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사냥

by 윤현섭

평범한 목요일이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같은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고 같은 일을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날짜를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편의에 따라 만들어 낸 하루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는 심오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저 똑같이 닮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날짜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기념일을 까먹고 난감해하는 사람을 너무 비난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녀)는 당신과의 추억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공교롭게도 결혼기념일이 오늘이었을 뿐이다. 매일 사용하는 도어록의 암호 속에 녹아들어 가 있는 것만 보아도 결혼기념일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그(녀)의 단조로운 생활이 저지른 실수로 보아 넘기는 게 마땅하다.

반면 날짜와는 다르게 요일은 매우 확실하게 알고 있다. 우선 확률적으로 날짜는 1/31이고 요일은 1/7이다.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네 배가 넘는다. 게다가 14일이냐 15일이냐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주중이냐 주말이냐 하는 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어느 바보가 늦잠 자도 괜찮은 날을 모르겠는가? 주중의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기다리는 주말, 시간의 상대성에 따라 압도적으로 빨리 사라지는 주말, 상사의 카톡을 확인하지 않아도 용서될 수 있다고 믿는 주말 등. 주말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는 주말뿐 아니라 주중의 요일에서도 찾을 수 있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다. 월요일은 일요일의 모래시계가 줄어드는 것을 외면하며 느낀 우울감이 남아 있는 날, 화요일은 월요일에 하기 싫었던 업무를 해야 하는 날, 수요일은 점심이 지나면 한 주가 꺾이는 거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날, 목요일은 금요일 전날, 금요일은 아이유의 노래가 떠오르는 날. 얼마나 명확한 이미지인가? 이런 이미지 속에서는 오히려 헷갈리는 게 이상하다.

어쨌든 그 광경을 목격한 날은 목요일(금요일 전날)이었다. 점심의 포만감이 슬슬 식곤증으로 바뀌기 시작할 무렵, 난 졸음을 쫓기 위해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4층 높이에서 바라보는 2월 말의 풍경. 거울은 스러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무는 헐벗고 제법 강한 바람이 거리 위를 내달렸다. 평소 많은 사람이 운동 삼아 걷던 길에는 뜨문뜨문 인적이 이어졌고, 그마저도 다들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철저한 익명성이 보장되는 거리를 보다가 지루해진 나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카메라앱을 눌렀다. 앞에 보이는 까치둥지를 찍기 위해서였다.

아마 3주쯤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까치 소리에 창밖을 내다본 나는 두 마리의 까치가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땅바닥에서 적당한 길이의 나뭇가지를 찾아 쉴 새 없이 나르고 있었다. 목적지는 거대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굵고 튼튼한 모습이 보금자리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나무 꼭대기 2미터 정도 아래에서 기초공사를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신기했다.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을 텐데, 태곳적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어딘가에 새겨진 설명서에 따라 건축기술을 시현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의 날짜는 구분 없이 흘러갔지만, 그들의 날짜는 매일 충실하게 둥지에 새겨졌다. 땅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하늘로 도약하는 까치,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나무 주위를 나선형으로 돌아서 올라간다. 공사 중인 둥지에 도착한 까치가 입에 문 나뭇가지를 여기저기 꽂는다. 한 번에 꽂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번 넣었다 뺐다 하는 게 보통이다.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완벽한 둥지를 만들고 싶은 의지가 엿보인다. 어느새 난 매일 응원하는 마음으로 둥지 공사를 지켜보게 되었다. 성실한 그들은 매일 정해진 작업량을 완수했다. 가끔 다른 까치둥지에서 나뭇가지를 훔쳐 오는 교활함도 보였지만,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으로 치면 벽돌집에서 벽돌 한 개를 빼어간 셈인데, 남의 땅을 빼앗으려고 벽돌집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보다는 얼마나 더 인간적인가? 당연히 그들은 모르겠지만, 난 그들의 노력을 매일 기록하고 있었다. 갤러리에서 확인해 보니 이미 14장의 사진이 있었고, 그날이 15번째였다. 찍은 사진을 확대해 보니 둥지가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부터 지붕까지 나뭇가지가 촘촘하게 엮여 있어서 단단한 공처럼 보였고,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끄떡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하필 그때 전화가 걸려왔나 싶다. 누군가 수요분석 자료를 요구했고, 귀찮았던 나는 대충 편집해서 이메일로 보내 주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둥지 쪽을 바라봤는데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난 그들이 안락한 둥지 속에서 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시선을 아래쪽으로 옮겼다. 공터 풀밭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까치가 보였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10미터쯤 떨어진 곳에 검정 롱패딩이 서 있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특이점이 있었다. 롱패딩은 새를 향하여 뭔가를 조준하는 모습이었다. ‘뭐 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햇볕을 받은 금속 재질의 무언가 반짝였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이 해소된 자리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새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하늘로 날아가려고 애를 썼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머리는 계속 땅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범인은 퍼드덕거리며 나무 둥치에 머리를 부딪히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그는 어느새 담배를 물고 있었고, 내뿜는 연기에는 우월함이 가득 차 있었다. 담뱃불이 타는 만큼 생명의 불꽃도 타들었고, 범인이 발치에 꽁초를 버릴 때쯤 새는 하늘을 보며 누워있었다. 범인은 모든 걸 느긋하게 감상한 뒤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멀지 않은 도주로에 차가 세워져 있었고, 도착한 범인은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난 사건의 흐름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익명의 도로, 익명의 새, 익명의 범인, 익명의 목격자까지 그야말로 완벽하고 야릇한 조합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3분쯤 지났을까? 차 밖으로 나온 범인이 천천히 사건 현장으로 걸어왔다. 범인은 반드시 사건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통설이 확인되는 그 순간, 매일 관찰하는 둥지에서 나온 까치가 아래쪽을 살피더니 쏜살같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바닥에 누워있는 짝을 발견한 까치는 주위를 돌며 맹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한껏 고조된 소리로 부르짖는 모습이 빨리 일어나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난 머리가 멍했다. 누워있는 새는 익명의 새가 아니라 지난 3주 동안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새였던 것이다. 죄책감이 밀려왔다. 조금 아까 숨어서 방관하지 않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렸더라면 새는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범인은 다시 무기를 팽팽하게 만들어 까치를 조준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내가 급히 창문을 열고 “저기요!”를 외치는 순간 또다시 무언가 발사되었다. 까치가 계속 움직인 덕분인지 아니면 내 목소리에 놀란 범인의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다행히 까치는 죽음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험을 느낀 나머지 누워있는 짝 주변을 한 번 돌아보고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롱패딩은 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주머니 속에 넣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다급히 도주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들리는 내 목소리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난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열고 112를 눌렀다. 사람을 해치진 않았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생명을 해친 건 사실이니 범죄라고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사람이 새를 죽이고 도주하고 있습니다.” 격앙된 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사무적인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선생님! 조금 진정하시고, 차분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니! 누가 새를 죽였다니까요.” “지금 계신 장소가 어디신가요?” “XXXX 앞입니다.” “혹시 얼굴을 보셨습니까?” “얼굴은 못 봤고, 타고 간 차는 봤습니다.” 난 차량의 종류와 번호 그리고 도주한 방향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 “선생님! 출동 경찰이 전화를 드릴 수도 있으니, 꼭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끊고 창밖을 보며 기다리는데, 멀리서 경찰차 두 대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경찰차에서 총 네 명의 경찰관이 내렸다. 바쁜 와중에도 여러 명이 출동한 만큼 이 범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범죄현장을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바닥을 훑으며 뭔가를 찾는 모습이 마치 까치의 사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간 꼼꼼하게 진행된 조사를 마치고, 그들은 까치의 시신 위에 낙엽을 덮은 뒤 떠나버렸다. 다음 날 경찰 관계자에게 전해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까치는 유해조류라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다만 정식 포획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사용한 무기(새총 및 쇠구슬)도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범인에게 찾아가 경고를 했다. 이것까지 밝히긴 좀 그렇지만 범인은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고, 우리가 찾아갔을 때 무척 당황하며 봐달라는 말을 했다. 앞으로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마지막으로 민원 처리에 대한 만족도를 묻는 문자가 발송되는데, 우리가 최선을 다한 만큼 선생님도 좋게 평가해 주시길 바란다."

세계적 희귀종인 고라니가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주기적으로 사냥된다고 한다. 제주도에만 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고라니, 왕성한 번식력이 오히려 그들을 죽이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옛날부터 반가운 손님을 부르는 길조로 여겨진 까치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들의 죽음을 오히려 장려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선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생명을 빼앗는 행동을 통해, 범인이 어떤 만족감을 얻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어딘가에선 무시당하며 사는 인간이 자기보다 하등 동물을 죽이며 우월감을 맛본다는 사실이 역겹다. 마치 신이라도 된 느낌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의 뒤틀린 기억이 불쑥 튀어나와 버린 것일까? 익명이 담보된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란 없다. 범인은 아무런 벌을 받지 않았고, 짝을 잃은 새는 둥지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이 강렬한 기억은 경찰청장이 발송한 만족도 안내 문자로 내 휴대폰 속에 남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꽃보다 다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