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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머싯 몸의 단편집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단편이라는 게 단순히 글의 양이 적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정된 양으로 작가의 메시지를 농축하여 전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장편소설보다 부담이 더 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추리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단편집을 발표하면서 ‘가볍게 생각했으나 오히려 장편보다 쓰기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고 앞으로 단편은 쓰고 싶지 않다.’는 식의 얘기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본다.
작가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로서 활동을 한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맥패일 박사를 통해 자기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실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록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작가의 상상력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서 피어난 상상의 민들레가 가볍고 포근한 홀씨를 여기저기 날려 보내고 작품 어딘가에 정착해서 뿌리내리는 것처럼. 작가의 이런 노력이 노련하고 정교할수록 작품과의 이질감은 줄어들게 되고 결국에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독자가 구분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세상에 작가의 경험이 전혀 녹아있지 않은 작품이 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본인이 경험한 온갖 좋은 것과 추악한 것을 마음속 서랍에 분류해 두고 필요에 따라 꺼내어 쓴다. 때로는 본인의 직접 경험이라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면서 때로는 본인의 경험이나 생각이 아닌 것처럼 교활하게.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인간의 이중성과 가치판단의 다양성이다. 목사 데이비슨은 겉으로 보기에 누구보다 선교 활동에 헌신하고 신을 섬기는 사람이다. 이는 작품 곳곳에 여러 가지 행동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다는 부인의 증언으로 완성되고 있다. 하지만 톰프슨 양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동시에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데이비슨은 톰프슨 양의 행동이 본인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열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처음에는 대화를 통해 그녀를 교화하려는 노력을 하였으나, 그녀가 거부하자 결국 총독을 찾아가 그녀를 추방하게 만들었다. 데이비슨의 저열한 행동을 알게 된 그녀는 욕을 퍼부으며 저항했지만 곧 미국으로 돌아가면 처해질 상황을 두려워하며 점차 데이비슨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데이비슨은 묘한 정복감을 느끼며 그녀를 교화시키는 성스러운(?) 활동을 진행한다. 마치 거대한 뱀이 사냥감의 심장이 멎는 때를 느긋하게 기다리 듯. 그녀가 결국 데이비슨과 밤낮으로 붙어 있으면서 기도하게 된 것이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려고 한 의지의 표현인지 아니면 회개하는 척을 통해 추방당하지 않으려는 교활한 책략인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이 그다지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었다는 정황상 둘 다 섞여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데이비슨의 성스러운 활동 역시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처음에는 톰프슨 양의 (데이비슨이 판단하기에) 더러운 영혼을 구원하려는 선교사의 선의가 발동했을지 모르나,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렇게 가혹하게 추방까지 시킬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이비슨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톰프슨 양을 향한 성적 욕망이 싹트고 그걸 애써 무시하며 감추고자 했던 행동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찌 되었든 이야기는 필자가 스스로 목을 그어버린 데이비슨을 보고 숙소로 돌아가면서 만나게 된 톰프슨 양의 대화와 함께 끝난다. ‘당신도 나와 함께 한 번 하던가 남자들 추악한 돼지들’이라는 톰프슨 양의 일갈은 데이비슨이 톰프슨 양을 범했고 그 죄책감으로 목을 그어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작가가 순간의 실수를 깨닫고 스스로 삶을 마감한 데이비슨을 추앙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 중간중간에 맥패일 박사를 통해 드러낸 성직자에 대한 작가의 냉소를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실제 백부가 성직자였던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아무리 선과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여도 결국 인간의 삶은 본능적인 욕망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가는 성직자라는 특수한 직업인과 성욕이라는 욕망을 배치시킴으로써 인간이 언제든 욕망에 굴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물론 죽는 순간까지 평범한 욕망에 빠지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성직자도 이럴진대 일반적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야기가 마무리되면서 앞서 데이비슨이 원주민을 대상으로 한 활동이 도마 위로 올라온다. 벌거벗은 몸에 대한 부끄러움과 문명 세계라고 주장하는 곳의 죄의식을 심어주고 신을 믿게 하는 그의 성스러운 활동이 본인의 추악함은 깨닫지 못 한 거만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사실 그런 의도는 데이비슨이 정한 기준을 위반할 때마다 원주민들에게 벌금을 물렸다는 문구에서도 짐작이 가능했지만) 과연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인가? 아니면 문화적인 다양성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가? 또는 한 인간이 흠 없이 완전무결한 상태에서 타인을 교화하는 게 과연 가능한 것인가? 이렇게 철학적이고 광범위한 질문에 고민을 거듭한 작가는 마치 타인의 경험인 양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