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코치한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바로 “힘 빼세요!”다. 재수강하는 일부의 사람을 제외하고 초급반의 모든 수강생은 비슷한 발달단계를 거친다. 벽 잡고 물에 뜨기 → 음파하며 호흡하기 → 보드 잡고 발차기 → 팔 돌리기 대충 이런 순서다. 그중 초급반의 핵심인 음파하며 호흡하기는 물에 머리를 담근 상태에서 음~ 하는 소리를 내며 코로 숨을 방울방울 뿜어내고, 수면 위로 살짝 머리를 돌린 상태에서 파!(최불암 아저씨 느낌으로) 하며 입으로 남은 숨을 뱉자마자 들이쉬는 방법이다. 이 호흡법에 익숙해지면 물에 얼굴을 완전히 담그는 데서 오는 공포감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수영 레벨업이 가능하다. 수영 초보라면 당연한 행동이지만, 보통은 몸을 띄우기 위해 과도하고 비효율적인 발차기를 한다. 그러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자연스러운 호흡은 불가능하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리듬이 깨지게 되고 몸이 경직되면서 물에 가라앉는다. 몸을 띄우기 위한 발차기가 오히려 가라앉게 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레인의 절반도 못 가고 일어서는 상황이 벌어진다. 처절하게 물과 싸우는 수강생을 보며 외치는 코치의 단골 멘트가 바로 “회원님! 힘 좀 빼라고요!”다. 난들 힘 빼기 싫어서 이러겠나? 그게 되면 내가 왜 초급반에 있겠어? 등의 반항심은 잔뜩 먹은 물과 함께 기침으로 뿜어져 나온다. (카마도 탄지로조차도 처음에는 이랬어!)
몇 년 전 시작한 탁구 레슨의 담당 코치도 상체에 힘을 빼라는 말을 달고 산다. 처음에는 그 조그만 공이 눈 깜짝할 사이에 옆으로 빠져 버리는데 그게 되겠냐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공감하고 있다. 결국 수영이건 탁구건 원리는 힘을 뺄 때와 줄 때를 구분하는 것인데, 초보 시절에는 힘을 너무 과도하게 주고만 있어서 빼라는 말만 들었던 것이다. 이는 고수의 동작을 보면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수들은 동작에서 부잡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힘 빼고 설렁거리는 것 같지만 임팩트가 필요한 순간에는 순간적으로 가속하는 폭발력이 있다. (메시처럼) 상대방과 대결하는 운동경기에서 온 힘을 끌어모아 한 방에 끝내버리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잽을 날려야 주위가 분산되고, 킥을 차야 가드가 내려간다. 가벼운 공격을 잘해야 어퍼컷을 칠 수 있는 타이밍이 나온다. 비운(힘을 뺀)만큼 채울(힘을 줄) 수 있다는 간단한 원리인 것이다. 얼마 전 코로나 격리가 끝나고 방문한 탁구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후유증 때문인지 다리는 무겁고 몸에 힘이 빠져서 생각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상체 힘이 빠지자 스윙은 가벼워졌고, 스윙이 가벼워지니 공의 회전이 증가했다. 평소 경쟁자로 생각하는 상대가 시합 중에 내 공에 쩔쩔매는 게 느껴졌다. 물론 상대방의 컨디션이 마침 나빴고, 내가 마침 운이 좋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그날 나는 힘을 뺀 상태에서 나오는 연속 포핸드 드라이브의 감을 잡았고, 요즘도 잘 안 되는 날은 그날의 느낌을 떠올리려고 노력한다.
글쓰기도 비슷한 게 아닐까? 순간 떠오른 감정을 박제하기 위해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던 문학 소년은 어디론가 가고, 웬만해서는 감정에 동요하지 않는 아저씨만 남았다.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유지하기 위해 슬픈 노래가 나오면 차를 세우고 펑펑 운다는 어느 배우의 말처럼,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말캉말캉해지고 싶다. 멀리 가기 위해서는 짐을 가볍게 싸라고 한다. 힘을 쫙 뺀 채 하얀 지면에 내 생각을 잽처럼 툭툭 쏟아내면, 언젠가 당신의 감정에 어퍼컷을 꽂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오늘도 가볍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