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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Jul 22. 2016

1881 헤리티지와 캔톤로드

홍콩의 럭셔리한 밤을 걷다


홍콩에서 가장 럭셔리한 거리는 어디일까?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과 명품 샵들이 모여 있는 홍콩섬의 센트럴, 멋쟁이 패션 브랜드와 백화점들이 즐비한 코즈웨이베이의 거리도 충분히 화려하지만, 홍콩에서 가장 럭셔리한 거리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침사추이의 캔톤로드(Canton Road)를 첫 번째로 꼽을 것이다.


1881 헤리티지를 중심으로 전 세계로부터 온 플래그쉽 명품샵들이 저마다의 개성과 럭셔리함을 뽐내고 있는 캔톤로드는 파리의 샹제리제 거리만큼이나 럭셔리한 조명과 치장으로 홍콩의 밤을 더욱 화려하게 빛나게 해주는 곳이다.  


나는 이 화려한 거리가 주는 럭셔리한 멋을 느껴보기 위해 어느 토요일 저녁, 캔톤 로드를 찾아가 보았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유난히도 사람들이 붐비는 침사추이 역에 내려 지루할 만큼 긴 지하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홍콩의 지하철역은 지상으로 나오기까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긴 경우가 많은데, 침사추이 역이 딱 그랬다. 급한 마음에 조금 짜증날 때도 있지만, 비 오는 날 이 지하통로를 잘 활용하면, 우산 없이도 웬만한 목적지는 비에 젖지 않고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긴 지하통로를 걸어 침사추이 역 L5 출구로 나오니, 뜻밖의 위치에 야외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영국 식민지 시대의 위엄이 느껴지는 옛 건축물이 나타나는데, 이 건축물은 바로 1881 헤리티지라는 곳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축 유산인 1881 헤리티지는 1881년부터 1996년까지 홍콩 해양경찰본부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현재는 6년에 걸친 리노베이션을 거쳐 플래그쉽 명품샵들이 입점해 있는 럭셔리 쇼핑몰로 변신하였지만, 과거에는 식민지 시대의 관공서로 사용되던 곳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관공서 건물은 유독 눈에 띄게 위엄 있고, 화려한 모습이다. 당시가 식민 통치 시절이었다면,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어떤 건물 앞에 섰을 때, 그 규모가 크고 화려할수록 순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옛 시대부터 관공서 건물을 그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었던 까닭은 이런 심리를 이용해 통치를 보다 용이하게 하려 함이었을 것이다. 


1881 헤리티지라는 명칭은 말 그대로 1881년부터 이어져 내려 온 과거 시대의 유산이라는 뜻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제외하면, 홍콩의 역사와 문화는 그 절반도 남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홍콩 사람들의 관념과 문화 속에는 여전히 영국 식민지 시대의 정서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편이다. 그런 배경하에서 홍콩 정부는 영국 식민지 시대의 수많은 유산들을 보호 문화재로 지정하였고, 1881 헤리티지 역시 1994년에 보호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나는 이제 막 조명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1881 헤리티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빅토리안 건축 양식이 투영된 이 건축물 자체도 멋지지만, 뭐니 뭐니 해도 멋진 건 이 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이다. 


깜깜한 어둠이 내려옴과 동시에 1881 헤리티지를 가득 채운 고가의 명품샵에 진열된 보석들이 일제히 빛을 발산하는 듯, 1881 헤리티지는 일순간에 은하수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별천지로 탈바꿈한다. 



어둠이 깔리기 직전과 직후, 단지 10여분 사이에 1881 헤리티지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홍콩에 멋진 곳들이 많지만, 1881 헤리티지의 야경만큼 화려하고 럭셔리한 곳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1881 헤리티지의 멋진 야경이 시작될 무렵, 나는 상층부 중앙에 있는 메인 빌딩을 지나 반대편 테라스로 걸어가 보았다. 1881 헤리티지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는 난간 옆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에 하얀 등대 모양의 원형 건물을 만나게 되는데, 이 건물의 이름은 타임볼 타워이다. 


도대체 무슨 용도의 건물일까 궁금하여 그 내부로 잠깐 들어가 보았다. 조그만 원형의 건물 내부에는 나선형의 철제 계단이 있어 2층으로 올라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타워 안에는 커다란 금속공이 있는데, 매일 오후 1시가 되면, 이 공을 떨어뜨려 시간을 알려준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옛날부터 이어지던 전통이고,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타임볼 타워 앞에 서면, 1881 헤리티지의 멋진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사진을 찍는다면, 전체 야경을 한 프레임에 멋지게 담을 수 있는 포토스팟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밤이 어두워지면, 커다란 삼각대와 카메라 장비들을 들고 와서 저마다의 작품 활동에 열중하는 사진가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때로는 유명 스타들의 화보 촬영이나 코스프레 복장을 한 일반인 동호회원들의 사진 촬영 현장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멋진 곳이라면 어디라도 사진가들의 레이더에 가장 먼저 포착되기 마련이다. 나는 타임볼 타워의 앞의 테라스에 서서 이 황홀한 야경에 흠뻑 취해 한 동안 멈춰서 있었다. 



1881 헤리티지는 멋진 조명과 더불어 값비싼 명품샵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럭셔리한 분위기가 있다. 저마다 최고라고 자랑하는 플래그쉽 명품샵들의 쇼윈도는 마치 미술관의 갤러리처럼 어느 곳 하나 미학적으로 꾸며지지 않은 곳이 없다. 


단지 상품을 진열하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저마다 자기 브랜드의 예술적 가치를 뽐내려는 듯 경쟁적으로, 그리고, 예술적으로 그 아름다움을 한껏 발산하고 있다. 대부분 구경할 엄두도 나지 않는 엄청난 고가의 브랜드들이지만, 이 멋진 쇼윈도를 구경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은 충분히 럭셔리해지고 있다. 아니, 어쩌면, 럭셔리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여기서 부러우면 지는 거니까……


1881 헤리티지를 한 바퀴 둘러보고 나서 티파니 매장 옆길로 나오게 되면, 이제 캔톤 로드를 만나게 된다. 길 건너편으로 하버시티 쇼핑몰과 마르코 폴로 호텔이 있다. 그리고, 캔톤 로드를 따라 양 옆으로 티파니, 페라가모, 루이뷔통, 반클리프 앤 아르펠스, 피아제 등 이름만 들어도 엄청난 가격에 벌벌 떨게 되는 명품샵들이 나란히 도열해있다. 





명품 하나쯤 아무렇지도 않게 충동적으로 지를 수 있는 재력가라면 모를까,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에게는 마냥 부담스러운 거리……하지만, 물질에 대한 탐심을 버리고, 그냥 이 거리의 럭셔리함을 느껴보면 어떨까?  


그 순간, 이 화려한 켄톤 로드는 인간의 탐심으로 치장된 부담스러움 대신 갤러리 속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멋지게 다가올 것이다.


이 멋진 거리를 충분히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보자. 그리고, 이 거리의 끝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처음에 나왔던 침사추이 역 L5 출구로 다시 돌아가 보자. 


지하철 출구 바로 옆에 원 패킹(One Peking)이라는 빌딩이 있는데, 이 빌딩의 29 층에 전망 좋은 바가 하나 있다. 


침사추이 일대에서 시원한 전망과 세련된 분위기로 소문난 “아쿠아바”.  홍콩섬의 야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쿠아 바에서 오늘 밤, 럭셔리한 산책의 마지막 코스를 장식해보면 어떨까?  


홍콩 섬과 빅토리아 하버의 멋진 야경을 안주 삼아 가볍게 칵테일 한 잔으로 하루를 정리한다면, 이보다 완벽하게 럭셔리한 밤 마실 코스는 없을 것이다.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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