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by 윤현섭

결핍은 생기는 원인만큼이나 그 종류도 다양하다. 우선 물질적 결핍은 말 그대로 갖고 싶은 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여기서 갖고 싶은 것이란 형태가 있는 물건(재화)뿐 아니라, 무형의 서비스(용역)까지 포함된다. 바꿔 말하면, 돈으로 치환 가능한 가치의 부재에서 발생하는 감정인 것이다.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결핍은 꽤 자주 발생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자유는 바로 물질적 결핍을 겪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물질적 결핍을 완전히 없애는 게 과연 가능할까? 과거 우리는 휴대전화가 없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집전화로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했고, 시간에 맞춰 먼저 도착하여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이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하루만 휴대전화를 놓고 나와도 엄청난 불편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처음 그 물건이 나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게 없어서 결핍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가 그것을 쓰게 되고, 자신만 스마트폰이 없는 상황이 결핍을 만들어 냈다. 더 불행한 것은 비교라는 토양 속에서 피어난 결핍은 순식간에 자라나 박탈감이라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훌륭한 기업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욕구를 만들어 내고 상품화하는 것을 보며 환호한다. 그러나 그 욕구를 충족시킬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건 그냥 해소불가능한 결핍으로 남는다.

물질적 결핍의 과거와 현재는 많이 다르다. 과거에는 말 그대로 못 먹고, 못 입어서 결핍이 발생했다.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다른 것에서 결핍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런 사람에게 다른 욕구는 그저 허황된 소리로 들렸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오늘날은 SNS를 통한 실시간 비교가 가능하다. 즉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누리고 있더라도, 나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누리는 사람이 이 지구 어디엔가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결핍을 충족시키면 바로 또 다른 결핍이 나타나는 세상에서 그것을 대하는 자세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결핍이 동기부여가 되어 그걸 갖으려 적극적으로 노력하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외면하거나. 전자는 결핍을 통한 목표 설정과 성취를 의미한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높은 수준의 결핍일수록 해소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후자를 택한다. 노력하는 게 귀찮아서 또는 열심히 추구해도 결국 결핍을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무시라는 간단한 방법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결핍은 잡초와 같다. 그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는 한 잡초는 금방 또다시 자라난다. 결핍을 느끼는 무의식에 제초제를 뿌리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물질적 결핍을 안고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이다.

아주 극소수겠지만, 이론적으로 물질적 결핍을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서적 결핍을 완벽하게 해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에게는 부모라는 결핍이 생긴다. 설령 아이가 잘 자라나 가정을 이루고 많은 사랑을 받아도 그 결핍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의 목숨보다 나를 아끼는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번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최대한 정서적 결핍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게 아닐까? 결국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고, 사랑도 받아본 사람이 더 잘 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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