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찬우 Nov 27. 2020

마술사의 서사

결을 만드는 '기승전'의 힘

중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요즘도 시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때는 일주일에 한 번 C.A 시간이라는 자기 계발 수업이 있었다. 10개 안팎의 자잘한 동아리 중 하나에 필수적으로 가입을 해야 했고 그중에서도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부서는 단연 '마술부'였다. 다른 수업과 달리 매달 몇만 원씩 내는 정기 회비가 있었음에도 마술부는 늘 정원이 초과되어 선착순으로 학생을 가려 받았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마술을 배우게 되었다. 학교에 초빙된 강사는 나름 이력이 있지만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마술사였다. 그는 매주 금요일, 우리에게 특이한 마술도구를 하나씩 나눠주며 열과 성을 다해 마술을 가르쳤다. 처음 나는 카드를 섞고, 동전을 숨기고, 고무줄을 엮으며 쌓는 마술의 기초 과정에는 큰 지루함을 느꼈다. 그 나이 때 으레 상상하는 마술이란 이은결이나 최현우와 같은 유명 마술사들이 보여주는 '사람의 몸을 반으로 가르는' 화려하고 충격적인 퍼포먼스였으니까.



기초 과정이 끝나고 나자 강사는 별 것 없는 눈속임 트릭과 표현 과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마술의 경이로움을 만드는 트릭의 경우, 아주 미세한 손놀림까지도 컨트롤이 필요한 재능과 노력의 영역이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이탈했다. 수련의 과정은 지루했고 매달 납부하는 회비에 비해 얻는 것은 미미했으니까.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의 표현 과정이었다.


어느 정도 기술이 숙달되자 그는 몇 개의 마술을 가르쳐주며 이를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에만 대다수의 시간을 할애했다. 마술의 진수는 트릭이라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게 전부라고 믿었던 나는 그러한 커리큘럼에 의문을 가졌고 한 번은 가짜 손가락 안에 숨겨놓은 손수건을 꺼내는 마술을 배우며 그가 장장 40분가량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거는 법'을 가르치자 화가 난 나머지 이렇게 외쳤던 적이 있다.


"선생님! 관객에게 말을 붙이면서 손수건을 은근슬쩍 빼내든, 확! 빼내든 도대체 그게 무슨 차이가 있죠? 오히려 지루하기만 한데요? 빨리 다음 마술로 넘어가요! 더 화려하고 멋진 걸로요!"


뜬금없는 내 외침에 강사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 이렇게 말했다.



"마술을 성공적으로 연출하는 건 트릭이 아니라 '호흡'이야."


나는 그 말의 뜻을 채 이해하기도 전에 학년이 올라갔고 그 사이, 우리를 가르치던 강사는 이탈리아의 유명 마술대회에서 큰 성과를 거두며 유명세를 얻어 수업을 관두게 되었다. 마술부는 흐지부지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에도 마술을 연마해 나갔다. '작은 손'이라는 마술사에게는 꽤나 큰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빠르게 남의 눈을 속이는 트릭과 손기술에 재능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 마술을 유심히 관찰하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친구들과 부모님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더 좋은 카드와 특이한 마술도구를 사 모으고, 트릭을 배웠다. 실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고 마술은 내 특기가 되었다.


그렇게 대략 4년 정도를 마술에 푹 빠져 살았다. 어버버 거리며 마술을 전개하기에만 급급했던 중학생 때와 달리 고등학생의 나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며 태연하게 마술을 선보일 수 있는 정도의 경지까지 올라섰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주며 내가 확신했던 것은 대부분의 관객들은 아주 사소한 내 '말과 행동' 때문에 대놓고 보이는 트릭을 놓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 마술의 트릭을 알아내려고 기를 쓰는 사람일수록 내가 놓은 함정에 백발백중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마술의 핵심 트릭을 단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언젠가 읽었던 마술 책에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마술사는 소매에 무언가를 숨기지 않는다."



중학생 때의 내가 강사의 '호흡'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이 문구 또한 당시에는 일종의 선문답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마술에 익숙해질수록 그 뜻은 또렷해졌다. '마술사가 소매에 무언가를 숨기지 않는다'는 전제 자체가 마술의 핵심 트릭을 가리는 최고의 연막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술사가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거나 바꿔 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마술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짙은 '고정관념'은 오히려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든다. 마술사의 입장에서 소매를 의심하는 관객들은 손쉬운 먹잇감일 뿐이다. 그들이 소매에 눈을 고정하고 있는 사이 마술은 손 끝에서 시작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의심이 강한 관객일수록 마술의 성공률은 더욱 높아진다. 소매를 의심하는 게 느껴진다면 불편하다는 듯이 팔을 들어 올리며 소매를 더욱 강조해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외성' 때문에 마술은 사람들의 입에서 탄성을 자아낸다. 마술을 배워보면 알겠지만 막상 트릭 자체는 정말 별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 마술을 본 뒤 나를 '마법사'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대개는 '사기꾼'이니 '사기술사'니하는 비하적 표현을 들었으니 이 정도는 양반이다 싶었다. <해리포터>의 열렬한 팬이기도 했던 나는 내심 그러한 칭찬에 기분이 좋기도 했다. 스니치를 잡은 해리처럼 들뜬 표정의 내가 괜히 그 친구에게 "이건 마법이 아니라 마술이야!"라고 일갈했을 때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건넸던 답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마법 같은 걸?"



그녀는 본인이 '속았다'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요즘은 마술사(magician)라는 명칭보다는 일루셔니스트(illusionist)라고 불리는 게 더 맞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공연예술로서 일종의 '연출'인 마술은 초자연적인 마법과는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환상, 환각, 오해 등을 뜻하는 단어인 'illusion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자는 것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인 레슬링과 엔터테인먼트 스포츠인 프로레슬링의 차이 정도라고 보면 될까.


내가 마술을 시작한 이유는 누군가를 현혹시킬 수 있다는 이기심 때문이었다. 누구나 감화와 감흥에 큰 보람을 느끼니까.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그날 배운 마술을 엄마 앞에서 시연하고,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고, 여자 친구에게 이벤트 하는 것은 내가 누군가의 감정을 움직이게 했다는 보이지 않은 증거니까. 하지만 마술은 내게 그보다 더한 기승전결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마술이 가진 최후의 반전, 1초 남짓으로 뒤바뀌는 사람들의 표정을 만들기 위해선 차근히 쌓아 올린 '5분의 서사'가 더 견고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으니까.



지금의 나는 마술을 하지 않는다. 가끔 카드가 있는 자리에서 몇 가지 마술을 보여주며 사람들을 놀라게 할 뿐 마술을 더 깊게 배우고 연구하진 않는다. 기억나는 마술도 이제는 두어 개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호흡'을 이해한다. 결을 만드는 기승전의 중요성을 안다. 기를 쓰고 마술을 파훼하려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속이기 위해 내 말과 행동을 통해 가림막을 만들 줄 안다.


누군가 내 안의 서사를 이해하기 위해 마술의 관람 에티켓을 어기고 공연 방해를 감행할 것이라면 이렇게 충고하고 싶다. 여러분의 민첩함은 날카로운 눈이 아닌 예민한 귀에 있어야 한다. 내 말의 정수는 의외로 아주 사소하고 쓸데없는 곳에 조용히 감춰져 있으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