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작품 해석하기

인간의 굴레

by 윤현섭

서머싯 몸의 대표작이라고 평가받는 인간의 굴레에서를 완독 했다. 도서관에서 처음 집어 들었을 때는 두 권으로 나눠진 방대한 분량이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책 중에 하나답게 생각보다 쓱쓱 읽혔다.

주인공 필립 케어리는 절름발이로 태어나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읜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친척인 백부의 집으로 보내졌다. 블랙스터블의 관할 사제였던 백부의 영향으로 필립은 유년기부터 독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신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자신의 장애에 대해 신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지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년 시절의 필립은 자신이 불구라는 것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기숙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자 불구라는 사실이 치욕스러워지기 시작했고, 특히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게 화가 나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장애에 대해 언급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던 필립은 새로 온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곧 우등생이 된다. 당시 젠트리 계급의 사람들이 선택하는 직업은 크게 네 가지였다. 군인, 법률가, 성직자, 농업 지주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백부는 필립이 자신의 뒤를 이어 성직자가 되기를 바랐다. 학교에서도 장학금을 받으며 옥스퍼드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가진 필립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신에 대한 의문을 키워가던 필립은 성직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백부의 삶이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편협한 시각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백부를 보며, 필립은 더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필립은 교장 선생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독일로 건너가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림을 공부하겠다며 프랑스로 넘어가 고군분투한다. 본격적인 그림 공부를 하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의 말만 믿고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범하다는 지도 선생의 말을 듣고 필립은 그림을 그만둔다. 영국으로 건너온 필립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따라 의학을 공부한다. 그리고 우연히 들린 찻집에서 밀드레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달과 6펜스에서 보았듯이 작가는 등장인물(여기서는 필립)을 극단까지 몰아붙인다. 사랑의 빠진 사람은 눈이 먼다는 진부한 표현처럼 인간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한없이 이기적인 밀드레드를 향한 필립의 헌신은 조금 과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목의 반복과 재배치를 통해 이야기의 생동감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는 알겠으나 독자가 수긍할 수 있을 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게 아닐까? 남의 아이를 키우는 여자, 게다가 자신에 대한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결국 필립의 이해심도 어느 사건을 계기로 바닥나게 되고,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않게 된다.

필립은 밀드레드를 알게 되면서 겪은 곤궁을 만회하고자 손을 댄 주식에서 크게 손해를 보게 된다. 몇백 파운드를 투자한 증권이 몇 파운드의 가치로 청산되고 결국 하숙비도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극심한 배고픔과 함께 길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계속되고 필립은 급속도로 야위여 간다. 그의 곤궁을 눈치챈 애설리가 없었다면, 필립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애설리는 갈 곳 없는 필립을 거두어 주고, 자신이 다니는 회사의 안내원으로 지원할 수 있게 뒤를 봐줬다. 취직한 필립은 겨우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하루하루를 겨우 살아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실망한다. 그리고 자신을 키워준 백부가 빨리 죽기를 바라게 된다. 돈을 빌려달라는 필립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정도로 냉정한 백부였지만, 그게 죽게 되면 약간의 유산을 받아 학업을 끝마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백부가 죽고 필립은 유산을 상속받는다. 엄청나게 큰돈은 아니었으나 회사를 그만두고 학업에 복귀하기에는 충분했다. 다시 의학을 공부하게 된 필립은 안정감과 함께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그간 겪은 우여곡절은 필립이 인생에 대해 깊게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그는 삶이란 기쁨, 슬픔, 또는 모든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우연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사건들이 인생의 무늬를 좀 더 정교하고 풍부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크론쇼가 준 양탄자를 보고 결국 인생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평생을 꿈꾸던 여행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샐리를 사랑하게 되면서부터라는 사실은 이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을 보여준다. 제 아무리 멋진 말로 꾸미고 찬양해도 결국 이상은 인간이 태어나서 아이를 낳고 일하며 죽는다는 평범한 모습을 이길 수 없다고. 작가는 평범한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패배일지 몰라도 그건 수많은 이상의 승리를 능가하는 값진 패배라고 말하고 있다. 천 페이지에 걸쳐 작가가 묘사한 이상에 대한 찬양을 마지막 순간에 뒤집어 버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스포일러가 되고 말겠다는 비뚤어진 생각이 뿔쑥 고개를 든다. (워워)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인 달과 6펜스에서 이상에 대한 집요한 집착을 그려낸 것을 감안하면, 어느 쪽이 작가의 진심인지 조금 헷갈린다. 하지만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좋은 작품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광범위하게 반영하여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상을 선택하는 모험가가 될 것인지 아니면 가정을 지키는 자상한 부모가 될 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면 된다.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들의 시각은 제각각이며, 본인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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