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breakup

by 윤현섭

이성 관계라는 것은 대체로 오묘하다. 성이 다른 두 존재가 만나 깊은 우정을 쌓는 게 과연 가능할까? 어느 한 시기를 떼어놓고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고 고여서 감정과 함께 범람하는 순간이 오게 되면, 관계의 성격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마치 양적 팽창이 질적 변환을 불러오는 것처럼 우정이 이성 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만약 서로가 그 지점에 도달하게 되면 최소한 둘 중 하나(아니면 둘 다)는 관계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는 마음을 숨기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한 번 알아보든지. 극단적으로 서로 간에 매력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이성 간의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애당초 무언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과 우정을 나누는 게 가능할까? 우정이란 서로 간의 호감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것이며, 불행하게도 호감과 매력은 교집합이 존재한다. 이쯤 되면 이성 간의 우정은 헛된 환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상대방의 매력을 깨닫게 되는 시점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며, 그 시점은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필연적으로 도달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난 사람들이 착각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이성 간의 감정은 전진하거나 후퇴하는 게 전부다. 따라서 미묘하게 바뀌는 감정을 느끼며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시도는 단연코 부질없다. 그건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 더 엄격하게는 법률로 제한된 자기기만일 뿐이다. 사회적 합의가 개인의 본능을 제어하는 하나의 사례이고, 그렇게 해서 멈춘 관계는 필연적으로 후퇴한다.

감정이라는 것은 싹 틔우기가 어렵지 일단 한 번 생긴 다음에는 통제 불가다. 식물이 물과 햇빛을 받으며 자라나듯 감정은 생각을 통해 자라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의식하지 않아도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의도적으로 어떤 것을 생각하지 않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지금부터 누군가에게 레몬을 생각하지 말라고 해보자. 일반적으로 레몬이라는 단어를 인지한 사람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경험이 소환되고, 볼 안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침이 느껴질 것이다. 심지어 레몬을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그 단어가 포함된 명령문을 해석하기 위해 레몬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어떤 생각을 차단하는 방법은 몰입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것뿐이며, 이 조차도 임시방편일 뿐 영원할 수는 없다. 어떤 활동이든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투입하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그게 가능하더라도 자는 시간까지 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누군가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아예 관계를 차단하거나 조심스럽게 다음 단계를 모색하는 것뿐이다. 평정심을 가지고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언젠가 산산 조각난 평정심이 발밑에 떨어진 것을 보면서 혼란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서로의 감정이 같은 방향으로 전진하는 동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속도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이 다소 있을 수는 있지만,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분명하고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인 감정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생각하며 잠을 설치게 되고, 다시 만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며 초조해한다. 본인보다 상대방을 더 위하게 되고, 본인보다 상대방을 더 원하게 된다. 게다가 지금까지 당신 없이 살아온 삶은 한 줌 의미도 없었다고 쉽게 치부해 버리는 모습도 종종 관찰된다. 그러나 한 번 경험한 자극은 더 큰 자극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무뎌지기 마련이다. 넘쳐흐르던 감정의 수위가 서서히 증발하여 이성의 둑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감정이 고조되는 시기에는 독창적인 개성으로 보이던 언행들이 감정이 해소되는 시기에 마주하면 괴팍함이나 유별남으로 다가온다. 긍정과 행복함의 역치는 점점 높아지고, 부정과 불편함의 역치는 점점 낮아진다. 그리고 마침내 부정의 역치가 긍정의 역치 밑으로 내려가는 순간 관계는 서서히 후퇴하기 시작한다. 그곳이 바로 관계의 방향성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바뀌는 지점인 것이다.

이성 간의 관계가 쇠퇴할 때, 그 관계를 구성하는 양쪽이 같은 생각이라면 별로 복잡할 게 없다. 서로에게 쏟는 시간을 줄이면서 감정의 수위를 서서히 낮추면 그만이다. 물론 사람마다 감정이 바닥나는 시기는 제각각이지만, 이것 역시 큰 문제는 아니다. 대세는 이미 정해졌고, 머지않아 부정적인 감정이 긍정적인 감정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감정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는 어떨까? 이럴 때는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진다. 관계의 정리를 원하는 사람이 본인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의 가사처럼 ‘널 사랑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라고 말하는 게 가장 깔끔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동쪽으로 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이 갈수록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고 생각한다. 반면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더 큰 불편함을 느낄 뿐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상대방의 과실이 명백한 경우가 아니라면, 관계의 종료를 먼저 선언하는 쪽은 나쁜 역할을 맡게 된다. 그리고 그 역할은 수많은 작품에서 다뤄졌듯이 온갖 비난을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는 껍데기뿐인 관계를 유지하느니 차라리 비난을 감내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비난하는 대상이 친구나 가족같이 아주 가까운 경우라면 그렇게 간단하게 넘길 수 있을까? 이런 난감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을 위해 누군가는 교묘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성과의 관계를 맺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지만, 이성과의 관계를 끊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제 얼굴을 보며 짐작할 수 있듯, 저는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었어도 그럴듯하고 적절한 이별의 구실을 만들어 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특히 만남의 기간이 오랫동안 지속 되어 저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이 서쪽으로 향하는 걸 기다리느니 차라리 그냥 불치병에 걸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글쟁이는 뭔가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법이라 여기서 몇 마디를 보태고자 합니다. 깊어진 관계를 도려낼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상대방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생(착)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관계의 종료를 먼저 선언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방은 버림받음으로써 그간 보여준 언행과는 상관없이 위로받아야 할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녀)는 우울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주변인들을 궁금하게 만들 것이며, 만약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그(녀)가 당신과의 관계에서 보여준 실책들을 주변인들에게 설명할까요? 아주 높은 확률로 그(녀)는 당신이 불편하게 생각한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일부 안다손 치더라도 본인에게 불리한 얘기는 꺼내지 않겠죠. 왜냐고요? 지금 자신은 위로받아야 할 역할에 충실하면 될 뿐이지. 위로해 주는 상대로 하여금 ‘너도 잘 못 했네.’라는 생각을 떠올리게 하면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입 밖으로 관계의 종료를 선언하는 순간 표면적으로 주도권은 당신에게 주어지고, 한 번 주어진 권한은 절대 상대방에게 양도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영원히 나쁜 놈이 된다는 의미이죠. 그(녀)가 주도권을 단단히 쥐었다고 생(착)각하도록 한껏 자세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셨나요? 자!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명민한 머리가 빛을 발할 시간입니다. 그(녀)가 의심하지 않고 믿을 만큼 탄탄한 시나리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 작품에서 활용되었던 주제는 좀 곤란합니다. 그(녀)가 쉽게 눈치챌 수 있기 때문이죠. 일의 성패가 달린 만큼 여러분 스스로 독창적인 시나리오를 만들어 내야만 합니다. 제가 어떻게 지금까지 수많은 이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시나리오를 쓰는 글쟁이였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의도적으로 버림받기 위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나요? 만약 그렇다면 절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조금 더 힘내시기 바랍니다. 시나리오에 따라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감정을 덜어내세요. 성급한 행동은 절대 금물입니다. 살아있는 개구리를 삶듯이 하란 말입니다. 중간에 들키면 그걸로 끝입니다. 주도권이 본인에게 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당신을 곤란한 지경에 빠뜨릴 수 있고, 심지어 파멸로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예민한 작업을 꾸준히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상대방의 감정이 멈추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 그(녀)가 이 관계를 원치 않을 만한 논리적 설명을 반드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신이 너무 감정적으로 보이면 곤란합니다. 애써 진행한 작업을 스스로 망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감정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 논리적인 생각을 심어주세요. 본인이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속이기 쉬운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똑똑한 사람일수록 논리적 흠결이 없다고 착각하는 정보를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당신이 심은 논리의 씨앗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성하게 자라나 당신을 버려야 할 이유를 가득 담은 열매로 변할 때쯤 ‘간접적인 표현을 동원하여’ 이별을 고하세요. 절대 당신은 주도적으로 보이면 안 됩니다. 그냥 슬쩍 이별의 의도를 내비치면 되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그(녀)는 논리에 사로잡혀 오히려 먼저 얘기를 꺼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대방의 반응을 살펴 가며 대응하십시오. 당신의 제안에 동의한다 싶으면 마치 흘러넘치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는 듯 행동하는 것도 좋습니다. 이미 당신의 감정은 오래전에 바닥을 드러내어 연기하는 게 어렵겠지만, 그(녀)가 당신을 버리면서 느끼는 죄책감을 극대화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당신을 버렸다는 생(착)각을 할 것입니다. 주도적으로 관계를 정리한 사람에겐 악감정이나 후회는 남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상처를 걱정할지 모릅니다. 헤어지고 나서 다시는 안 보는 게 바람직하지만, 훗날 그런 상황을 혹시라도 맞이하게 된다면 적절하게 아쉬움을 표현하길 바랍니다. 제가 세상에서 둘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인다고요? 아닙니다. 저는 당신이 체계적으로 구성하지 못한 생각을 말로 표현해 드린 것뿐입니다. 이 방법을 쓰고 안 쓰고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하지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서쪽으로 바뀐 관계를 그대로 계속 유지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요? 그런 관계는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소중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당신의 머릿속 페이지에 등장인물로 남아서 가끔씩 회상하는 기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쯤되면 박수가 나올만도 한데요.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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