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쉬는 것이 더 힘들어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루 24시간, 1440분. 이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분명 내 자유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의 가치는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을 흘려 얻을 정도로 귀중하다. 그렇기에 너무나도 자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것은 인간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자 행복일 테다.
평소 '짬을 낸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의어인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같은 표현도 있지만 그 '짬'에 이 '짬'이 들어가도 의도는 분명히 적용될 것이다. 모두들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시간이 없어서 운동을 못하고, 공부를 못하고, 친구들과 만나지 못한다. 잠깐이라도 짬을 내면 될 텐데, 그 자리에 '당장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가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은 표현이 될 것이다.
내 생각에 시간이 없다는 것은 18세기 산업혁명의 노동자들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교회의 의자 같은 데서 여러 명과 부대끼며 자는 것이 지금으로 치면 고급 호텔이니 역시 모두에게 가혹했던 삶이다. 하지만 이젝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우리에겐 시간과 자유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시간을 무엇으로 바꾸겠는가?
누군가에게 당장 해보거나 하고 싶은 일을 적으라면 평소 배우고 싶었던 취미인 요트, 요가, 명상, 헬스. 피아노, 볼링... 이렇게 열거하기도 힘든 다양한 취미들이 나오지만 쉬는 날을 어떻게 보내는지 살펴보면 유려한 인스타그램을 뒤집어 보거나, 저급한 인터넷 커뮤니티, 조회수를 끌어올리기 위한 자극적인 영상을 탐닉한다
나는 최근에 문득 위기의식을 느꼈다. 오랜만에 모든 커뮤니티를 다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사람을 만나도 핸드폰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만났다. 그에게 있어서 세상이란 커뮤니티의 하위 호환에 지나지 않은 걸까? 왠지 나도 점점 저렇게 될 것 같아 무서워졌다.
공포라는 감정은 요긴하다. 좋은 맛을 내는 장을 만드는 게 선조의 지혜가 아니라 불쾌하고 부정적인 무엇인가로부터 달아나는 본능이 바로 지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렇게 효율화한 시간으로 이제 짬을 내보기로 한다. 짬이 없어 할 수 없었던 일을 조금씩이나마 진행해보려 한다.
운동을 하든, 글을 쓰든, 커피를 내리든 나와 가족에게 도움이 될만한 걸 시작해보려고 한다. 너무 거창하지 않게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