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록 더 재미있어지는 도시
홍콩별 여행자 01.
홍콩에 잠시 살게 되었다. 중국에 반환되었지만, 여전히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작은 도시.
이 작고 복잡한 도시에 살다 보면, 중국 대륙에서 오고 가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이들은 홍콩에서의 삶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답한 한숨을 내쉬곤 할 때가 있다. 홍콩처럼 좁고 답답한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느냐며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홍콩과 바로 인접한 심천만 가도 집의 평수나 건물의 천정높이, 도로의 너비 등 모든 것이 홍콩보다 훨씬 거대하니까 상대적으로 홍콩이 '개미세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홍콩에 처음 도착해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좁고 답답한 홍콩의 아파트 구조에 기겁을 하고 달아날 뻔한 적도 있었다. 어찌나 좁고 답답하던지 베란다에 나가면 바로 옆집과 악수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집과 집 사이가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냥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그런데, 2년 남짓 홍콩에 살아보니, 이제 홍콩 만큼 그리운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당면해야 하는 현실의 불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베어 익숙해졌지만, 홍콩의 치명적인 편리함과 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장점으로 다가왔다.
홍콩은 비좁다. 손바닥만큼 작은 면적 안에 콩나물 시루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엉켜 살고 있다. 그래서 불편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 불편함이 장점이 되기도 한다.
좁으니까 가깝고, 가까우니까 편리하다. 집 근처에 바로 멋진 식당과 카페가 있고, 슈퍼마켓과 쇼핑몰이 있다. 심지어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무실도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만 이동해도 멋진 바다와 해변이 있다. 한국에서는 여름 휴가철만 손꼽아 기다려 일 년에 한 번 겨우 할 수 있는 해수욕이 홍콩에서는 언제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홍콩에 한 번 살아 본 사람들은 언젠가 또 다시 홍콩을 찾게 되거나, 늘 홍콩에 다시 살고 싶은 그리움을 안고 살게 된다.
낯선 타지에 나와 산다는 것이 생각보단 쉽지 않고, 언어적인 장벽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차이와 차별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지만, 그런 면에 있어 홍콩은 외국인들이 와서 살기에도 정말 괜찮은 곳이다.
홍콩이라는 도시 자체가 기본적으로 외국인에게 호의적인 곳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국인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점점 중국인들이 주류가 되어 가고 있긴 하다.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주로 홍콩섬 동부의 사이완호와 타이쿠싱 지역에 많이 사는 편이다. 이 곳에 한국 국제학교가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교민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좁은 지역에 모여 살다 보니, 피부로 느끼는 친밀감이나 교류의 폭은 훨씬 깊고 넓은 편이다.
그런 까닭에 외국살이의 낯설음이 다른 나라에서보다는 좀 덜하지 싶다.
이 곳에 2년을 살아보니, 좁은 것이 단점이고, 동시에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끔씩 심천 지역에서 출장 와서 만나게 되는 한국분들은 꼭 이런 말을 한다.
" 홍콩에서 오래 살면 정말 정신병 걸릴 것 같아요. 하루면 다 돌아볼 것 같은데, 홍콩에서 오래 살면 뭐하고 지내요? 정말 심심할 것 같은데… "
과연 그럴까?
천만의 말씀. 홍콩은 까면 깔수록 그 속살이 계속 나오는 양파와 같은 도시다.
'홍콩'이라는 이 좁은 면적의 섬 위에는 정말 모래알처럼 빼곡히 찬 수 많은 건물들이 있고, 그 사이 사이에 콩나물 시루만큼이나 수 많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홍콩의 진정한 매력을 엿보려면, 이 골목길들을 걷고 또 걸어봐야 한다
마치 홍콩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이 골목 사이 사이에는 알면 알수록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홍콩의 진면목이 군데군데 숨겨져 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 홍콩의 재미거리를 하나 하나 찾아가는 일은 결코 하루 이틀 안에 끝날 일이 아니다.
침사추이의 현란한 밤거리를 거닐며, 옛 홍콩 영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는 일.
소호의 골목길을 누비며, 맛있는 브런치 카페를 찾아내고 그 곳에서 여유롭게 오후 시간을 보내는 일.
란콰이퐁의 호프 집에서 해피타임 맥주 한 잔을 즐기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일.
캔톤 로드의 럭셔리한 명품 거리를 거닐며, 고급 브랜드의 신상들을 곁눈질하며 아이 쇼핑하는 일.
몽콕의 재래시장 골목을 거닐며,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일.
할리우드 로드의 골동품 거리를 거닐며, 중국스러운 옛 물건들을 구경하는 일.
스탠리의 시장 골목을 거닐며, 무명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하는 일.
그리고, 때로는 홍콩의 산과 바다로 나가 자연과 함께 산책하는 일 등등 …
홍콩의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즐거움들은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수도 없이 많다. 그렇게 까면 깔수록,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는 홍콩.
그 재미를 알아갈 때쯤 나는 홍콩을 떠나야 했다. 홍콩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마치 논산훈련소에 입소할 때처럼 2년이라는 시간이 언제 갈까 막연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그 2년이라는 시간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홍콩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내가 살던 집은 66층이었는데, 침실에서 바라보는 야경이 정말 멋졌다.
이 멋진 뷰에 반해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 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홍콩을 떠나던 마지막 밤에 나는 창가에 걸터 앉아 와인 한 잔을 마시며, 반짝 반짝 빛나는 홍콩의 야경을 내려다 보았다.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아름다운 야경,
그리고 어렸을 땐 하늘보다 더 높은 줄 알았던 63 빌딩보다 더 높은 집에서 살아보는 일.
홍콩에 오지 않았다면 평생 경험해보지 못했을 일이다. 홍콩에 살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말한다.
“ 홍콩은 꼭 한 번 살아볼 만한 도시예요. 홍콩에 살면 살수록 홍콩이 참 편리하고 재밌는 곳이라는 걸 매일 느끼곤 하죠 ”
홍콩을 떠나고 나니, 어느 날 문득 홍콩이 그리워진다. 홍콩에서의 2년, 그 추억들과 함께 나는 홍콩이 그립다.
(글/사진) Trip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