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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l 04. 2016

스타페리, 그 특별한 감성...

120년, 옛 사람들의 추억을 공유하는 시간은 10분으로 충분했다


홍콩은 특별하다. 홍콩은 과거와 현재, 서양식과 홍콩식, 세련됨과 누추함이 공존하는 도시다. 


눈이 부실만큼 화려한 센트럴의 번화가를 걷다가도 골목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홍콩 특유의 로컬스러움 속에서 7-80년대 홍콩 영화 속의 향수를 엿볼 수 있고, 침사추이의 허름하고 복잡스러운 골목 사이를 걷다가도 뉴욕 5번가만큼이나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발견하게 되는 의외성이 있다. 


이처럼 이질적인 과거와 현재, 세련된 서양 스타일과 정감 있는 홍콩 스타일이 함께 공존하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도시가 바로 홍콩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홍콩의 특별함이 있다. 홍콩스러움을 마음껏 뽐내며,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홍콩의 대중교통수단. 이층 버스와 빨간 택시, 낡은 트램과 스타페리는 홍콩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들이다. 




누구라도 홍콩을 생각하면, 함께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 강렬한 이미지의 이층 버스와 빨간 택시, 낡은 트램과 스타페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홍콩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해왔다. 


서로 퍼즐을 맞추듯 복잡한 도로 위를 방황하며 질주하는이층버스가 없다면…… 

침사추이의 뒷골목에 빨간 표시 등을 켠 채 나란히 줄지어 서 있는 빨간 택시들이 없다면……

홍콩섬 번화가를 땡땡거리며, 느릿느릿 질주하는 낡은 트램이 없다면…… 


그리고, 빅토리아 하버의 출렁이는 바닷물 위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넘실대는 스타페리가 없다면…… 

홍콩은 더 이상 홍콩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홍콩의 여행자들에게, 그리고 사진가들에게 어김없이 찍히고 마는 홍콩의 명물들이다. 


이 홍콩 특유의 올드함이 묻어나는 홍콩의 대중교통수단들은 은근히 감성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매력이 있다. 이들이 없다면, 홍콩은 더 이상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도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건너가고 있는 중이다. 


그곳에서 홍콩의 지인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침사추이에서 약속이 있을 때면, 나는 종종 스타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간다. 지하철을 타면 편하고 빠르게 갈 수 있음에도 나는 굳이 스타페리를 타기 위해 센트럴의 선착장으로 열심히 걸어간다.


조금 더 걸어야 하고, 조금 더 땀 흘려야 하고, 조금 더 시간이 걸려야 하지만, 나는 깜깜한 어둠 속을 광속으로 질주하는 지하철보다는 빅토리아 하버의 출렁이는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넘실 넘실 춤을 추며 횡단하는 스타 페리에 더 마음이 끌린다. 


센트럴에서 침사추이까지는 스타페리를 타고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짧은 여정이다. 오히려 센트럴 중심가에서 스타페리 터미널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이보다 더 걸릴 수도 있다. 


시간의 효율성이나 이동의 편리성을 따지자면, 매우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배가 떠나기 전 선착장에서의 기다림……그 설렘의 순간이 나는 좋다.





페리가 도착하고,‘철커덩’하며 거대한 철문이 열리면, 선착장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페리를 타기 위해 우르르 한 방향으로 몰려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덩달아 무리들을 따라가 스타페리가 펼쳐 놓은 철제 다리를 건너 배에 올라탄다.


잠시 후, 강렬한 모터 소리와 함께 굉음을 동반한 휘발유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게 되는데, 그때쯤이면 배는 이미 센트럴을 떠나 침사추이로 향하는 중이다. 


스타페리가 출발하면, 나는 눈을 감고 열을 세어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센트럴의 높디높은 빌딩들은 어느새 손바닥으로 가려질만큼 작아져 있고, 그 순간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설렘이 느껴진다.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여행의 느낌. 실은 누군가를 만나러 잠시 이동하는 것에 불과할지라도……나는 그런 여행의 느낌이 좋다. 


스타페리는 1988년에 처음 운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120여 년이 흘러 현재까지도 계속 같은 코스를 운행 중이다. 1880년, 한 사업가가 증기선 한 척을 가지고, 센트럴과 침사추이를 왕래하는 페리 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이후 현재의 스타페리 회사에 인수되어 지속적으로 성장해왔다. 


현재는 스타페리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9척의 페리와 2척의 프랜차이즈 페리를 가지고, 센트럴과 침사추이, 완차이와 침사추이의 두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이 오랜 역사성 만으로도 스타페리 여행은 정말 특별하다. 120여 년 동안 같은 방법으로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왕래한 수많은 옛사람들과 그 기억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그 자체로 이미 특별한 여행이 아닐까?  


옛 모습 그대로의 스타페리가 여전히 같은 코스를 운행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지 홍콩달러 2불에 불과한 저렴한 비용으로 이 특별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세상에 이보다 저렴하면서도 더 특별한 여행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까닭에 내셔널 지오그래피는 스타페리를 ‘일생에 꼭 한 번 가봐야 할 장소 50곳’ 중의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홍콩을 여행하게 된다면, 며칠 간의 여정 중 단 하루라도 스타페리를 타고 침사추이로 건너가 보자. 


기왕이면 해질 무렵이면 더 좋겠다. 

유독, 붉게 물들어 가는 빅토리아 하버의 석양을 감상하며,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스타페리만의 특별한 감성에 푹 빠져보면 어떨까?




조금씩 멀어져 가는 홍콩섬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온 듯한 느낌이지만, 실은 잠시 바다를 건너왔을 뿐이다. 


그리고, 바다 건너편 침사추이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떠나 온 홍콩섬은 화려하게 불을 밝힌 채, 다시 돌아오라는 매혹적인 눈빛으로 당신을 유혹하고 있을 것이다.


이 특별한 여행은 오직 스타페리를 타고서만 가능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스타페리는 홍콩섬과 구룡반도 사이를 쉼 없이 오고 간다. 앞으로 120년이 더 지난 후에도 변함없이 그러고 있을 것이다. 


내가 앉아 있는 스타페리의 이 딱딱한 나무의자 위에 먼 미래의 어느 누군가도 똑같이 앉아 같은 생각에 빠져있지 않을까?  120년 전 이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시공을 초월하여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 스타페리가 주는 특별한 감성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더 불편함을 감수하며, 페리 선착장으로 열심히 터벅터벅 걸어간다. 단지 좀 더 불편한 스타페리를 타기 위해서 말이다.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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