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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섭 Oct 26. 2023

손절

 우리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옆에서 가만히 들어 보면, 내가 어릴 때와는 참 많이 다른 걸 느낀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닌 시절에는 한 학년에 10개 반도 모자라서 오전반/오후반이 따로 있었고, 한 반에도 60명은 기본이었다. 대단지 안에 위치한 국민학교라 애들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도시라고 일컬어지는 다른 지역의 학교도 다들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는 한 학년에 6~7개 반 밖에 없다. 게다가 한 반에 배치된 인원도 30명 남짓이라고 하니,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며칠 전 막내가 친구랑 통화하는 내용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야! 차우곤 진짜 별로지 않냐? 손절각이다. 좀 이따가 탕후루 먹으러 갈래?" 당시 난 손절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탕후루 하면 연상되는 발랄함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혼란스러웠다. 내 기준에서 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은 꽤 많은 노력과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현종 시인은 방문객이라는 작품에서 누군가와의 만남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위의 문구를 볼 때마다, 역시 시인은 시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노력해야 저렇게 단어 몇 개로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난 사람을 오래 두고 보는 편이다.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 언제 그 사람과 가까워졌는지를 떠올려 보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오랫동안 가랑비가 내려서 물웅덩이를 만드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한 사람을 위한 물웅덩이가 저마다 한 개씩 놓여있다. 어릴 때는 한 번 가까워진 사이가 죽을 때까지 이어져야 된다고 굳게 생각했기 때문에, 물웅덩이를 오염시키는 어떠한 행동도 단호하게 배척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소중한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 특별한 관계를 처음과 같이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친교와 손절을 반복하는 게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막내뿐만이 아니라, 요즘 청소년들의 취향이 그런 식인 게 좀 놀라울 따름이다. 주변에 넘쳐나는 플라스틱 용기처럼 잠시 쓰다 버리는 일회용 우정이라니, 그건 마치 지우개를 빌려달라는 것처럼 간단하게 들린다. 하지만 막내는 알까. 나이를 먹으면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친구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어느 한쪽의 잘못 없이도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도 종종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를 손절해 왔던 경험이 예방 접종처럼 효과를 발휘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는 걸까? 

 최근 몇 년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탓인지, 요물 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와 관련한 영상을 많이 추천해 준다. 그중 한 영상에서 서서히 연락을 줄여가는 게 '널 손절할 거야'라는 신호라고 하는 걸 봤다. 그리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게 대안이라고 한다. 어떤 식으로 노력해도 끊어질 관계는 끊기기 마련이고, 이어질 관계는 만나게 된다고. 시절인연이라는 근사한 불교용어까지 써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이 세상 모든 게 운명이라고 믿는 것과 뭐가 다른 걸까? 오히려 안간힘을 써봐야 결과와 상관없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마음속 수용으로 가는 과정이 힘든 노력은 그냥 건너뛴 채, 쉽게 변명만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깊은 밤 책상 앞에 앉아 전적으로 믿고 좋아하는 사람을 손에 꼽아 보니, 10명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한 내 마음속 물웅덩이는 여전히 맑게 반짝이고 있다. 생각하면 너무 서글퍼지지만, 언젠가 그런 관계에서 조차도 뒷면에 적혀있는 유통기한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만큼은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혹시라도 나를 손절할 마음이 생긴다면, 부디 충분히 아파하며 준비할 시간을 주길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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