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취미를 갖는 취미는 좀 곤란해

by 윤현섭

난 누군가와 친분이 좀 쌓였다고 느껴지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취미가 뭐냐는 질문이다. 돌아보면 치열했던 2~30대에는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전혀 없었다. 주중에는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는 애들을 돌보는 상황이 무한 루프처럼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취미는 사치품이었다. 간혹 짬이 생기면 그저 자고 싶었고,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제일 무난하다고 생각하는 독서라고 답했다. (1년에 두어 권도 읽지 않으면서) 하지만 40대가 되고 잉여 시간이 생기면서, 내 우선순위 목록에 취미라는 놈이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했다.

몇 년간 취미생활(탁구)을 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꽤 유용하다는 것이다. 우선 신체적인 측면에서 보면, 취미는 체력을 유지 또는 증진시킨다. 이는 달리기, 수영, 사이클, 당구(?) 등 몸을 움직이는 모든 취미에 해당되는 말이다. 하지만 취미의 진정한 가치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잘 나타난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나의 경우 작은 공에 초집중하며 계속 뛰어다니다 보면 어느새 잡념은 사라지고 순수한 즐거움만 남는다. 또한 반복된 훈련을 통해 매일 나아지고 있는 느낌은 베리 나이스다. 그 느낌은 매일매일 목표를 향해 정진하던 과거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다른 곳에선 좀처럼 느끼기 힘든 성취감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통로인 것이다. 결국 인간은 삶의 균형점을 찾고, 그것을 유지해야만 편안함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시소의 양 쪽에 올리는 무게추로 일과 가정을 택하지만, 그것 만으로 균형을 맞추기란 매우 어렵다. 바로 그럴 때 취미는 훌륭한 미세조정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디선가 일본 여성들이 뽑은 최악의 남자 취미 TOP 20을 본 적이 있다. 리스트 상단에 있는 피규어 수집이나 파칭코는 남자인 나조차도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가정을 이룬 여자는 가정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경제적 어려움이 뒤따르는 파칭코는 당연히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 코딩 학원 보낼 돈인데!) 하지만 영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게 바로 '시 쓰기'와 '소설 쓰기'였다. 그나마 소설은 리스트 하단에 위치하고 있었지만, 시는 최상단에 있었다. 낚시처럼 통째로 하루를 빼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싫어할까? (간혹 엄청 비싼 펜을 쓰는 사람도 있다.) 내 생각에 그 거부감의 원천은 바로 생소함에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취미다. 그리고 보통은 다른 사람과 같이 할 수 없다. 어두운 밤 작은 스탠드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본 사람은 안다. 글은 거미가 줄을 뽑아내듯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발가벗은 채 깊고 어두운 내면으로 침잠하는 과정을 거쳐야 공감가는 글이 나오는 것이다. 파트너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 끝없이 어두워지다가 어느 순간 "나 회사 때려치울 거야!"라는 종류에 말을 할까 봐 불안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지내다가 가끔 피난하는 곳 정도로 이해하면 어떨까? 자신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천재는 생각보다 드물다. 그리고 파트너 여러분! 소설보다 생소한 시에 대해서도 좀 열린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소설은 생각을 덧붙여 가며 만들고, 시는 생각을 덜어내며 완성한다. 소설이 유화와 비슷하다면, 시는 조각이다. 소설이 보통 사람의 영역이라면, 시는 혹독한 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친 생각을 잡아 깎고 다듬어서 단어 몇 개만 남기는 행위, 그게 바로 시의 묘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거미줄을 뽑아내는 모든 사람을 응원 한다. feat. 나 포함)



작가의 이전글결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