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려군의 팬이라면 꼭 한 번 가볼 만한 카페가 있다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여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 여곡의 히트곡을 남기고, 출생지인 대만을 비롯하여, 홍콩, 중국 본토, 동남아시아, 일본,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까지 만인의 연인으로 추앙받았던 한 여가수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등려군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 <월량대표아적심>의 가수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17년이나 지났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불려지고 있으며, 전 세계에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수많은 팬들이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이상하리만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온 가수나 배우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가수 김광석과 마이클 잭슨, 휘트니 휴스턴이 그랬고, 배우 장국영이 그랬으며, 등려군 또한 그랬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 그들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팬들의 마음을 더욱 애절하게 하며, 살아 생전보다 더 애틋한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등려군의 노래를 좋아했다. 잘 모르는 중국어 가사를 여러 번 반복하여 듣고,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어 가사를 외워 부를 만큼, 그녀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영화 <첨밀밀>을 통해서 등려군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등려군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홍콩에서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 하나 있다. 바로 이스트 침사추이 역 근처에 위치한 “테레사 뉴 라이프 커피숍”이다.
이 커피숍은 홍콩 뉴라이프 정신 재활회(New Life PsychiatricRehabilitation Association)와 등려군 기금회(Teresa TeungFoundation)에서 만든 등려군 테마 카페이다.
이 카페는 입구부터 온통 등려군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고, 등려군의 히트곡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등려군과 관련된 갖가지 기념품을 판매한다. 이 카페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레 등려군을 추억하게 된다.
또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이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홍콩 뉴라이프 정신재활회에서 재활 훈련을 받고 나온 정신질환자들이라는 점이다.
이 카페는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들의 서비스는 어딘가 어눌하게 느껴지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나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친절함이 배어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대형 브로마이드 속의 등려군처럼 말이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아내와 함께 등려군 카페를 찾아갔다. 우동 한 그릇과 티 세트를 주문했는데, 음식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생각보다 괜찮은 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은 돈이지만, 좋은 일에 쓰인다는 점에 넉넉하고 훈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등려군의 사진으로 둘러싸인 카페에 앉아 계속 흘러나오는 그녀의 명곡들을 듣고 있으니, 문득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주인공인 여명과 장만옥은 둘 다 등려군의 노래를 좋아했다. 계속 엇갈리던 그들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그곳은 바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을 알려주던 어느 상점 쇼윈도에 진열된 텔레비전 앞이었다.
결국, 등려군이 내내 엇갈리던 그들의 인연을 다시 이어준 셈이다. 이 마지막 장면을 회상하던 중에 때마침 카페에서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 <월량대표아적심> 이 흘러나왔다.
70년대 그녀가 활동하던 당시 중국 본토에서는 사상적인 이유로 그녀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그녀의 입국조차 금지시켰다. 하지만, 중국과 대만, 그리고 홍콩의 모든 중국인들은 어디서든 그녀의 노래를 즐겨 들었고, 이념 대립을 너머 등려군의 노래를 통해 하나로 이어졌다.
마치 영화 첨밀밀에서의 여명과 장만옥이 그랬던 것처럼……
역사상 그녀만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여가수가 또 있을까?
사상과 국경을 너머 만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맴돌고 있다.
등려군의 노래를 좋아하며, 여전히 등려군과 그녀의 노래를 추억하고 있다면, 침사추이의 “테레사 뉴 라이프 커피숍”으로 가보자.
그녀는 여전히 앳된 얼굴의 환한 미소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글/사진) 꾸르베(Courb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