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다양성

by 윤현섭

물론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난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은 인간과 동물이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인류의 발전 단계를 생각해 보자. 원시시대의 인간은 동물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배고프면 먹이를 찾아다녔고, 추우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즉 원초적인 본능을 해소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물과 비교하여 신체적인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까닭에 인간의 삶은 고난스러웠고, 이런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군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었다. 바로 ‘뇌’라고 불리는 기관이다. 인간은 신체에 어울리지 않는 큰 뇌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한 빠른 학습이 가능했다.

몇 세기가 지나고 경험이 쌓이면서 인간은 불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농작을 통해 안정적인 식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착 생활이 가능해진 인간은 더 큰 무리를 이루게 되었고, 구성원의 삶도 점점 다양해졌다. 식량이 충분하지 않던 시절, 다른 건 생각할 수 없던 인간에게 여유라는 선물이 주어진 것이다. 인간은 갑자기 생겨난 잉여시간을 알뜰하게 활용했고, 그 결과 예술, 학술 활동 등을 통한 삶의 다양성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었다. 다양해진 인간에게 감히 대적할만한 존재는 사라지고 없었다. 다양한 군락이 모여 도시를 이루고, 다양한 도시가 모여 국가를 이뤘다. 그들은 동물을 지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인간을 지배하려고 했다. 침략을 통한 양적 팽창은 질적 변환을 불러왔고, 지배자들은 효과적인 통치를 위한 수단을 만들어 냈다. 바로 법률, 윤리, 종교로 대표되는 것들이다.

법률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적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설명하고, 윤리는 인간이라면 응당 취해야 할 태도를 정의한다. ‘다른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가 법률이라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행동이다.’는 윤리다. 법률과 윤리는 촘촘한 상호 작용을 통해 보편적인 행동 준거를 제시했고, 피지배층에 대한 통제는 훨씬 수월해졌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이, 법률과 윤리는 절대적인 게 아니다. 중국에서라면 단번에 목을 베어버릴 마약사범도 미국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고, 수단에서라면 돌에 맞아 죽는 간통죄도 한국에서는 형사처벌 대상조차 아니다. 머무는 지역 또는 문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면 종교는 절대적이다. 성경 등으로 대표되는 경전을 통해 바람직한 삶의 태도를 제시하고, 이는 국가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같은 절대자를 믿고, 같은 제식을 행한다. 천주교의 미사를 예로 들면 개회,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폐회 등 똑같은 절차가 진행된다. 라틴어냐 자국어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따라서 종교에 심취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법률과 윤리를 뛰어넘는 절대적인 믿음이 자리 잡게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절대적인 믿음은 신자로서 지켜야 할 가치를 수호하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어떤 현상의 원인을 절대자의 뜻으로만 해석하는 편협한 생각 속에 빠질 수 있다. 누가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다면, ‘감사헌금’이라는 단어를 곰곰이 따져보라고 권할 생각이다. 도대체 누군가에게 감사한다는 건지, 무엇에 감사한다는 건지. 그리고 감사를 느낄만한 사건과 종교 사이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등등.

얼마 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과 관련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그들의 신은 여성의 행복 따위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신은 여성에게 온몸을 꽁꽁 가리고 다닐 것을 강권하고, 평범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곳의 여성은 일하거나 교육받을 권리,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없다. 단지 남성의 부속물로써 순종하고 후손을 생산하는 역할로만 살아갈 수 있다. 바로 종교가 철저한 지배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도대체 그들이 섬기는 절대자가 경전 어느 대목에서 얘기했길래 그렇게 행동하는지 묻고 싶다.

사람이라면, 어떤 누구라도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행복의 종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하다. 누군가는 과자를 먹으면서 밤새 축구경기를 보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별자리를 발견할 때 희열을 느낀다. 타인의 생각과 취향을 존중한다면, 본인의 생각이 항상 옳다고 확신해서는 곤란하다. 그런 착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붐비는 출근길 열차 안에서 ‘XX 천국, XX 지옥’과 같은 푯말을 들게 될 수 있다. 백번 양보하여 그 사람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얘기한다손 치더라도, 믿지 않는 사람에겐 불쾌한 광경일 뿐이다. 누군가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건 귀신같이 찾아내는 게 바로 인간의 속성이다. 타인의 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정한 무관심을 실천하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집단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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