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학교에 발령 나서 연구부장일 하면서 만난 아이들, 개교식, 6학년 졸업식을 빛내기 위해 아침시간 확보하고 자투리 수업시간 활용해서 내가 직접 가르치고 연습시켜서 무대에 올렸다. 저 무대에 섰던 아이들이 이듬해에도 이 노래의 추억을 떠올리며 부르자고 할 만큼 노래가 주는 교육적 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합창은 초등 음악교육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분야다. 무엇보다 성취감이 크고 일단 아이들의 목소리는 성인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성역이다. 듣는 사람도 부르는 사람도 그 성역 안에 머무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아무 대가도 바라는 것도 없이 나와 아이들이 즐겁자고 벌린 일이었다. 그랬더니 남는 건 보람이었다. 아침마다 불러내서 연습시킬 때 힘은 들었지만 내가 배우는 것은 더 많았다. 파트 연습을 반복해서 시키고 개인 별로 음정 하나하나 봐주면서 지도하고 제대로 된 무대 경험을 주고 싶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막 시키고 했는데도 잘 따라와 준 아이들이 참 이쁘다. 솔직히 그들도 무대에서 내려올 때는 느끼는 게 많았을 것이라 감히 예상한다.
합창에서 중요한 건 일단 화음이다. 2부 합창을 한다고 치면 소프라노와 알토의 성부가 정확한 음정 안에서 표현이 되게 해야 한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각자 성부에 몰입하며 음정을 놓치지 않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게 아이들의 특성이다. 그림을 그릴 때 전체를 보질 않고 부분부터 그려나가는 것처럼. 그래서 다른 성부를 잘 듣지 못한다. 그런데 화음을 익히고(거의 외울 정도가 되어야 함) 반복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다른 성부의 소리가 들리면서 소리를 조절한다. 듣지 못하면 아이들은 대개 생소리로 자기 성부를 더 크게 하는데 집중한다. 그리고 일단 화음 감이 느껴지면성취감을 이루 말할 수 없이 느끼고 그때부터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합창교육이 주는 효과는 이런 것이다. 조절하기와 반복하기로 알 수 없는 벅찬 감정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끝나고 난 뒤는 허탈하다. 공연을 끝내고 분장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분장을 지우는 배우의 쓸쓸함이랄까. 언제나 학생 지도의 끝은 외롭다. 이 곡을 무대에 올렸을 때 피아노가 없었다. 신설학교이다 보니 제대로 갖추고 시작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다. 음정 지도를 멜로디언, 리코더 가지고 초라하게 시작한 공연. 그 점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잘하고 싶으면 결국 좋은 장비를 찾게 되는 그 심정일 것이다. 피아노 반주의 울림은 합창의 입체적 보이스를 배가시킨다. 반주는 그래서 합창의 50%이다. 연습하는 내내 없는 게 아쉬웠다. 음악교육 나아가 예술교육에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