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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우 May 23. 2021

강력 반대! '무한도전 시즌2' 제작

우리에겐 그들을 그리워할 자격이 없다.

"<무한도전>은 내 학창 시절의 유일한 낙이었다."



현재 미디어 시장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고 있는 유튜브 속 과거 무한도전 영상들에 자주 달리는 댓글 유형이다.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무도 키드'였으니 충분히 인정하는 부분이다. 우울증으로 한창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내 고등학생 시절, 무한도전과 힙합 음악은 내 삶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진지하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래퍼'와 '무한도전 제 N의 멤버'가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다. 지금까지도 연락이 닿는 대학 친구들은 아직도 내 첫인상을 무한도전으로 기억한다. 스무 살의 나는 서로의 관심사를 나눌 때마다 열변을 토하며 무한도전의 멤버가 되고 싶은 이유를 스무 가지는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나에게 있어 무한도전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다. 유명 래퍼가 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고서부터는 막연하게 예능 PD가 되고자 했으니까. (사람을 웃기는 재능을 어느 정도 갖췄지만 개그맨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에 그나마 연출이 낫지 않을까 착각했다.) 아쉽게도 예능을 만드는 PD가 되진 못했지만 나도 이제는 다른 분야의 PD가 되었다. 무한도전은 내게 직업도 만들어 준 것이다.





무한도전은 대한민국에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할 역대급 예능이다. 여러 표절 시비가 붙긴 했지만 이 부분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장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 반응만 봐도 그렇다. 그 시절의 예능을 그리워하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도 많다. TV가 망해가는 미디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콘텐츠들이 망해가고 있다는 말에 짐짓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당장의 '매운맛'이 부족해져서일까? 아니다.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불편함'이라는 이름의 메스를 들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난도질하고 있지만 강력한 킬러 콘텐츠를 품은 프로그램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절박함'이 아닌가 싶다. 관찰 예능 위주의 방송이 꽤 오랜 시간 미디어를 잠식했고 가만히 앉아 연예인들의 일상을 구경하는 패널들의 반응을 또 한 번 로 걸러 구경해야 하는 환경에 시청자들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TV 속 예능인들은 더 이상 누군가를 웃기려 들지 않으며 시청자들은 그 타성에 따라 웃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예능'은 보편적 정의가 아닌 사전적 정의 그대로 재주와 기능에만 머무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후배 개그맨들이 설 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 MC 유재석의 읍소는 예능 PD가 되고자 했던 내 마음속 어딘가를 찌르르 울린다.



물론 이 풍토가 관찰 예능의 잘못은 아니다. 어쨌든 많이 팔리는 방송이 좋은 방송이라고 믿는 나는 그러한 예능 프로만을 양산해내는 방송사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최근의 트로트 열풍만 봐도 그렇다. 젊은 층이 주로 소비하는 유튜브 반응만 봐도 넘쳐나는 트로트 프로에 아주 큰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대다수임에도 여전히 TV 방송에서는 트로트가 잘 팔린다. 이러한 괴리감에 가끔 나는 '유행'이라는 것에 과연 실체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반면 기성세대에게는 <프로듀스 101>과 <쇼미 더 머니>의 흥행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게 정말 세대 차이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가 현재 느끼는 <무한도전>에 대한 향수도 범국민적인 여론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겠다. 과거 무한도전에 한창 빠져있던 나에게 아버지는 "저런 시답지 않은 농담 따먹기나 하는 바보상자나 들여다보고 있으니"라고 내게 일갈했으니 말이다. 정말로 '우리'는 무한도전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심의와 검열을 쉽게 피할 수 없다는 공중파 예능, 그보다는 덜하다는 케이블 예능, 또 그보다는 훨씬 덜하다는 웹 예능으로 서서히 판을 옮겨 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로서 TV 예능은 가장 큰 파급력을 지녔다. 아직까지는 거대 방송사들이 제일 큰 콘텐츠 자본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영상의 때깔은 제작비에서 나온다. 정종연 PD의 <대탈출>은 연출 또한 훌륭하나 그 압도적인 세트의 위용이 성공에 큰 한몫을 했다.



물론 작년의 <가짜 사나이>와 올해의 <머니게임>을 통해 웹 예능 또한 새로운 판 짜기에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 인구와 연령대로 비교했을 때 TV 예능의 아성은 여전하다. 뒤늦게 유튜브에 합류한 거대 방송사들은 각자의 마케팅에 따라 여러 채널들을 성공적으로 론칭했고 지금에 와서는 1인 크리에이터들보다 방송사의 자본이 투입된 하위 채널들(본 TV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송출하거나, 세계관이 연장되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더 주목받는 듯하다. 유튜브 또한 TV의 멀티가 된 것이다.



그 중심에 <무한도전>이 있다. 2018년 종영 이후로도 끊임없이 '시즌2' 제작 요청이 빗발치는 이 프로그램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작사인 MBC와 몇몇 시청자들 때문에 막을 내렸다. 담당 PD인 김태호의 휴식 요청(시즌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MBC와 어느 순간부터 어떤 콘텐츠를 내놓던 불편함의 돌팔매질을 서슴지 않던 '무줌마'들. 물론 프로그램 내의 주력 멤버들의 논란과 구설수, 번아웃 등의 이유도 있겠으나 멤버들 대부분이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만큼 더 큰 책임감에 스트레스를 느낀다'라고 말한 점에서 정말로 무한도전을 애정 하는 시청자였다면 이들을 위한 배려와 지지,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동력을 잃었고 분명 후반부 어느 순간부터는 객관적으로 재미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꼽는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지나치게 몸을 사렸고 새 멤버들은 융화되지 못했으며 아이디어는 고갈됐다. 장수 프로그램의 한계였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흐지부지 사라졌다. 박수칠 때 떠나지 못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에 걸맞지 못한 쓸쓸한 퇴장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자들은 꽃이 지고 나서야 봄임을 깨달았다. 떠나고서야 박수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언제 욕했냐는 듯이 그때의 우리를 익명의 이름으로 비난하는 또 하나의 역설을 만들어냈다. '무줌마'를 욕하는 무줌마가 된 것이다. 무한도전 폐지의 가장 큰 잘못은 컴백을 간절히 바라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고? 나를 비롯한 '무도 키드'인 우리 모두 그랬다. 변명하지 말라.




최근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JTBC의 <할명수>를 보게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예능인인 박명수가 유튜브를 하다니. 썸네일 몇 개를 훑어보다 같이 무한도전을 진행했던 정준하와의 에피소드를 시청했다. 분명 JTBC 프로그램임에도 무한도전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그들도 우리처럼 무한도전을 무지막지하게 사랑했나 보다. 종종 무한도전 이야기를 하던 tvN의 <유퀴즈>가 오버랩됐다.



겨우 3년이 지났지만 오랜 과거가 된 것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는 출연자와 시청자들. 나는 그럴수록 무한도전 시즌 2가 제작되지 않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우리의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두고 끊임없이 이 프로그램이 재평가의 재평가를 받았으면 한다. 불멸의 마스터피스들은 제작자가 사망하고 난 뒤에야 더 큰 각광을 받는다는데. 무한도전은 그보다 더한 사랑을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받고 있다.


무한도전에는 없는 짤이 없다.



이 말이 그를 방증한다. 그 정체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놀면 뭐하니?>는 지금의 멀티 페르소나 시대상에 맞춘 유재석의 1인극이라 볼 수 있지만 차라리 여기에 더 큰 관심을 보여주자. 또, 그 시절 무한도전 멤버들의 현재에 주목하고 그들의 커리어에 더 많은 박수를 보내주자. 순수히 '재미'만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을 마다하지 않던 그들이 지금 만들어가고 있는 서사에 더 집중해주자. 나는 그것이 <무한도전>을 향한 우리의 애정과 존경을 가장 멋들어지게 표출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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