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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Aug 20. 2016

몽콕, 레이디스 마켓

덜 세련되었으나, 조금 더 홍콩스러운 거리


별들이 소곤대는 홍콩의 밤거리. 밤이면 밤마다 홍콩은 낮의 무료함을 떨쳐버리고, 화려한 별천지로 탈바꿈한다. 별들이 속삭이듯, 살랑살랑 내 마음을 어루만지며, 홍콩의 밤은 나를 유혹한다. 


그 유혹에 못 이기는 척 집 밖을 나서게 되면, 발걸음은 자연스레 홍콩의 밤거리를 누비게 된다. 


오늘 밤은 어느 거리를 걸어 볼까?  

분위기 좋은 바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소호의 밤거리를 걸어볼까?  

아니면, 세련된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샐러리맨들이 오고 가는 센트럴의 밤거리를 걸어볼까?  

아니면, 화려한 플래그쉽 명품샵들이 인간의 탐심을 자극하는 캔톤로드를 걸어볼까?  

그것도 아니면, 홍콩의 백만불 야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를 걸어볼까?


홍콩은 낮보다 밤이 더 아름답다. 


어지러운 간판과 네온사인의 불빛이 반짝거리는 홍콩의 밤거리를 걷고 있으면, 마치 은하수를 탐험하듯, 나도 모르게 별천지 홍콩의 화려한 밤에 푹 빠져 버리게 된다. 



하지만, 오늘은 이 화려한 홍콩의 밤거리를 잠시 벗어나 조금 칙칙하고, 때론 음침하기까지 한 몽콕 재래시장의 밤거리를 걸어볼까 한다.


몽콕에는 레이디스 마켓, 제이드 마켓, 금붕어 시장, 꽃시장, 남안까이 등 홍콩을 대표하는 재래시장들이 모여 있다. 마치 서울의 남대문 시장처럼 이 일대가 온통 재래시장이다. 


이렇게 재래시장이 많이 모여 있는 탓에 몽콕의 밤거리는 홍콩 섬의 세련되고 화려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있다. 홍콩 섬 보다 덜 세련되었지만, 조금 더 홍콩스럽다고나 할까?


일반적으로 여행자들이 생각하는 ‘홍콩스럽다’는 말은 백만 불 야경으로 대표되는 홍콩의 화려한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내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홍콩스럽다’라는 말은 조금 더 홍콩 현지인들의 삶에 친숙한 로컬스러운 풍경을 의미하고자 한다.



어느 도시를 가던지 그 도시의 재래시장에 가면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가득하다. 시장 구경이 흥미로운 이유는 꾸며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사는 모습이 그대로 한 곳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치열하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흥정을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인들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착이 묻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몽콕의 여러 재래시장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즐겨 찾는 레이디스 마켓을 가보려고 한다.


‘레이디스 마켓’이라는 이름 그대로 레이디스 마켓은 처음 시장이 생겼을 때, 주로 여성용 의류, 신발, 잡화, 액세서리 등을 팔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역시 여성들을 위한 제품들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남성용 가방이나 의류뿐만 아니라, 여행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념품들도 많이 팔기 때문에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 구경해 볼만한 곳이다. 


레이디스 마켓을 가기 위해 몽콕 역에 내렸다. 복잡한 지하철 출구를 찾아 밖으로 나오는 순간, 갑작스러운 현기증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하늘을 뒤덮은 어지러운 간판들과 눈 앞에 가득 찬 개미떼 같은 사람들…… 아, 숨을 쉬기도 힘들 만큼, 복잡하고, 정신없고, 답답하다. 



주말 오후의 코즈웨이베이 거리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지럽다. 아마도 지금 이 순간, 홍콩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몽콕이 아닐까?


지하철역에서 나와 레이디스 마켓까지 걸어가는 동안 나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부딪치게 되었다. 정말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만큼 몽콕의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서 나왔을까?  홍콩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단 말인가?  


몽콕의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면면을 훑어보니, 홍콩 현지인들부터 관광객들, 젊은이부터 나이 드신 어른들까지 그 면면이 매우 다양하다.


 시장은 본래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인파 속을 헤엄쳐 약 20분 정도 헤매다가 간신히 레이디스 마켓에 도착하게 되었다.


거리의 양 옆으로 천막을 친 노점상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고, 그 사이 좁은 통로로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시장 구경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 시장이 처음 생겼을 때는 당연히 현지 사람들이 주로 모였을 텐데, 지금은 현지 사람들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더 많아 보였다. 



레이디스 마켓의 물건들은 아무래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긴 하지만, 상인들은 홍콩의 물가 수준과 화폐가치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 바가지 가격을 내세워 흥정을 시작한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계산기를 앞에 놓고, 원하는 가격의 숫자를 두드려가며, 흥정이 반복된다. 때로는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다며, 계산기를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상인들도 있다. 하지만, 깜짝 놀란 손님이 발걸음을 돌리는 순간, 상인들은 금세 표정을 바꾸며, 살갑게 달려와 최후의 가격을 제시한다. 


그렇게 흥정하여 깎고 또 깎아 엄청난 할인가에 구입한다고 해도 이 가격이 정말 싸게 산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단지, 얼마를 깎아서 샀다는 만족감만 있을 뿐…… 


흔히들 일단 반값으로 후려치고 흥정을 시작하라고들 하지만, 흥정을 하는 과정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 


일단,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더라도 내가 그 물건에 이미 마음이 있다는 느낌을 상인에게 내비쳐서는 안 되며, 때로는 그럴싸한 할리우드 액션도 필요하다. 마음에 들지만, 가격 때문에 포기하는 척하는…… 


그리고 돌아서며 상인의 눈치를 슬쩍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이 더 깎아줄 마음이 있다면, 돌아서는 당신의 옷소매를 붙잡을 것이며, 그때 당신은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의해야 할 점은 아무리 흥정이라도 너무 무리한 가격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간혹, 너무 심하게 할인을 요구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물건을 빼앗아가는 상인들도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원래 가격에 물건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게 된다.



흥정은 정말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쉽지 않은 과정이다. 이래 저래 귀찮다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해야 한다. 어차피 적정 가격은 없으니, 그저 흥정하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 


적당히 깎고 나서 얼마 정도 싸게 샀다는 재미로 만족하면 될 일이다. 어차피, 이 시장에는 제 값을 주고 산다고 하여 부담스러울 만큼 고가의 물건은 없으니, 남들보다 조금 더 비싸게 산다고 하여 크게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조금 더 비싸게 주고 사더라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곳 상인들의 삶에 보탬을 준 것이라 생각하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레이디스 마켓의 물건들은 싸구려 티가 나고, 짝퉁이며, 조악한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잘 찾아보면, 꽤 쓸만한 물건들도 종종 있다. 이만한 가격에 적당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레이디스 마켓이 주는 큰 혜택이다.

 

레이디스 마켓을 즐기려면, 너무 알뜰하게 쇼핑할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적당한 마음가짐으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보자. 그럴수록 더욱 흥미로운 곳이 바로 몽콕의 재래시장 구경이다.


외국에 나와 살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낯선 타지에 살면서 한 푼도 손해보지 않고 살려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차피 어느 나라나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요금은 일정 부분 존재하며, 현지인들과 동등한 정도의 언어능력이나 정보를 갖추지 않고서는 그 바가지 요금을 완전히 피해갈 수는 없다. 외국인이니까 감당해야 할 약간의 손해도 낯선 타지에 적응하며 살기 위한 추가 비용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포기한 약간의 손해가 누군가에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소중한 수입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약간의 추가 비용에 너무 연연하지는 말자. 특히, 레이디스 마켓과 같은 재래시장에서는……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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