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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urbet Sep 09. 2018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수도,
리스본

포르투갈, 리스본

포르투갈 리스본

제국의 흥망성쇠를 지켜온 수도, 리스본


18세기 리스본은 영국의 런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더불어 유럽에서 가장 번성했던 항구도시였다. 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의 황금기였던 대항해시대의 영화와 번영의 중심에 있었던 제국의 수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1755년 리스본 대지진과 함께 모든 것은 사라지고, 혼돈과 혼란의 시대가 찾아왔다. 많은 사람들이 지진으로 실종되거나 사망했고, 아름답고 화려했던 건축물들은 무너졌으며, 거리는 약탈과 범죄로 혼란스러웠다. 바로 그 때, 혼돈의 시대를 수습하고, 새 시대의 희망을 연 인물이 있었다. 퐁빨 후작. 그는 당시 국왕이었던 호세 1세에게 "죽은 자를 묻고, 산 자에게 먹을 것을 줘야 합니다"라며, 재난수습책을 건의했고, 왕은 그에게 도시 재건의 전권을 부여했다.


퐁빨후작은 우선 범죄자를 처단하여 사회 질서를 회복하였고, 식량보급소를 세워 구호 식량을 공평하게 배분했다. 그의 수습책으로 사회가 급속히 안정되자, 그는 리스본 재건사업을 본격 추진하였고, 그가 재건한 리스본이 바로 오늘날 리스본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리스본 여행 3일차. 저녁에는 야간 열차를 타고 스페인으로 떠날 예정이어서 리스본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지독한 몸살 감기로 시작했던 2박 3일의 짧은 여정. 아쉬운 마음에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퐁빨 후작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마치고, 거리로 나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리스본 거리를 둘러 볼 차례다. 


신 시가지에 속하는 퐁빨 후작 광장에서 출발하여 구 시가지 방향으로 무작정 걸어보았다. 리베르다드 거리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가니, 레스따우라도레스 광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로시우 광장과 꼬메르시우 광장이 나타난다. 



코메르시우 광장



구시가 여행의 중심인 로시우 광장에는 당시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초대 총독, 돔 페드로 4세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주변으로 아름다운 옛 건축물과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눈에 띈다. 


퐁빨 후작의 재건 사업 이후, 나라가 크게 번영하지 못한 탓에 오늘날 리스본에는 오래되어 낡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거의 허물어질 듯 낡은 외벽의 집들과 색이 벗겨진 창틀과 대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낡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리스본 구시가의 거리가 초라해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 낡은 외벽을 여전히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포르투갈 특유의 아줄레주 타일 장식 때문이다.


"광택을 낸 돌멩이"라는 뜻의 아줄레주는 주석 유약을 사용해 타일 위에 그림을 그려 만든 포르투갈식 도자기 타일이다. 이 예술적이며 아름다운 타일들은 리스본 거리의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 무언가 꼭 기념품을 하나 사야 한다면, 이 아줄레주 타일 장식이 가장 끌린다. 그 만큼 아줄레주 타일 장식은 멋지고, 우아하며, 리스본을 가장 빛나게 해주는 장식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줄레주 타일 장식에 마음이 사로잡혀 거리 곳곳을 누비다가 우연찮게도 "산타주스타의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게 되었다. 리스본 구시가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이 엘리베이터는 1902년에 에펠탑의 설계자인 구스타프 에펠이 설계하였다고 한다. 에펠은 그렇게 파리 에펠탑에 이어 리스본에도 또 하나의 랜드마크를 남겨 놓았다.




산타주스타의 엘리베이터


산타주스타의 엘리베이터는 파리의 에펠탑 만큼 거대하거나 눈에 띌 만큼 대단한 건축물은 아니지만,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루프탑 카페가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이 곳에서 로시우 광장을 중심으로 리스본 구시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나는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산타주스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 전망대에 올라 리스본을 감상했다. 리스본은 그렇게 낮에도 아름답고, 밤에도 아름다웠다.


산타주스타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 리스본 구시가의 전망을 감상했다면, 이제 또 하나의 명물인 리스본의 트램을 타보아야 한다. 나는 로시우 광장의 한 켠에 정차되어 있는 낡은 트램에 무작정 올라탔다. 그리고, 행선지를 묻기도 전에 트램은 털털거리며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램은 가파른 언덕길을 힘겹게 오르는가 하면, 택시 한 대도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도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그렇게 리스본 구시가의 오래된 골목과 골목 사이를 샅샅이 운행하며,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리스본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삶 속 깊숙한 곳까지 트램은 구석구석 데려다 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미로 같은 골목 사이를 누비다가 트램은 어느새 시야가 확 트인 언덕 위에 정차하였다. 나는 그 곳에 잠시 내리기로 했다.



낡은 트램을 타고 리스본을 여행하다


저 만치 푸른 테주강이 보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리스본 특유의 빨간 지붕들이 내려다 보이는 이 언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샹 조르제 성이 있다. 내린 곳에서 좀더 가파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니, 금새 견고한 성벽이 나타난다. 로마인들이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 성은 리스본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성벽에 오르니, 저 멀리 테주강과 대서양의 바다부터 리스본의 구시가와 신시가. 사방으로 모든 것들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리스본의 옛 모습이 고스란히 간직된 알파마 지구와 로시우 광장 주변의 번화가인 바이샤 지구, 리스본 대지진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바이루 알뚜지구, 반대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시아두 지구와 퐁빨 후작 광장 너머 리스본 신시가까지, 이 한 자리에서 리스본의 모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 하늘이 참 맑고 파랬다. 그 하늘 아래 수백, 수천개의 빨간 지붕들이 햇살을 만나 더욱 돋보였고, 테주강의 푸른 강물은 은하수처럼 반짝 반짝 빛나며 유유히 흘러갔다. 


아, 리스본.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왜 이제야 이 곳을 찾아왔을까? 


이제 곧 떠나야 하는 순간에 나는 리스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아름다운 도시, 리스본


옛 로마인들은 이 높은 곳에 요새를 지어 리스본 구석 구석을 내려다보며,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그리고, 지금 이 요새는 리스본을 찾는 여행자에게 리스본의 매력을 한껏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로 남아 있다.


대항해 시대와 함께 찾아 온 포르투갈 제국의 영화와 번영. 리스본 대지진과 함께 찾아 온 좌절과 절망, 그리고 전 세계를 제패했던 제국의 시대를 마감하고, 유럽의 빈국으로 전락한 오늘에 이르기까지 리스본은 제국의 흥망성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석처럼 아름다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리스본에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많고, 친절한 사람들이 있으며, 무엇보다 저렴한 물가와 맛있는 음식들이 있다. 게다가 오랫동안 지켜 온 이 도시의 아름다움이 세월의 빛바랜 흔적 속에서도 사파이어처럼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서울에서 이 곳까지 무려 17시간이나 걸려 도착했지만, 이 멀고 먼 곳까지 와야 할 이유,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해졌다. 그리고, 떠나는 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직감하고 있었다. 언젠가 또 다시 이 곳을 찾게 될 것이라고. 



2016.10

Lisboa, Portugal

By Courb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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