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꿈

I have a dream

by 윤현섭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담한 키에 둥그런 안경, 살짝 치우친 가르마까지 영락없이 장항준을 쏙 빼닮은 국어 선생님이 있었다. (사모님이 번 돈을 같이 쓰자며 신나게 돌아다니진 않으셨다.) 그때만 하더라도 주먹을 포함한 물리적 체벌이 가능했던 시절이라 선생님들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국어 선생님은 좀 달랐다. 경상도 사투리를 상냥하게 구사할 수 있는 신기한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나긋나긋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난 국어시간이 참 좋았다. 선생님은 단순히 시험을 잘 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접할 수 있게 우리를 인도했다. 선생님은 시낭송을 참 잘하셨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밤을 듣고 있노라면, 이상할 정도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다른 과목을 공부하느라 지친 친구들도 국어 시간만큼은 낭만적인 생각에 푹 빠질 수 있었다.

1학기가 끝나던 어느 날, 평소보다 수업을 빨리 마친 선생님은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셨다. 곧 교사직을 그만두려고 한다는 얘기였다. 이유를 묻는 우리들을 바라보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단다. 먹고사는 게 바빠서 외면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어. 자취방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 아래쪽으로 어떤 할머니가 지나가고 있었지. 그런데 그 할머니의 머리 위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는 거야. 한 번 피어오른 연기는 점점 길어지더니 하늘까지 곧장 이어졌지. 난 바로 그 모습을 글로 남기고 싶어서 학교를 떠나는 거야." 당시 난 선생님의 담배 연기와 할머니 머리 위의 연기가 혹시 같은 연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새로운 출발에 초를 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고된 노동 때문인지 추석 다음 날은 오히려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며칠간 탁구를 치지 못해서 몸이 근질근질했고, 사람이 없으면 기계로라도 연습하자는 생각에 바로 탁구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샤라포바를 연상시키는 짧고 힘 있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기합의 주인공은 최선.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아이다. 이 아이를 안 지 2년 정도 되었는데, 항상 국대 출신 엄마와 같이 훈련을 한다. 엄마의 코칭은 매몰차다. 좌우로 지칠 때까지 공을 뿌려주고, 자세가 약간만 흐트러져도 호되게 지적을 한다. 난 열심히 뛰어다니는 선이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잠깐 쉬었다 하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선이가 레슨실 밖으로 나왔다. 난 힘들 때 먹으려고 챙겨 왔던 카라멜(선두?)을 꺼내 선이한테 건넸다. "선아! 탁구가 그렇게 좋니?" 9살밖에 안 된 아이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날 놀라게 만들었다. "어릴 때(?)는 엄마랑 같이 있는 게 좋아서 했는데, 지금은 좀 달라요.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싫고, 다른 친구들이 놀 때 이렇게 연습하는 것도 힘들어요. 하지만 엄마의 꿈을 같이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할 거예요." 짧은 휴식을 끝내고 선이는 다시 레슨실로 뛰어 들어갔다. 난 선이 엄마의 입가에 떠오른 옅은 미소를 분명히 보았다. 국대 출신 선이 엄마는 귀화한 중국인이다. 대한항공에서 활약한 뛰어난 실업 선수였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메이저 대회에서 입상한 적은 없다. 선수 시절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냈지만 닿지 못했던 꿈을 딸이 이어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주연에서 조연으로 물러났지만, 꿈의 크기 만큼은 오히려 이인분으로 더 커졌다.


첫째와 이렇게 단둘이 시간을 보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첫째는 다행히 아직까지 중2 병에 걸리지 않은 모습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꺼낼 때마다 주변에서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니 뭐니 하면서 곧 걸릴 거라는 저주를 퍼붓는데, 난 착한 아들을 믿는다. 수행평가에 중간고사까지 명절 전에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린 아들을 생각하면 참 짠하다. 볼링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본 아들은 참 듬직하다. 나보다 10센티 넘게 작은 아이가 벌써 95킬로를 찍고 있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다. 차가 왜 이렇게 깨끗하냐는 아들의 말을 들으니 정말 뿌듯하다. 역시 어디엔가는 날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전을 부치느라 죽어가는 와중에도 세차장에 들려 손세차까지 했으니, 날 칭찬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 뿌듯함은 오래가진 않았다. 코를 후벼 채취한 불순물(?)을 차 어딘가에 그대로 튕겨버리는 아들을 보니 '그냥 호적에서 파버릴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볼링장에 도착해서 열심히 공을 굴리면서도 내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의 영어 수행평가 성적이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아들은 나의 꿈이라는 수행평가 주제를 받아왔다. 꿈에 대한 생각을 영어로 외운 후 시험시간에 써내는 방식이었다. 평소 난 아들의 꿈이 외교관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처음 그걸 들었을 때, 애국심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에게서 나온 아이가 맞나 싶었다. 하지만 외교관이 되고 싶은 이유가 국위선양이 아니라 '집과 차를 제공해서'라고 말하는 아들(서태웅이냐?)을 보며, 역시 유전자의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라떼는 중간/기말고사 딱 두 번만 잘 보면 되었지만, 요즘은 과목별로 수행평가를 보고 성적에 꽤 많이 반영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넘길 수가 없다. 난 (영어를 전공했지만 너무 바쁜) 아내를 대신하여 아들의 수행평가 준비를 열심히 도왔다. 며칠 동안 같이 고민하며 작성하고 고치는 것을 반복했더니, 아들의 수행평가가 마치 날 평가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수행평가 당일 난 아들을 위해 신께 기도까지 올렸다. 그렇게 정성을 들였으니, 그 결과가 궁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살살 눈치를 살피던 나는 스트라이크를 치고 기뻐하는 아들에게 살짝 물었다. "아들! 수행평가 준비한 건 어땠어? 점수 잘 나왔니?" "10점이요." "우와! 만점 받은 거구나. 어쩐지 (날) 칭찬해주고 싶더라." "20점 만점인데요." 자초지종은 이랬다. 수행평가가 시작되자 잔뜩 긴장한 아들은 그 많은 단어 중에 하필 diplomat 이 기억나지 않았고, 결국 기지(?)를 발휘하여 actor로 꿈을 변경했다고 한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 후 남아있는 세 프레임 동안 저 멀리 위치한 볼링핀이 아들의 얼굴로 보였다. 그리고 선이처럼 기합을 잔뜩 넣으며, 볼링핀을 부숴버린다는 각오로 공을 굴렸다. 게임을 끝내고 바나나 우유를 사달라는 해맑은 아들을 보면서 역시 이번 생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낙담하고 있는데, 바나나 우유를 반쯤 먹던 아들이 뭔가 생각났는지 나에게 말했다. "아빠! 이거 너무 맛있는데, 좀 드셔보세요." 그 순간 충청도 사람들이 구사하는 최고의 쌍욕이 떠올랐다. "내비둬. 애는 착혀." (아들! 영어를 전혀 안 쓰는 꿈으로 한 번 알아보자.)

작가의 이전글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