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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현섭 Nov 17. 2023

고부

형제는 용감했다

 결혼을 하게 되면, 좋든 싫든 참석해야 할 행사가 늘어난다. 대표적으로 부모님 생신, 명절, 제사 등 필수행사만 따져도 열흘은 족히 넘는다. 게다가 친인척의 경조사까지 포함하면, 년 52주 중에 온전히 쉴 수 있는 주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행사 많은 집안 남자와 결혼한 죄로 고생한 엄마는 본인이 시어머니가 되자 악습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필수 행사만 모이고 부득이하게 모이더라도 가급적 빨리 끝낸다는 방침을 정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 집의 행사는 매우 간결하게 진행된다. 주요 명절에는 당일 아침에 모여 식사 후 바로 헤어지고, 생일 모임도 점심 식사만 하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쉬곤 한다.

 하지만 그런 엄마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행사가 있었으니, 바로 김장이다. 다른 행사는 현금과 입만 준비해도 큰 문제가 없으나, 김장은 다르다. 무채를 깎고 양념을 버무리는 일을 나와 동생이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타고난 똥손인 것을 감안하면 안 시킬 법도 한데, 힘쓰는 일은 항상 남자들의 몫이다. 작년 이맘때 엄마는 3주 전부터 가족 단톡방에 김장 공지를 올렸다. D-20, D-15, D-10 이런 식으로. 날짜가 다가올수록 부담감은 점점 커졌다. 누군가 그랬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그런 현학적인 조언은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김장 당일 엄마집에 도착해 보니, 뽀얗게 생긴 무가 광주리 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나와 동생은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무를 갈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쯤 흐르자 무채가 수북이 쌓였고, 허리는 비명을 질러댔다. 엄마는 전혀 개의치 않고, 우리가 만든 무채에 갖은양념을 툭툭 집어넣고 버무릴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비슷한 과정을 서너 번 반복하자 맛깔스러운 김칫속이 완성되었다. 난 다리가 저려 연신 코에 침을 찍어 바르면서도, 빨리 김장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지옥을 탈출해서 탁구장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절인 배추가 언제 도착할지 모른다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잔뜩 실망한 나는 방으로 들어가 벌러덩 누워버렸고, 곧이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동생도 방으로 들어왔다. 온수 매트까지 켜고, 형제는 사이좋게 나란히 누워 아픈 허리를 지지기 시작했다.


"유미야. 고생했다. 절인 배추가 언제 올지 모르니 앉아서 커피 한 잔 하고 있자꾸나"

"어머니 혼자 재료 손질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내 정신 좀 봐. 오늘 너 오면 주려고 꺼내 놨는데, 어딨더라. 아! 여기 있네. 매년 부려먹기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구나. 이거 받으렴."

"아니에요! 이거 어머니가 아끼는 반지잖아요. 그리고 김장하면 저희 식구가 거의 다 가져다 먹는데요."

"그래도 넣어둬.  나이쯤 되면 이런 반지를 낄 일이 별로 없구나. 매년 보석함에 있는 거 하나씩 꺼내 줄 테니까 다 떨어질 때까지는 김장하러 와야 한다. 알았지?"

"오지 말라고 하실 때까지 올 거니까 염려 마세요. 그리고 이건 제가 받을 수 없어요."

"오랜만에 보석함을 열어보니 옛 기억이 떠오르는구나. 이게 뭔지 아니?"

"평범한 금팔찌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어요?"

"보석함에 있는 물건 중에 유일한 가품이지. 하지만 난 아무리 값진 물건을 준다 해도 이 팔찌와는 절대 바꾸지 않을 거란다. 아마 현섭이, 현수 모두 유치원을 다녔던 무렵인 것 같구나. 지금 내 나이에 반쯤 되는 젊은 시절이었지. 1월이라 무척 추운 날이었어. 평소처럼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애들이 보이질 않더구나. 당시 같은 동에 또래 친구들이 많아서 둘이 같이 놀러 갔겠거니 생각했어. 하지만 날이 어둑어둑 해지도록 돌아오질 않는 거야. 갑자기 불안하더구나. 난 무작정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지. 그때만 하더라도 휴대폰이 있니 뭐가 있니. 그저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었지. 한 시간쯤 돌아다녔는데도 보이질 않는 거야. 너무 걱정스러웠지. 당시만 도 유괴 사건이 심심치 않게 있었거든.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파출소로 찾아갔어. 경찰관은 진정하고 천천히 얘기하라는데 그게 되겠니? 난 애들이 유괴된 것 같다며 울부짖었지. 그런데 황당하게도 파출소 창문 너머로 우리 애들이 지나가는 게 보이는 거야. 다급했던 난 경찰관에게 사과를 하는둥 마는둥 하고, 곧바로 뛰쳐나갔지. 그때 애들 얼굴이 얼마나 가관이던지. 추위 때문에 둘 다 얼굴이 새빨갛고, 누런 코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 난 양손으로 아이들의 손을 하나씩 붙잡고 집으로 향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집에 도착하자 긴장이 풀린 나머지 털썩 주저앉게 되더구나. 난 혼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면서 아이들에게 물어봤어. 도대체 어딜 다녀온 거냐고. 대답 대신 현섭이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서 나에게 주더구나. 작은 손으로 내민 상자는 앙증맞은 리본으로 묶여 있었지. 글쎄 애들이 내 생일을 기억하고, 선물을 사러 XX시장까지 간 거였어. 왕복 2킬로 정도 되는 먼 길을 작은 아이 둘이서 손잡고. 난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간신히 참았단다. 그저 엄마를 생각해 줘서 너무 고맙다며 아이들을 꼭 안아줬어. 그날은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가 버렸어. 너무 긴장하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지. 다음 날 애들을 등원시키고 집안 청소를 하는데, 식탁 위에 올려 둔 작은 상자가 눈에 들어왔어.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보니, 반지 시계가 들어 있더구나. 넌 그게 뭔지 잘 모르겠지만, 작은 시계를 반지처럼 하고 다닐 수 있는 액세서리였지. 언젠가 아이들이 작은 엄마가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기억하고 있었나 봐. 그게 너무 좋아 보여서 엄마 생일에 꼭 선물하겠다고. 어린애들이 엄마의 취향을 알 턱이 없지. 반지 시계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을뿐더러 손에 맞지도 않았어. 망할. 나도 처녀 시절에는 손이 가늘고 참 예뻤는데. 암튼 난 점심 무렵 매장을 찾아갔어. 지금처럼 환불이 쉽지 않은 시절이라 손에 맞는 사이즈로 바꾸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불행하게도 매장에는 반지 시계가 없더구나. 가게 주인은 어제 아이들이 찾아온 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어. 현섭이가 돈을 내밀며 반지를 달라고 하자 의심이 들었데. 아이들이 들고 다니기에는 큰돈이고, 무엇보다 반지를 사기에는 너무 어려 보여서. 현섭이한테 집 전화번호를 물어봐서 전화했다는데, 당연히 연락이 안 되었겠지. 밖에서 애들을 찾느라 한참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결국 이 가짜 금팔찌로 교환할 수밖에 없었어. 금액대가 맞는 물건은 이것뿐이었으니까. 그 후로 거의 40년이나 흘렀으니, 시간이 얼마나 빠른지 몰라. 그동안 비싼 보석도 많이 생겼지만, 내 마음속에서 가장 빛나는 보물은 바로 이 금팔찌야."

"저기 방에 널브러져 있는 윤이 아빠랑 도련님에게도 그렇게 기특한 시절이 있었네요."

"말도 마라 얘. 요즘은 손가락이 부러졌는지 연락도 잘 안 한단다. 그래도 쟤들이 남겨준 좋은 기억을 회상하며 사는 거지 뭐. 넌 그냥 매년 김장마다 와서 하나씩 가져가면 돼. 알았지? 하지만 금팔찌 만큼은 내가 땅 속으로 들어갈 때, 꼭 오른쪽 손목에 채워줘. 그러면 그날 쟤들의 따뜻한 손을 잡은 것과 똑같은 느낌일거야.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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