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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되지 못한 기록

by 코트워치

'재판 기록은 누구를 위한, 어떤 형태의 기록이 되어야 할까'


요즘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입니다.


물론 코트워치는 언론사이기 때문에 재판을 취재해 그것을 바탕으로 기사를 씁니다. 하지만 기사가 되지 못한 기록들이 더 많습니다.


독자와 공유할 만한 '한 줄'을 찾지 못했거나 누군가의 내밀한 이야기가 주가 되는 재판 기록은 '보류' 스티커가 붙은 채 서랍장으로, 노트북 폴더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그 재판 기록이 '사건에 관한 기록'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기록을 잘 정리해 공개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됐습니다. 꼭 기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요.




지난달 유가족 한 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긴 기간 취재해온 참사 재판에 관한 내용이 기사로 나올 예정인지, 계속 취재를 하고 있는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재판을 기록한 결과물을 어떤 형태로든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중요한 팩트'를 담고 있지 않아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 아니더라도 어떤 기록은 지금 혹은 미래에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습니다.


한 사건에 관한 진실을 알고자 할 때 지난 재판의 내용이 하나의 단서이자 자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세월호참사 재판을 기록한 책 <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저)>에서 저자는 재판을 통해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재판이 '논쟁의 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진실은 그것이 밝혀지려는 순간에도 언제나 반박될 위험에 처하고, 밝혀진다 하더라도 무척 불쾌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진실은 그런 긴장감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법정은 그 어느 곳보다 많은 증거와 증언이 모이는 곳이다. 이 증거와 증언 모두가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 피고인, 피고인 변호인, 재판부, 증인 모두가 한통속이 아닌 다음에야 상대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상대의 주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공격하고 방어하는 과정에서 진실의 실마리가 드러날 수 있다."


재판 기록이 기록물로서 갖는 의미 중 하나는 그 결론(판결)에는 담기지 않는 논쟁의 과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 있다는 뜻입니다.


재판 기록을 읽기 쉬운 형태로 정리해 공개하는 작업.


앞으로 코트워치가 해나갈 중요한 일들 중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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