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왜 하게 되는가?

by 윤현섭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여러 감정 중에 후회라는 감정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했다. 살면서 몇 번 들춰볼 기회가 없는 국어사전에 적힌 후회의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이다. 이는 다시 말해 과거의 어떤 행동이나 그 행동으로 파생된 여러 가지 결과에 대한 반성과 만약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다르게 행동하겠다는 의지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단어란 뜻이다. 지면을 낭비하면서 다시 장황하게 뒤집어 생각하면 과거에 어떤 시점에서 다르게 행동했다면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일 거다라는 전제조건이 수반되는 말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과거의 다른 행동이 그렇게 명확하게 좋은 상황을 가져온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예를 들어보겠다.

매우 뛰어난 두뇌를 가진 한 학생이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내 학업성적은 우리나라 모든 대학의 모든 과를 지원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에 역시 최고의 수재들이 모인다는 XX대학교 XX과를 지원해야겠어’라고 결론지었다고 하자. 그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XX고시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처음 몇 번의 불합격은 경험이었다고 위로했지만 그 뒤로도 번번이 계속 떨어졌다. 결국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마지 못 해 나간 동창회에서 자기보다 한참 낮은 성적으로 지방 의대를 교차 지원해서 졸업한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를 보며 나도 차라리 직업이 확실히 보장되는 의대나 약대 같은 학과로 진학했으면 어땠을까라는 후회를 한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이 학생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10년 전에 그 학생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과 비추어 보아 허탈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1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한 학생이 진로에 대한 고민 끝에 ‘난 문과생이지만 직업이 보장되는 의대로 교차지원 할 거야’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가정해 보자. 수도권 의과대학으로 진학하여 처음에는 생소한 과목들로 고생을 좀 하였지만 워낙 뛰어난 머리와 성실함으로 무사히 공부를 마친 그 학생은 처음 근무를 시작한 병원에서 코로나에 걸리고 그 합병증으로 사망하게 된다.

위의 사례에서 큰 차이점은 1. XX대학교 XX대학, 10년 고시 불합격 2. 수도권 의과대학, 졸업 후 근무하면서 얻은 병으로 사망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또는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질문한다. (본인/당신)이 생각하기에 더 나은 상황은 1번입니까? 2번입니까? 다른 사람은 이 어처구니없는 밸런스 게임에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1번을 선택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일단 그렇게 결혼도 못 해보고 빨리 죽는 게 싫고 머리가 좋은 학생이면 누구처럼 X수를 해서라도 결국에는 XX고시에 붙을 수도 있는 것이며, 그게 정 안 된다 하여도 누구처럼 XX신문의 기자 생활을 거쳐 종국에는 (이유를 알기 어려운) XX 유학을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가장 최상위의 부정적인 상황을 동원하였기 때문에 이건 누가 봐도 밸런스가 맞지 않는 선택지다라고 누군가는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례가 일어날 수 없는 정말 터무니없는 가정이라고 생각하는가? 모르긴 몰라도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세부적인 상황이 꼭 들어맞는 건 어렵겠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예를 들어가면서까지 내가 얘기하고 싶은 바는 현재의 모습은 과거의 수많은 선택의 총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총합은 어느 시점에서 잘라서 단면을 보느냐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XX대학교 XX과를 진학해서 XX고시를 한 두 번 떨어지는 시점의 단면은 긍정적일 것이며, 10년을 불합격한 시점의 단면은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반면 의과대학에 진학해서 졸업 후 종합병원에 취직한 시점의 단면은 긍정적일 것이며,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한 시점의 단면은 부정적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후회라는 감정은 특정 시점의 자기 연민일 가능성이 높고, 그 감정을 따라 침체되는 것이 별로 이롭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평가는 살아가면서 겪은 수많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 요소를 더해보고 마지막에 스스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본인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속속들이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 면에서 볼 때 타인에 의해 쓰인 한 사람의 전기라는 것은 진실에 기반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예가 너무 거창하다면 소소한 경우도 살펴보자. 오늘 내가 출근하다가 막힌 고속도로를 보고 다른 길을 택했다가 사고를 당하면 당연히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 ‘그냥 고속도로를 탈걸’이라는 후회일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고 그냥 타는 것과 조금 돌아가더라도 국도를 타는 것 중 어떤 행동이 합리적일까 생각하면 몇 번을 반복해도 국도를 타는 쪽이 맞다. 사고는 고속도로를 안 탄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고로 인한 인지부조화를 간편하게 해결하기 위하여 후회라는 감정을 동원하는 것일 뿐이다. (미드에 자주 등장하는 it’s not your fault. it‘s an accident. 라는 대사는 얼마나 합리적인 접근인가!) 후회와 관련된 여러 사례에서 배울 수 있듯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감정소모보다는 현재를 변화시켜 미래를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그렇다면 자기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두 분 부릅뜨고 샅샅이 찾아서 최대한 열심히 즐기는 게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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