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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Sep 16. 2016

홍콩의 모든 소망들이 모이는 곳,
웡타이신 사원

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에는 언제나 간절함이 묻어 있다


인간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가 있을 때, 신에게 매달려 기도한다. 그 애절함이 더하면 더할수록 우리는 더 간절하게 매달려 기도하게 된다. 


사랑하는 자녀의 대학 진학을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이나, 심한 질병에 시달리는 사랑하는 가족의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이나, 질병이나 큰 사고 없이 한 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나……사람들의 소망과 기원에는 언제나 간절함이 묻어 있다. 


그리고, 그 소망과 기원에 담긴 사연들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본래 소망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과 욕망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니, 그 사연들이 지극히 인간적인 본성으로 회귀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홍콩에는 불교와 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홍콩의 도심을 걷다 보면, 골목골목마다 작은 규모의 도교 사원들을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우리에게 생소한 종교인 도교는 홍콩인들에게는 생활 깊숙이 널리 퍼져 있는 종교 중 하나다. 






홍콩의 도교 사원들 중에서도 웡타이신 사원은 그 규모가 가장 크다. 뿐만 아니라, 이 사원은 특이하게도 도교, 불교, 유교의 3가지 종교를 모두 품고 있기도 하다. 


이 사원은 4세기에 태어나 중국 헝산에서 성인이 된 웡타이신을 기리는 곳으로, 중국 광둥 지방의 양치기 소년이었던 웡타이신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쳐주어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원했다고 한다. 1915년 도교의 한 수도승이 중국 광둥 지방으로부터 웡타이신의 초상화를 홍콩으로 가져왔고, 그 초상화를 이 웡타이신 사원에 모셨다고 한다.


웡타이신은 도교의 신선들 중에서도 최고의 신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웡타이신 사원은 “모든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소문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그런 까닭에 웡타이신 사원은 저마다의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나는 웡타이신 사원을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찾아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MTR 을타고, 웡타이신 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웡타이신 사원이 있다. 찾아가는 방법은 간단했지만, 지하철 역에서부터 사원까지 이동하는 것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길이 복잡해서라기보다는 지하철 역에서부터 사람들이 무지무지 많았기 때문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부터 엄청나게 긴 줄이 이어지는데, 이 줄은 웡타이신 사원의 입구를 지나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출구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 혼잡한 군중 속에 한 번 휘말리게 되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웡타이신 사원을 한 바퀴 돌아 다시 MTR 역으로 나오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의아해하던 중,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아차, 오늘이 구정이구나’


홍콩 사람들은 매년 구정마다 새해의 소원을 기원하고,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기 위해 이 사원을 찾는다. 


게다가, 늘 꾸준히 찾아오는 관광객들까지 이 많은 인파에 합류하고 있으니, 이렇게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충분히 예상했어야 하는 일을 예상치 못한 탓으로 나는 아내의 불만 어린 시선과 투정을 감내해야만 했다. 어쨌든 오늘이 구정이었다는 사실과 웡타이신 사원이 붐빌 것이라는 예상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나는 군중들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웡타이신 사원으로 밀려 들어갔다. 이제는 빠져나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인파에 속해 웡타이신 사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경찰들이 투입되어 사람들의 동선과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에 밀려 사원 안으로 들어서니, 곳곳에서 향 피우는 연기와 냄새가 진동한다. 그리고, 정성스레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사람들, 주변의 점집에서 운세를 상담하는 사람들, 그 와중에 신기한 풍경들을 사진기에 담으려 애쓰는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사원 주변의 점술가들은 대부분 광둥어 밖에 못하지만, 간혹 영어로 상담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나는 점술을 믿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진 대로 따라가는 것이라면, 인생이 너무 허무하지 않은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진 운명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 삶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고, 간절히 소망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사원의 한 편에는 예측할 수 없는 앞날의 소망을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 편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과 운세를 알아보기 위해 점술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쪽이든 그 본질은 알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 선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지만,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는 양측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웡타이신 사원은 홍콩의 다른 사원과 비교하여 규모도 크고, 보다 화려하다. 햇빛에 반사되어 더욱 빛나는 황금빛 기와지붕이 그 화려함에 빛을 더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원을 좀 더 둘러보고 싶었지만, 이 사원 내에서 그런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워낙 몰리다 보니,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구경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진이라도 찍으려 하면, 뒤에서 사람들이 계속 밀려든다. 그리고, 경찰들이 통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서 있지 말고, 계속 움직이라고 소리친다. 


결국,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인파에 밀려 사원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지하철역으로 돌아오게 된다. 약간 허무하지만, 웡타이신 사원 구경은 그렇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끝나게 되었다. 


구정 연휴, 웡타이신 사원을 찾는다면, 정말 고생스러운 여행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홍콩인들의 새해 풍습을 직접 체험하고,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하고 흥미로운 장면들을 보고 싶다면, 굳이 새해 첫날 이 곳을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여행은 항상 고생한 만큼, 많은 것을 보여주는 법이니까……


(글/사진) 꾸르베(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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