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일 좋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으면 보통 가족, 연인 등을 떠올린다. 피상적인 교류를 넘어선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도 좋지만, 설사 별로 맘에 들지 않더라도 좋은 척(?)을 하지 않으면 좀 곤란하다. 이렇듯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관계는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아주 어릴 때는 무엇이든 사주는 외할아버지가 제일 좋았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날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가 제일 좋았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생긴 지금은 그냥 '가족은 다 소중해서 우열을 가릴 수 없다.'라고 슬쩍 넘어가는 게 목숨을 부지하는 길이다. (feat. 터미네이터)
하지만 바로 이곳은 우리 가족들이 볼 수 없는 청정구역이 아닌가? 솔직히 말하자면,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안 해본 걸 같이 하자는 사람'이다. 어릴 때는 주변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많지 않고, 너무 먼 얘기라는 생각에 '죽음'은 개념적인 단어로만 느껴진다. 그러나 중년이 되면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그 죽음은 직접적(지인)이기도 하고 간접적(지인의 부모 등)이기도 하다. 비율로 보자면 간접적인 죽음이 80%를 상회하기 때문에,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한 사례의 20%를 마주하다 보면 죽음이 그렇게 먼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보통 그 시점에 우리는 인생의 전반전을 찬찬히 돌아보게 되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지금까지 한 일들을 평가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다짐한다. 그리고 꽃은 지기에 아름답고 인간은 죽기에 매 순간이 의미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생이 유한하다는 걸 깨달으면서 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보지 않은 경험을 할 기회가 생기면, 그게 무엇이든 해보겠다고. 일반적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경험을 '스스로' 마다하는 경우가 꽤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껏 해외여행을 가서 피곤하다며 숙소에만 머문다던가,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교육 기회를 거절한다던가. 물론 그런 행동은 젊은 사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변화를 싫어하게 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feat. 꼰대)
매년 명절 증후군을 겪는 나도 이번 추석만큼은 약간 기다려지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한 달 전에 친구와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그야말로 찐 XX친구다. 우리는 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나서 서로의 조상을 양반이네 천민이네 욕 하다가 친해졌다. 요즘도 가끔 앨범을 정리하다 보면 그 시절 봄 소풍 사진을 찾게 되는데, 가장 뒷줄에 있는 내 옆에서 친구는 부러진 앞니를 한껏 드러내며 썩소를 짓고 있다. (가장 앞줄에 다리를 쭉 펴고 앉은 예쁘장한(?) 터미네이터가 미래의 내 아내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젠장.) 평소와 같은 만남이었다면, 난 아내를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약속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바로 드론 날리는 걸 배우기로 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취미부자다. 특정 나이대에만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어서, 여러 가지 취미를 다양하게 즐긴다. 드론은 취미가 자격증 취득까지 이어진 경우다. 실제로 대기업에 붙어있는 파리 목숨이기 때문에 조만간 짤리면, 동남아 휴양지에서 드론을 이용하여 먹고 산다는 플랜 B를 가지고 있다. 집 주변 공원에서 만난 우리는 바로 공터로 이동했다. 드론 비슷한 거라도 날려 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난 벽난로 속으로 죽으러 들어가는 팅커벨 드론(?)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보여줬다. 그리고 여기는 벽난로가 없으니까 혹시 물에 처박히더라도 저 쪽에서 문보트를 타는 사람한테 건져달라면 된다고 친구를 안심시켰다. 친구는 "너 같은 놈을 보러 온 내가 병신이지."라는 덕담을 건네며 드론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드론 조정은 의외로 간단했다. 왼쪽 스틱이 상승과 하강 그리고 제자리 회전이었고, 오른쪽 스틱이 앞뒤/좌우 전진이었다. 친구는 운전과 같이 처음 습관이 중요하다며, 살살 부드럽게 스틱을 조작하라고 말했다. (물에 처박을까 봐 그러는 건 아니지? 식은땀부터 먼저 닦고 말해.) 난 듣는 둥 마는 둥 (구입한 지 2년이 넘은) 드론을 길들여야 한다며 막 몰았다. 나의 손동작이 과감해질수록 친구의 썩소는 점점 뚜렷해졌다. 나는 드론 조종기에 붙어있는 스마트 폰 화면을 보며 사진을 찍고, 평소 볼 수 없는 공원 항공뷰(?) 동영상도 남겼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렇게 한참을 신기해하다가 하늘을 보니 드론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순간 난 당황했지만, 태연하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 드론이 어디로 도망갔나 본데, 새로 사." 친구는 너 따위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는 표정으로 조종기 왼쪽 상단의 버튼을 짧게 두 번 클릭했다. 친구의 드론은 자동 귀환 기능이 탑재된 모델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어디선가 날아온 드론을 보며, '전파가 닿지 않는 더 먼 곳으로 보낼 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착한 친구는 나선 비행, 삼각 비행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한 기술을 알려줬고, 한참을 뺑이친 나에게 자격증 시험용 드론은 이거랑은 완전히 다르다는 (시작 전에 말해 줬어야 할) 유용한 정보를 줬다.
한참을 재밌게 놀고, 배고파진 우리는 감자탕집으로 이동했다. 우리 앞에 있는 감자탕이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쯤 친구는 고민이 있다면서 말을 꺼냈다. (무게 잡지 마!) 최근 한 달 동안 친구는 감사팀에 시달리고 있었다. 감사팀은 친구에게 코로나 때 재택근무한 이력을 증명하라 요구했고, 친구는 개인 메신저/이메일 등을 뒤져서 겨우 소명을 했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소명하지 못 한 근무일이 일주일 정도 된다고 했는데, 그것보다도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한건 따로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 팀에 데리고 있는 후배가 감사팀에 찌른 것 같아.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며 후배가 먼저 전화했을 때, 너무 고마웠거든. 그런데 다른 채널로 알아보니까 그 친구가 맞아. 고민하다가 후배를 불러냈는데, 절대로 자기가 한 짓이 아니라고 잡아떼더라. 이젠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어." 난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너무 단정 짓지 말라며 친구를 위로했지만, 느낌이 쎄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무척 괴로워했던 일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친구가 너무 짠했다. "얼마전 한강에 뛰어내려서 자살한 직장인 기사 봤어? 우리 회사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이야. 나도 오래 버티진 못 할 것 같아서 요즘 열라게 자소서 쓰고 있다." 문과 출신인 니가 교정 좀 해달라며 농담하는 친구와 함께 먹은 감자탕은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국민학교 앞 88 오락실에서 돈 없이 쭈뼛쭈뼛 거리는 나를 위해 거금 5천 원을 헐어 뚝 떼어준 친구. 중학교 때 같이 동전 퍽치기를 하다가 똥싼바지한테 걸려 귀싸대기를 맞으면서도 끝까지 나를 감춰준 친구. 고등학교 때 반이 다른 걸 아쉬워하며, 추운 날 스탠드에 같이 앉아 도시락을 먹던 친구. 그 친구가 너라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내 인생 곳곳에 행복한 기억을 참 많이 만들어 줘서 무척 고맙다. 이제 네가 힘들면 부족하나마 내가 힘이 되어줄게. (다음번에 보게 되면 쑥스러우니까 이런 말은 하지 말고, 만약 너 짜르면 우리집 냉장고 브랜드와는 영원히 이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