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인연을 쌓고 또 많은 사람을 흘려보내며 살아왔다. 최초의 인간관계는 가족이라는 형태로 시작되어 학교, 직장으로 외연을 넓혀나갔고 지금의 나를 관통하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냈다. 생각해 보면 모든 관계가 동등하거나 동질적이지 않았고, 나는 어쩔 수 없이 관계를 분류하여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최근 일어난 사건을 계기로 관계에 대한 분류를 되짚어보면서 복잡한 생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내가 맺고 있는 관계는 크게 가족, 친구, 동료, 지인 정도로 나눌 수 있다. 가족은 혈연인가를 기준으로 판단해 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친구, 동료, 지인의 구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단편적으로는 친밀도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지만,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까지의 관계를 보면 누군가 처음 만나서 통성명을 하는 순간 친구라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순수한 상태에서 만난 사람들은 치밀한 계산 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많은 친구들이 지금까지 친구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여러 가지 이유로 지인으로 변한 사람이 훨씬 많다. 혹자는 친구랑 지인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으나, 나는 꽤 명확한 편이다. 친구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과 주기적인 만남을 추구하지만, 지인은 어떤 특별한 이유로 만났을 때만 한시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 그럼 친구는 다 똑같은 친구인가 생각해 보면 그것도 아니다. 친구라는 카테고리의 핵심은 J와 같은 아주 가까운 몇 명이다. 나머지는 학교 또는 다른 집단에서 만난 또래의 사람들이고, 그들을 직장에서 만나게 되는 동료와 구분하기 위해서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핵심친구(?)의 경우 내가 가진 대부분을 주어도 아깝지 않으며,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마치 달콤한 사탕을 손에 쥔 아기처럼 절대 놓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나 역시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욕망이 매우 크다. 간절하게 원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최근 한 핵심친구와 멀어지는 것을 넘어서 (내가 생각하기에) 남보다도 못 한 사이가 되었다. 처음 직장동료로 만났지만 핵심친구로 넘어간 사람이었다. 주중에는 거의 매일 만나는 사이었는데,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방문이 뜸해지고 그다음에는 연락이 뜸해지고 결국 아무런 교류도 하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내가 쏟은 시간과 노력이 헛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게 싫어서 현실을 부정했고, 직접 찾아가 소원하게 대하는 이유도 물어봤다. 상대방은 나와의 관계가 아무 문제없다고 했지만, 하루 이틀 지날수록 멀어진 현실은 더욱 또렷하게 모습을 나타냈고, 어느 순간에 이르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만큼의 존재감을 갖추게 되었다.
관계는 상대적이다. 상대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상대적으로 한 사람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에 짝사랑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대성을 간과한 나에게 생각보다 쓰린 시련이 찾아왔다. 난 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했지만 그 사람에게 나는 많은 동료 중에 하나였을 뿐이다. 10년 동안 같이 지내며 깊은 생각을 공유했는데, 그건 그냥 그 시간을 보낼 누군가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일까? 심지어는 나를 친구라고 생각했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누군가는 상대방의 생각을 확인하지 않은 섣부른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진실은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설령 다른 사람이 하는 생각을 오해하고 있는 중이라고 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결국 사람이라면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이번 경험을 계기로 앞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특히 공통의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 내에서 만난 사람하고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를 하나도 빠짐없이 동료 또는 지인의 범주에 욱여넣을 수 있을까? 감정의 교류를 최소화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을까? 앞날을 속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분명한 건 동료 또는 지인에서 친구로 넘어가는 벽은 더 단단해지고 더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