 두고, 절벽 위에 지어진 멋진 사원, 저만치 눈 앞에 나타난 거대한 섹오 헤드와 그 바위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여 장렬히 부서지는 하얀 파도, 게다가 오늘따라 더욱 멋진 하늘까지……


시원한 바닷바람과 함께 내 마음을 한 순간에 사로잡아 버린 이 멋진 풍경에 나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몇 년 전, 호주의 그레이트 오션로드에서 느꼈던 그 가슴 뭉클했던 감동이 이 곳 홍콩에서 되살아 나고 있었다.


물론, 호주의 풍경보다는 덜 웅장하지만, 이 작은 도시, 홍콩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 의외의 풍경들은 언제나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이 첫 번째 감동이 가시기 전에 해변의 산책로를 따라 섹오 헤드의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단 20분이면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이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멋지고, 웅장하다.


아시아 최고의 하이킹 코스 ‘드래곤스 백 트레일’에서 내려다 본 가장 멋진 풍경인 섹오 헤드. 그 멋진 풍경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지지 않은가?  


오밀조밀한 홍콩섬에서 이렇게 가슴 탁 트인 풍경을 발견하게 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어쩌면, 이 멋진 장소는 홍콩의 답답한 도시생활에 유일한 해방구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멋진 해변에서의 바비큐 파티와 즐거운 물놀이, 섹오 빌리지의 아기자기한 골목 여행과 사진 놀이, 그리고, 가슴 탁 트이는 섹오 헤드의 멋진 풍경까지…… 


섹오에서 할 수 있는 이 멋진 것들은 여전히 많은 홍콩인들이 섹오를 사랑하고, 계속 찾아오게 하는 이유들이다. 

홍콩을 떠나 온 지 벌써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 마음속에서 섹오의 시간은 그렇게 정지되어 있다. 장 행복하고 멋진 순간의 그 모습 그대로……  


마치 어느 화가가 정지시켜 버린 한 순간의 아름다운 장면 그대로 섹오는 내 기억 속에 정지되어 있다.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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