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진지한 대화는 싫습니다만

by 윤현섭

어디선가 여자들이 싫어하는 대화 주제 TOP3을 본 적이 있다. 3위 군대 얘기, 2위 축구 얘기, 대망의 1위는 군대에서 축구 한 얘기였다. 현역으로 군 생활을 한 사람보다 면제받은 남자가 군대를 더 잘 안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남자들의 군대 무용담은 끝이 없다. 특히 일반 보병이 아닌 월남 스키부대나 알래스카 낙타부대 같은 특수부대를 나온 경우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심지어 취사병 출신이라 하더라도) 아내는 가끔 나에게 왜 군대 얘기를 하지 않냐고 묻는다. (여자 맞아?) 무슨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거냐며 약간은 측은한 눈빛과 함께. XX사단 헌병대를 만기 전역한 나에게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가 있겠는가? (DP 못 봤어?) 다만 난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여자들이 싫어할 만한’ 특정 주제를 언급하지 않는 것뿐이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는 양쪽 모두 관심이 없거나, 한쪽만 일방적으로 관심 있는 주제는 대화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전히 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싫어하는 대화 주제는 3위 종교 얘기, 2위 정치 얘기, 대망의 1위는 종교인이 정치한 얘기다. 이 대목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의 발언치 고는 대단히 부적절하고,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아니냐고 오해하지 않으면 좋겠다. 글로 표현된 종교나 정치는 대환영이다. 잘 가공된 필자의 생각은 신선한 자극이 되고, 그런 자극은 내가 가진 생각과의 융합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화 주제로써의 종교는 다르다. 보통 종교 얘기를 하는 사람을 만나보면, (특히 타 종교의 경우) 나를 구원(?)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너무 강하게 느껴진다. 가끔 흥미를 느끼는 경우도 있지만, 대화가 이어질수록 해소되지 않고 쌓이는 의문들은 금세 흥미를 덮어버린다. (차라리 “도를 아십니까?”처럼 접근하면 오히려 더 흥미를 끌 수도 있다.) 특히 구원 강박에 사로잡혀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일방적으로 설교하는 사람은 질색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종교 얘기는 정치 얘기보다는 좀 낫다. 종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숭고함이 있고, 신념의 범주에 바싹 붙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는 어떨까? 정치는 오직 우리가 사는 현실 안에서만 유효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각자의 현실이 바뀌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내가 딱히 원하지 않아도, 주변에 많은 사람이 정치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보수와 진보로 편을 나누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애당초 다른 사람의 ‘선호’를 평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자신이 좋다고 믿는 무언가를 남에게 강요할 시간에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맞지 않나? 그들이 상대방에게 함부로 던지는 얘기를 듣다 보면, 어떻게 저런 확신을 느끼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리고 가만히 있는 나는 보통 ‘문제의식 없는 놈’으로 낙인찍힌다.

어떤 현상이나 사람을 바라볼 때, 완벽하게 싫거나 좋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심지어 아내조차도 완벽하게 좋지는 않...) 하물며 정치라는 행위로 나타나는 특정 이념이 완벽하게 좋을 수 있을까? 대립하는 양 정당의 정책을 1번부터 100번까지 살펴보면 좋은 것, 싫은 것, 관심 없는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난 관심 수준에 따라 우선순위를 분류하고 중요도를 곱하여 양쪽을 비교해 본다. (가중 평균을 내듯이) 그리고 보통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지지하게 된다.

앞으로도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며, 그럴수록 존재하는 사람만큼이나 다양한 생각이 생겨날 것이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존중해 주길 바라는 만큼 타인의 생각 역시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헷갈리지 않으며, 나에게만 중요한 문제를 상대방에게까지 강요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위선 경계, 다정한 무관심 실천)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다'는 노래 가사처럼, 정답(결론)이 없는 주제를 포함한 너무 진지한 대화는 정중히 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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