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be you should talk to...

첫 유산과 상실감의 회복

by 행복한 찌질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사는 것이 바빠, 혹은 다른 재미난 세상일이 많아서, 오랫동안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 요즘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Lori Gottlieb의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심리학 전공을 하면서 심리관련 서적은 학업의 일환으로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 관련 에세이나 상담 에세이는 왠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지지가 않았다. 소설 책도 손이 가지 않는데, 이런 상담 에세이에 손이 갈리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어떤 유튜버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을 보았다. 상담사 이전에 방송국 일도 한 작가라 글이 일반 상담 에세이와 다르다고. 한번 쯤 읽어야지 하면서 지냈다.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역시 먹고 사는 게 바쁘고, 아직 어리다 생각해서 아이 문제는 우리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니고, 승진을 하고, 집을 사고 하는 성취감과 일상 생활의 피곤함으로 아이를 가질 겨를이 없었다. 결혼을 다른 친구들 보다 조금 일찍 했기 때문에, 아이가 안생기는 조바심은 일찍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씩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도 이제는..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남편도 아이들을 좋아했고, 친구들 아이들도 우리를 좋아했다. 우리는 간절해졌지만 마음만 먹으면 아이가 곧 생길 거라 믿었다. 그러나 결혼 후 5년 가까이 소식이 없었다. 우리는 산부인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 뒤 난임 병원으로 옮겼다.

다낭성 증후군으로 인한 난임. 생리 주기가 불규칙하고 길어서, 남들보다 무언가 시도하는 데 오래 걸렸다. 배란 주기를 잡고 자연 시도 하면서 1년,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1년 반. 원인을 찾기 위해 자궁경과 복강경까지 해보고 나자 드디어 난임 병원에서 시험관 시술을 허락했다.


난자 채취와 이식을 반복 하고 감사히도 2번 만에 아이를 가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임테기 두줄을 보고, 꿈을 꾸는 거 같았다. 시험관 1차 실패 후, 하던 모든 활동을 줄이고 다음 시험관 시술에 마음을 쏟아 부었는데, 기쁘기 보다는 얼떨떨 하였다. 단 한번도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 한적이 없었기에, 기쁜 마음보다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4주차에 피검사를 하고 5주차에 아기집을 보았다. 6주차에 아기를 아직 못봐서 불안했지만, 다행히 7주차엔 강낭콩만한 아기를 보았다. 그리고 난임 병원을 졸업했다.


징글징글한 난임 병원이었기에, 아이가 생긴걸 알았던 첫날 보다 난임 병원을 졸업 했다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다. 조그마한 태아가 보이는 사진을 보고 신랑도 나도 같이 울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도 엄마가 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해주었다. 친한 사람들에게 일부 알리고, 구석에 넣어놨던, 누군가에게 너무 미리 받았던 태교 책들도 눈에 잘 보이는 곳으로 꺼내놨다. 동네방네 엄마 된다고 소문내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그리고 일반 산부인과에서 첫 진료를 보러 간날 이 모든 것이 설레발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초음파 진료를 하면서 선생님은 계속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아이가 크지 않았다. 8주 차인데 아직도 심장 소리를 듣지 못했다. 선생님께서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고. 하지만 한주만 더 기달려 보자고 했다. 그리고 9주차 유산 확진을 받았다.


남녀간의 이별 후, 부정과 고립 - 분노 - 타협 - 절망 - 수용의 심리적인 단계를 겪는 것 처럼, 나도 상실에 대해 여러 단계를 거쳐서 아파했다. 아이가 느리다고 생각하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밤을 새도록 비슷한 사례를 검색했다. 주수보다 늦게 자라지만 문제 없이 출산 했다는 사례를 몇 개 발견했고, 그 사례들이 나를 숨쉬게 해주었다. 9주차에 태아 크기가 더 작아진 것을 보고 나는 분노 했다. 왜 나만. 다른 사람들은 쉽게 가지고 낳는 거 같은데. 누군가는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지기도 하는데. 왜 나만 아이를 안 주시나요. 그리고 어렵게 가진 이 아이를 왜 다시 데려 가시나요. 차라리 이번 차수도 실패했으면 감정의 타격이 덜 했을 것 같았다.


몇 일은 아무도 안만나고 집에서 계속 울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부담 스러웠다. 나의 설레발이 부끄러웠고, 지금 내 감정이 드러나면 상대에게 부담을 주거나, 오버한다고 생각할까 싶었다. 다들 유산 많이 해, 건강하지 않은 아이는 빨리 보내는 게 나아, 곧 건강한 아이가 올 신호야... 좋은 의도에서 해주는 말들. 그 말들은 내가 빨리 감정을 털어 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이 상실은 너무 큰일인데.. 나를 위해서 그리고 주변 사람을 위해서 이 상실감을 신속하게 털어내고 작은 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아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를 구원하고 내가 무너지면 남편도 무너질까 걱정되는 마음에 먼가 다른 일을 시도하고 싶었다. Lori Gottlieb의 "Maybe you should talk to someone".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나를 본다. 실연, 말기암 진단 같은 극복하기 힘든 상실에 힘들어하는 내담자와 상담자의 대화를 보면서 웃고 울고 하면서. 사는게 원래 녹녹치 않지. 누구나 마음에 무거운 돌 하나씩 품고 살지. 천천히 내려 놓는다. 그리고 지금 나는 왜 이리 속상할까. 무엇 때문에 그토록 아이를 원했는지. 유산의 상실감 이상으로 나를 힘들게 하고 나의 삶을 흔드는 것은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본다.


주변 또래들이 모두 아이를 가졌기에 우리도 아이를 원하는 것인지. 부모님들의 간절한 바람이 우리의 마음을 짓눌렀는지. 모임에서 우리만 아이가 없는, 젊지 않은 부부라는 사실이 불편했던 것은 아닌지. 아이를 다시 가지려고 해야 하는 과정들이 무서운 건지. 시술에 드는 돈과 시간이 부담스럽고, 호르몬 주사를 맞으며 망가지는 몸매가 속상한 건지. 곧 엄마가 된다고 생각해서 계획 했던 일들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 속상한 건지. 나는 나의 상실감을 하나하나 뜯어 보고 있다.

"아마도 당신은 누군가에게 말해야 합니다.." 책의 제목과 달리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뜯어 본 감정을 말하진 못하고 있다. 평상시라면 힘든 상황에서는 수다로 감정을 해소할 테지만. 이번엔 누구에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친정 엄마나 남편에게 말하면 너무 속상하게 만들것 같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 같다. 젊은 친구들은 이해를 못해줄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내담자들을 보며 대리 만족 하고 공감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잔잔해진 마음으로 친구들과도 가족과도 이 일을 같이 조금은 가볍게 얘기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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