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가장 우아한 오후의 차 한 잔
홍콩을 여행할 때, 딤섬과 더불어 꼭 한 번 먹어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애프터눈 티 세트이다.
오후 3시에서 5시 사이 점심식사 후 약간 출출해질 시간에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 간단한 스낵류와 더불어 커피나 차를 마시는 것을 '애프터눈 티'라고 하는데, 이러한 습관은 1940년대 영국에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 역시, 영국식 애프터눈 티를 마시는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물론, 요즘 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일 오후 시간에 여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홍콩의 유명 카페에는 여전히 애프터눈 티를 즐기며, 여유로운 오후 한 때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주말 오후가 되면, 늦은 점심으로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으러 나온 가족 단위의 홍콩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홍콩에서 애프터눈 티 세트로 유명한 곳으로는 침사추이 페닌슐라 호텔의 더 로비(The Lobby)와 리펄스 베이의 베란다(Veranda)가 있다. 두 곳 모두 페닌슐라 호텔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그 밖에도 애프터눈 티로 유명한 호텔이나 카페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페닌슐라 호텔의 더 로비는 홍콩에서 최초로 영국식 애프터눈 티 세트 메뉴를 선보인 곳으로 유명하다. 1인 세트의 가격이 홍콩달러 298 불이니, 그 유명세만큼이나 가격도 비싼 편이다.
비싼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꼭 유명 호텔을 찾지 않더라도 거리의 아무 카페라도 찾아가 저렴한 가격의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겨도 좋다. 대부분 가격 대비 만족할 만한 정도의 퀄리티를 보장한다.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아내와 함께 페닌슐라 호텔의 더 로비를 찾았다. 오후 네 시쯤이었으니, 늦은 아침 겸 이른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기에 딱 알맞은 나른한 오후 시간이었다.
페닌슐라 호텔의 로비에 도착하니, 애프터눈 티 세트를 먹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적어도 30~40명 정도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이 호텔에 숙박하는 투숙객이라면, 미리 예약이 가능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이렇게 긴 줄을 서서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워낙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보니, 연중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홍콩에서 이 정도 기다림은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할 대가이기도 하다.
그렇게 약 1시간 정도를 선 채로 기다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비싼 가격을 감안해 애프터눈 티 세트 하나와 음료 한 잔을 추가로 주문했다. 애프터눈 티 세트에는 커피 또는 차 한 잔이 포함되어 있다.
티 세트를 기다리는 동안, 호텔의 로비를 찬찬히 둘러보았다. 홍콩에서 최고로 비싼 호텔답게 그 분위기가 럭셔리하다. 최근에 새로 생긴 호텔 중에는 페닌슐라보다 훨씬 세련된 곳도 많지만, 이 호텔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그 오랜 역사성과 고전적인 멋스러움 때문일 것이다.
페닌슐라 호텔은 1928년 홍콩 구룡반도 침사추이에 최초로 문을 열었다. 약 8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호텔이니, 그 특별함이 최근에 생긴 다른 호텔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스타들이 이 호텔을 다녀갔을 것이다. 어쩌면 깜짝 놀랄 만한 유명 인사가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 똑같이 앉아 애프터눈 티 세트를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지금도 종종 그런 특별한 경험은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아한 3단 트레이와 함께 드디어 애프터눈 티 세트가 나왔다. 이 우아한 3단 트레이는 명품 브랜드인 티파니에서 직접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이 3단 트레이의 1층에는 스콘이 놓여 있고, 2층에는 샌드위치, 3층에는 마카롱과 푸딩이 예쁘게 놓여 있다. 보기만 해도 너무 멋지고 우아하다. 이 순간 만큼은 어느 왕실의 귀족이라도 해도 전혀 부럽지 않을 것이다.
어느 왕실 궁전의 로비라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이 우아하고 멋스러운 공간에서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이 아름다운 애프터눈 티 세트를 앞에 두고, 나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휩싸였다.
잠시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가장 아래층의 스콘에서부터 샌드위치, 케이크, 푸딩 순으로 먹기 시작하여 순식간에 3단 트레이를 깨끗이 비워 버렸다. 이 우아한 분위기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후회스러울 만큼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아한 멋을 즐기려면 반드시 여유로운 마음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바쁘게 살아오느라 그런 여유를 배운 적도,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었던 것은 아닐까……
차를 마시고, 이것저것 주워 먹으며,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책도 잠시 보다가, 사진도 몇 컷 찍어보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밖은 어두워지고, 실내의 조명은 은은해졌다.
이 멋스럽고, 아름다운 공간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여전히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인 뒷사람들의 지친 표정을 마주하니,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마냥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미안해져 “마이딴”을 외치고, 자리를 일어났다.
가격은 꽤 나왔지만, 이 아름답고 우아한 공간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잠시나마 황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니, 홍콩에서 한 번쯤그 만한 사치를 누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가로운 주말 오후, 또다시 입이 심심하고 배가 허전해지는 시간, 애프터눈 티 한 잔의 여유와 우아하고 멋스러운 분위기가 그리워진다면, 다시 한 번 페닌슐라 더 로비를 찾게 되지 않을까?
(글/사진) 꾸르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