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중령의 두 임무는 군 정보기관이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그제 내란죄 법정에 갔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였고요.
저는 이날 오기로 한 증인이 어떤 말을 할지, 어떤 모습일지 빨리 알고 싶었습니다. 법정에 들어가니 증인으로 추정되는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아주 어두운 카키색 재킷을 입고, 까만 마스크를 쓰고, 체구가 컸습니다.
증인의 이름은 구민회입니다.
저는 그 이름을 세월호 참사 판결문에서 봤습니다.
구 중령은 2014년 4월 기무사령부 활동관으로, 2024년 12월 방첩사령부 방첩수사단 수사조정과장으로 일했습니다.
군 생활 대부분을 정보부서에서 보냈다고 하는데요.
2018년 기무사령부가 해편¹되면서 육군으로 돌아갔다가 2023년 방첩사령부로 복귀했습니다. 수사조정과장 보직은 '12·3 비상계엄' 나흘 전 받았습니다.
①2014년 4월 16일 구 중령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에 대한 첩보 활동을 지시받았습니다.
구 중령 등 활동관들은 참사 당일부터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의 상황을 부대 본부로 보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 분위기와 언동, 사생활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했습니다.
7월에는 실종자 가족의 성향을 '강성, 중도, 온건'으로 분류했습니다. '끝까지 시신 수습을 원하는 강경파', '선체 인양을 발표하더라도 반대하지 않고 정부 의견에 수긍할 온건파' 등으로요.
②2024년 12월 3일 계엄 선포 직후, 구 중령은 국방부·경찰과 소통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수사인력, 호송차량, 구금시설 등 협조를 받으라는 지시였습니다.
계엄 상황에서는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고, 방첩사가 지휘권을 가지게 됩니다.
구 중령은 수사본부에 부여된 임무가 '정치인 등 주요인사 체포'라는 걸 알면서도, '인원 100명을 보내달라'며 국방부·경찰 관계자들과 여러 차례 소통했습니다.
구 중령의 두 임무는 군 정보기관이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첩보 활동, 범죄 혐의가 불분명한 민간인 체포 등은 군 방첩·군사보안 등 안보를 위한 임무가 아니었습니다.
구 중령도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2018년 조사 과정에서 "지시 때문에 한 것입니다. 지시가 없었으면 할 수 없는 업무입니다. 과거에도 민간인 사찰에 관한 사안들이 문제가 됐었고, 저희도 종종 교육을 받아왔습니다"라고 말했고,
2025년 법정에서 "(포고령에) 나왔던 내용들이 단순히 정치적 유불리 때문에 쓰여 있다고 판단을 했었고, 그렇다고 한다면, 범죄 혐의로 인한 체포라기보다는 정치적 유불리로 인한 체포 행위라고 생각해서 불합리하고 불법적이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구 중령이 지난해 12월 4일경 자필로 쓴 메모엔 이런 '회고'가 있습니다.
"<포고령 나온 후> 이상하다, 혐의없다, 영장없이 불가하다, 법적 검토!!"
이런 사태에 두 번이나 연루된 것이, 단지 구 중령 한 사람만의 잘못 때문은 아닐 겁니다.
2018년 드러난 '세월호 유가족 불법사찰'로 재판을 받은 기무사 간부 6인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군 정보기관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지적을 읽으면서, 어떤 취약성 때문에 이런 역사가 반복되는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런데 아직 명쾌한 답은 못 찾았습니다.
더 많은 판결문을 읽고, 앞으로 남은 재판을 모두 보고 나면 알게 될까요?
군사법원 판결문 일부를 덧붙입니다.
"세월호 참사 후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실종자 가족들이 혹시 정부를 비방하는 것은 아닌지, 불만을 표출하는 것은 아닌지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지휘·감독을 받는 부대원들에게 실종자 가족들의 동향을 파악하여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지시하였는 바, 이와 같은 행위는 헌법을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해야 할 군인의 사명 내지 의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 아닐 수 없다."
¹ 국군기무사령부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 댓글 공작, 계엄령 문건 작성 등 비위가 드러나며 2018년 8월 해체됐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격하됐다. 4년 뒤인 2022년 11월 국군방첩사령부로 이름이 바뀌었다(국군기무사령부 전신인 국군보안사령부는 다수의 민간인 사찰 등 지속적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해 온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