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
서머싯 몸의 단편선과 함께하는 여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인생에서 특정한 사건을 겪으면서 ‘지금이 절정이다.’라고 느끼는 경우보다는 시간이 흘러 마무리될 때쯤에 ‘아 그때가 절정이었지.’라고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름처럼 절정이 어디쯤인지 알려주는 친절한 상황도 존재하고 무엇보다 절정(여름)이 지나가는 순간은 설명할 수 없는 서운함과 다가올 절정(겨울)에 대한 기대감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 좋다. 고등학교 어느 시점엔가 배운 sin 그래프의 모양처럼 가장 높은 곳의 하이파이브와 가장 낮은 곳의 로우파이브가 번갈아 가면서 계속되는 인생과 닮아있어서 더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호놀룰루는 주인공이 버틀러 선장과 만나서 알게 되는 신비로운 이야기와 그걸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정형화된 결말에 도달하는 독자의 뒤통수를 가볍게 후려치는 작품이다. 그간 내가 읽은 서머싯 몸의 작품은 비현실적인 부분을 최대한 배제한다고 느꼈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 대놓고 비현실적인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본인의 존재를 숨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추리소설을 발표한 J.K. 롤링처럼 작가는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도 재치 있게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어느 중국인에게 고용된 작은 배의 선장 버틀러는 우연히 들른 섬에서 매력적인 원주민 여자를 만났고 데리고 가는 대가로 그녀의 아버지가 요구한 250달러에서 한 푼도 흥정하지 않은 금액을 지불했다. (돈이 넉넉지 않아서 일부는 꾼 상황이지만 흥정하는 행위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모욕하는 짓이라 생각해서) 그녀를 데리고 배로 돌아온 버틀러는 사랑으로 충만한 감정을 느꼈고, 육지에 가서 폭음하고 배로 돌아오지 않는 횟수도 줄였다. (사랑스러운 여인이 나를 기다리는데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일등 항해사 버내너스 역시 그녀에게 버틀러와 비슷한 감정을 품으면서 싸움이 일어나게 되고, 버틀러는 너클 더스터를 두른 주먹을 휘둘려 자기보다 30센티미터는 더 큰 버내너스를 기절시킨다. 버내너스가 회복한 후 본인의 잘 못을 인정하는 듯한 어색한 웃음으로 상황은 마무리된 것처럼 보였지만 곧 버틀러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인간이라면 살아가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지만 통상의 기간을 훨씬 넘어서는 병증에 그녀는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버틀러에게 원주민 주술사를 불러 치료하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완강히 거부하던 버틀러도 앓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사의 진단과 나날이 약해지는 심신에 굴복하여 결국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녀가 초청한 주술사가 어떤 주술행위를 거치고 내린 진단은 ‘어떤 적’이 버틀러가 죽기를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어떤 적’이 버내너스라고 하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밝혀둔다. 하지만 그 후에 벌어지는 그녀의 숭고한(?) 행동과 모든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을 한 번에 비꼬아 버리는 재치는 아직 이 작품을 보지 않는 독자를 위해 남겨두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보다 먼저 사막을 걷는 기분으로 이 작품에 대해 얘기했다면 다음 발자국부터는 철저하게 흔적을 지우면서 이동할 참이다. 랜덤박스를 열어보는 기분으로 이 작품을 읽어보기를 권고하며 40쪽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렇게 생생한 묘사와 탄탄한 스토리를 구성할 수 있는 거장의 시선이 새삼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