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작품 해석하기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윤현섭

새로운 작품이 아닌 이미 읽어본 작품을 다시 읽는다는 행위가 나에게는 어쩐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인생이라는 한정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고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졌고, 첫 번째 만남과는 다르게 천천히 최대한 느긋하게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고등학교 시절 학교 봉사활동을 계기로 만나게 된 다섯 명의 친구들(남 3, 여 2)이 찬란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자연스럽고 완벽한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과정과 주인공이 그룹에서 추방당하게 되면서 느낀 극한의(죽음의) 감정,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인지하지 못 한 또는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상처를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몇 가지 장치를 통해 주인공이 나머지 네 명과는 구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한없이 편하게 느끼는 고향 나고야를 떠나 도쿄에 위치한 대학에서 기차역 설계를 공부한다던지 본인의 이름에 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이유로 소외감을 느낀다던지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인간은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만들고 폐기 처분한다. 나 역시 자아가 생긴 시점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정립해 왔다. 그리고 인간 사이의 관계는 감정의 수위에 따라 주도권이 생긴다고 믿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등한 친구 관계도 세밀하게 뜯어보면 좀 다르게 보일 수 있듯이 감정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주도권을 양보하는 게 싫었던 나는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판단한 관계를 제외하곤 절대 감정의 수위를 위험한 높이까지 올리지 않았다. 감정이 범람하면 여러 가지로 불리한 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고 관계가 정립되기 전에 벌어지는 주도권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책략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특별한 몇몇에 대해서는 한없이 다가가고 싶었고 한없이 인정받고 싶었다. 강둑으로 범람한 나일강이 비옥한 농토를 만들듯 흘러넘치는 감정이 풍부한 감수성을 만들었다. 다자키 쓰쿠루도 색채가 가득한 나머지 네 명과 어울리며 기쁨을 느끼고 더 나아가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자 했다. 너무 소중하다는 표현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의 친구들에게 한꺼번에 거부당한 다자키 쓰쿠루가 보인 반응은 죽음에 대한 끝없는 관심이었다. 친구들에게 거부당한 사실을 명확히 인지한 시점부터 약 6개월 동안 다자키 쓰쿠루는 죽음의 구멍 가장자리에서 어두운 심연을 바라보며 지냈다. 마치 바닷속 다이버가 깊이를 알 수 없는 해협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가듯이 죽음을 향해 끝없이 침전했다. 벽에 붙어 있는 전구의 스위치를 내리듯이 간단하게 미지의 영역(죽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느꼈다. 결국 어떤 계기를 통해 죽음의 문턱에서 뒤돌아서게 되었지만 다자키 쓰쿠루는 더 이상 다자키 쓰쿠루가 아니었다. 모습도 마음도 변해버린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버지가 지어준 색채 없는 이름뿐이었다.

여자친구가 본인의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상처를 인지하고 네 명의 친구를 만나라고 제안하기 전까지 다자키 쓰쿠루는 본인의 상처를 외면하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본인의 감정을 정리하면서 긴 시간이 흘렀고 무엇보다 자기가 왜 추방당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정산할게 남았다는 사실을 떠 올린 장사치처럼. 그 뒤로 사라(여자친구)가 정리해 준 정보를 따라 세 명의 친구를 아오(靑), 아카(赤), 쿠로(黑) 순으로 만난다. 그리고 본인이 자연스럽고 완벽한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이유를 아오(靑)로부터 듣는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시로(白)를 힘으로 제압하고 성폭행한 것이 그 이유였다. 세 명의 친구들은 모두 다자키 쓰쿠루가 그런 행동을 할 친구가 아니라고 믿었지만, 피가 철철 흐르는 시로의 상처를 보면서 감히 반론을 제기할 마음을 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양자택일(시로와 다자키 쓰쿠루 중 하나)을 강요하는 시로의 손을 들어줬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 마주한 다자키 쓰쿠루를 보면서 세 친구는 추방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을 얘기한다. 작가는 다자키 쓰쿠루가 스스로 납득하고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 대목에서 한없이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이유가 어떻든 추방당한 다자키 쓰쿠루는 죽음의 문을 수차례 노크했고, 실제로 몸 안에 있는 물질이 모두 바뀌어 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런 다자키 쓰쿠루에게 ‘넌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이 과연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말이 조금이나마 의미를 갖추기 위해서는 본인들이 다자키 쓰쿠루를 추방한 그 시점에 이유를 설명했어야 한다. 가족을 건사하기 바쁜 아오의 수더분함, 본인의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 하는 아카의 계산된 겸손, 핀란드로 도피한 쿠로의 사랑 고백은 모두 다 그럴싸한 변명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변명을 통해 다자키 쓰쿠루가 시로(白)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은 솔직히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건 마치 문둥병에 걸린 사람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썩어가는 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보였다. 절대로 과거의 자신이 될 수 없는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의사와 타협하듯이.

‘인간관계는 변한다’는 변하지 않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타인과 피상적인 관계를 추구하는 게 위험부담을 줄이는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자신을 모두 드러내고 성난 파도처럼 상대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도 있는 것이다. 마치 손 안에서 가녀린 목을 내저으며 운명을 저울질하는 작은 새처럼 우리는 다정한 또는 한없이 난폭한 상황에 놓일 수 있고, 그래서 경험하지 않은 인생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최근의 경험을 통해 많이 고민했고, 절대로 폐기 처분될 것 같지 않았던 관계가 무관심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앞으로 새롭게 만날 누군가에게 성난 파도가 될 것인지 아니면 정확한 저울이 될 것인지는 매번 고민스러운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나저나 つくる를 쓰쿠루로 표기하는 게 왜 이렇게 어색할까? 츠! 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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