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B62구역에는 극지방에 버려진 선체 같은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그을린 흔적이 있는 컨테이너 건물들은 어수선하게 자란 작약 나무들에 둘러싸여 한 조각씩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고, 앞뜰에는 메운 흔적으로 보이는 흙무더기들이 부서진 벽돌, 녹슨 주철 냄비와 함께 군데군데 봉분처럼 솟아나 있었다. 문짝이 반쯤 떨어진 집으로 들어가니 위태하게 달린 선반과 기울어진 철제 탁자가 바깥의 냉기를 그대로 빨아들이며 뱉어냈다. 구석에 놓인 작은 침대 위에는 먼지와 뒤엉킨 얇은 이불이 아무렇게나 놓여있었고 이불을 들춰내자 촛대 받침과 광대가 그려진 성냥 한 갑이 뒹굴었다. 반쯤 남은 그 성냥갑을 품에 넣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위엔 눈이 소복이 쌓여가고 사람들은 서둘러 걸음을 옮기며 하나둘 사라져 간다. 붐비던 거리에도 고요가 찾아왔다. 며칠 굶은 듯 보이는 길고양이 한 마리만 가련하게 젖은 몸을 털어내며 어슬렁거리는 것이 보였다. 여기쯤이었을 것이다.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성냥을 꺼냈다. 성냥 하나를 켜들자 눈앞에 펼쳐진 거리가 차츰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한다.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고대 성벽과 그 안에 남아있다는 전설 속 성인의 흔적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이 분주함과 활기를 뿜어내던 거리에서 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모여든 사람들은 연신 사진을 찍어댔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펼쳐놓은 바이올린 케이스에 떨구어지는 동전들의 소리가 점점 경쾌해졌다. 작고 마른 맨발의 집시 소녀가 연주하는 사라사테의 명곡들은 군중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신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맨발로 연주하는 게 좋았다.
내가 살았던 B62구역은 성벽 동쪽을 따라 난 길에서 시내 외곽으로 벗어나는 길을 통해 다다를 수 있었다. 상점이 세 개 정도 모인 간이휴게소의 철제 울타리 중간에 작게 만들어진 문을 통과하면 도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널브러진 폐목들과 잡풀이 돋아난 좁은 길들만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의미 없이 솟아있는 둔덕을 넘어서면 컨테이너 집들로만 이루어진, 방문자도 거주자도 아닌 이들의 공간이 등장했다. 내가 돌아올 때쯤이면 이 작은 마을 한가운데서는 늘 흥겨운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풍성한 주름치마를 입은 여자들이 팔을 하늘로 치켜들고 빙빙 돌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내게 연주를 청했다. 그들의 춤은 자유로웠지만 우아했고, 나는 그들의 몸짓에 맞춰 할 수 있는 모든 음악을 연주했다. 코렐리와 모차르트, 르네상스와 바로크, 소나타와 미뉴에트, 장조와 단조, 고전과 낭만, 변주와 가지런한 온음계, 도시와 사막, 방랑과 정착, 정열과 슬픔, 환희와 우울, 모든 것들을. 아, 마지막은 항상 사라사테였다.
난 ‘거위’라는 문패가 달린 컨테이너 집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의 과거는 자세히 알 수 없었으나 악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할머니는 바이올린 한 대를 가지고 계셨고, 난 기억이 닿는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를 통해 바이올린을 익혔다. 첫 젖니를 빼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바이올린 줄을 갈기 위해 난생처음 도심지에 나가볼 기회가 생겼다.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다른 곳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바이올린으로 채워진 악기상이었다. 절로 경건해지는 풍경과 내음 속에서 난 잠시 넋을 잃었으나 그 황홀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가게 주인은 동그란 뿔테 안경을 낀 땅딸막한 남자였는데 모멸에 찬 눈빛으로 할머니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바이올린이 어디서 났는지 물었으며, 할머니의 차분한 설명을 듣고 난 후 선불을 요구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배낭을 멘 여행자들을 보았고, 그 사이에서 파두를 연주하는 포르투갈 악사들을 보았다. 그들의 공연에 빠져들어 한참을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저들처럼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중얼거렸던 것 같다.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조율한 뒤 나에게 건네주셨다. 악사들은 바이올린을 들고 다가오는 집시 소녀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오랜 유랑을 함께해 온 사람들처럼 마법 같은 조화를 만들어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같이 할머니를 졸라 거리로 나섰다. 포르투갈 악사들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대신 그곳은 내 독무대가 되었다.
어느 날 저녁, 할머니가 막 불을 밝힌 초를 받침대에 받쳐 들고 머리 높이의 선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을 때 누군가 우리의 ‘거위 집’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연 곳에는 악기상 주인이 서 있었고, 그는 할머니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드릴 말씀’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내 입양을 제안했다. 요지인즉슨 내 재능을 썩혀서는 안 된다는 것과 양부모가 될 사람들이 정식으로 음악 교육을 받게 해 줄 것이란 얘기였다. 할머니는 거의 듣기만 하셨고, 그리 길지 않은 얘기가 끝나고 나자 돌아서는 그를 향해 고맙다고 인사했다. 며칠 뒤 B62구역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난 그 차를 타고 떠났다. 아예 외국으로 떠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때는 크게 상관없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두 번째 밝힌 성냥이 꺼져가며 눈 속에 파묻힌다.)
양부모님은 두 분 다 유명한 음악가였고 부유했다. 새아버지는 성악가였고, 새어머니는 첼리스트였는데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을 얻은 사람들이라 해도 좋았다. 내겐 근사한 새 바이올린이 생겼으며 개인교사도 생겼다. 꿈처럼 한순간, 음악가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이 갖춰져 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바흐의 협주곡을 좋아했고, 선생님은 파가니니 곡의 대가였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도 그들을 존경하고 따랐다. 또 그들을 위해 연주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쉽게도, 그들은 내가 사라사테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못마땅한 눈치였다. 사라사테의 곡을 연주할 때면 정돈되지 않은 리듬이 발생했고, 그들은 그 리듬을 통해 내 출신성분이 현재의 삶에 불순물처럼 스며든다고 믿는 것 같았다.
난 사라사테를 버렸다. 그리고 점점 더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다. 열아홉 살이 채 되기 전 국제 콩쿠르에서 세 번 우승했고, 그 뒤로 계속 불러주는 곳이 생겼다. 양부모님의 후광도 한몫했지만 내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악은 마치 혈맹처럼 피를 나눈 자들끼리 공유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큰 확신을 주는 존재였다. 내가 수양딸인 것을 아는 사람은 부모님과 아주 가까운 사람 말고는 없었다.
난 반듯하게 행동했고, 상류 사회에 익숙해졌다. 소속 에이전트와 매니저도 생겼다. 공연을 위해 이 나라 저 나라, 도시와 도시를 넘나들었고 늘 좋은 호텔, 그중에서도 높은 층에 있는 스위트룸에 묵었다. 3개 국어를 익히고 인터뷰에도 능숙하게 응했다. 화려한 실크 드레스를 입고 바이올린을 안은 채 활짝 웃는 내 모습이 내로라하는 잡지와 언론사 지면에 실려 널리 퍼져나갔다. 바쁘고 화려한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게 원래 내 것이었던 것 마냥 생각하고 있었다.
이십 년 만이었다. 난 전설 속 성인의 흔적을 간직한 그 도시로 돌아왔다. 그곳에 연말 공연이 잡힌 것이다. 왜 그동안 한 번도 이 도시에서 공연이 열리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묘한 흥분이 차올랐다. 지워버렸던 악보가 가장 화려한 악장으로 눈 앞에 다시 살아나고 있는 듯했다. 공연은 무사히 끝났다. 사실은 내 생애 가장 많은 찬사를 받았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난 파티에도 참석하지 않고 B62구역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 방랑의 자취 속에서 건져낸 성냥 한 갑만이 악보에 옮겨 놓지 못한 그 시절의 편린들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성냥을 아무리 밝혀도 할머니의 얼굴은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남은 성냥에 몽땅 불을 지르고 말았다. 불은 온 세상을 녹여낼 듯 환하고 따뜻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입을 다물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 할머니.”
불꽃 가운데 할머니가 나타난 것이다. 하얗고 긴 옷을 입은 채 이십 년 전 그 모습으로 할머니가 서 있었다. 당신을 만져보려 내민 손에 할머니는 바이올린을 건네주셨다. 망설이는 손길로 바이올린을 받아 들자 할머니 뒤로 포르투갈 악사들과 B62구역의 여인들이 나타났다. 그들과 눈을 마주쳤을 때 여인들은 춤을 추었고 악사들은 연주를 시작했다. 활질과 함께 내 입술에는 엷은 미소가 번졌다. 짧지만 웅장하고 낮은음의 트릴마저 분명하게 들려오는 사라사테 곡의 전주였다.
신을 벗었다.
신비한 불꽃 앞에 선 옛 이집트 왕자처럼. 그리고,
새해 첫날, 눈 내리는 전설의 도시에 ‘치고이너바이젠’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음악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강인 듯 폭포인 듯 은하수인 듯 굽이쳐 흐른다. 별이 빛나고, 지켜보는 것은 야윈 고양이 한 마리뿐이다.
(그림: 이원근)
<작가노트>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바이올린에 재능이 있었던 집시 소녀 이야기로 각색해 보았습니다(제목에 쓰인 '로마'는 집시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명칭으로 여기서는 지명을 뜻하지 않습니다). 원작과 다르게 소녀는 신분상승을 이룹니다. 그러나 성냥불이 갖는 의미, 즉 환상과 꿈, 또는 갈망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가난할 때뿐만 아니라 부유한 상황에서도 '영혼의 목마름'은 동일할 수 있음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이에 더해 성냥불에 '예술혼'의 의미를 추가하였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성공한 음악가가 된 소녀가 자신이 버렸던 집시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그리워하면서 어린 시절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거리에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에 빠져드는 장면입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은 사라사테(1844년~1908년)라는 스페인 태생 바이올리니스트가 작곡한 연주곡이며 '집시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녀가 가진 예술혼의 뿌리라 할 수 있는 B62구역은 마음속에 숨어있는 순수의 영역을 의미하며 생떽쥐베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의 고향이었던 소행성 B612의 이름을 변경하여 차용하였습니다. 순수는 방랑하는 집시들의 마을처럼, 오래 찾지 않으면 그을리고 텅 빈 곳이 될 수 있음을 첫 장면의 B62구역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B62구역과 더불어 '할머니'는 소녀가 가진 예술혼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며, 완성의 단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할머니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는 것은 오랫동안 그녀의 진정한 예술혼을 덮어두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마치 혈맹처럼 피를 나눈 자들끼리 공유한다고 믿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사람들의 단순한 믿음을 표현했다기보다 소녀의 예술혼이 양부모가 아니라 진짜 핏줄인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 성냥팔이 소녀는 죽음을 통해 할머니 품에 안기지만 이는 소녀의 가련한 처지와 극적인 대비를 이루기 위한 장치라 생각됩니다. 각색된 소설은 예술가의 삶을 그려낸 것인 만큼 살아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것이 더 극적일 것이라 생각되어 주인공에게 죽음을 선사하지는 않았습니다.
야위고 가련하게 젖은 고양이는 어쩌면 성냥팔이 소녀의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순수와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의 내면세계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안으로 초청된 독자이자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원작이 주는 쓸쓸한 감성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이 고양이를 언급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