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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앨리엇 May 26. 2024

왜 자살하지 않는가?

' 왜 자살하지 않는가? '

올해는 병원에 갈 일이 많았다. 잔병치레 없던 나도 병원에 가고, 가까운 가족부터 먼 지인까지 모두 병원에 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병원에 자주 가게 되면 ‘죽음’의 향기도 자주 맡게 된다. 환자들, 그리고 환자들의 가족들. 병원에 있는 모두가 슬프고 침울하다.


언젠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다.

‘누구나 죽는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 모두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 죽음이란 이렇게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막상 눈앞에 죽음이 찾아오면 우리는 죽음을 마치 낯선 것처럼 대하고 새삼스럽게 대한다. 슬프고 침울해한다.


' 왜 자살하지 않는가? '

왜 자살하지 않느냐고 카뮈는 물었다. 그냥 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사는 이유를 찾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삶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 하루 그 의미를 충족하는 삶을 살았는지 판단해야 한다. 49p


죽음의 역할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죽음이 있어야 한다. 왜 사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죽음의 역할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죽음을 떠올려야 한다.

 

처음 삶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고등학교 3학년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지? “

 

첫 질문은 시간이 지나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로 바뀌었다. 또 그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이지?”가 되었다. 이제 그 질문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지?”로 변했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1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직업도 여러 번 바뀌고, 만나는 사람도 대부분 바뀌었다.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 고민하며 일을 쫓기도 했고, 돈을 좇을 때도 있었다. 때때로 사랑을 쫒을 때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좋은 삶이란 어떠한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아니고 ‘지금 좋은 삶에 있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이다.


하루

그래서 요새는 하루에 관심이 많다. ‘주어진 하루가 어떤 상태에 있냐’가 ‘내 삶이 어떤 삶인가’와도 동일하기 때문이다. 하루에 즐거움만 있는 삶은 좋은 삶이 아니다. 반대로 하루 전체가 고되기만 한다면 그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하루에는 열심히 일하는 것, 열심히 쉬는 것, 열심히 놀고, 열심히 나누는 것 모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주어진 하루의 가능성들을 모두 느끼고 잠에 드는 것 그 자체가 좋은 삶이지 않을까?


인생은 그런 것이다. 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 인생 전체가 의미 있으려면 살아 있는 모든 순간들이 기쁨과 즐거움, 보람과 활홀감으로 충만해야 한다. 47p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자살하지 않는가? 내일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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