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꿈치 골절 환자의 이해

by the그레이스


지난 7월,

장기간의 여름 휴가를 앞두고 무척 들뜬 나는,

아이들의 하교시간에 맞춰 휴가 떠날 준비를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 계단에 걸려 넘어졌고, '오른 팔꿈치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처음 방문한 병원에서 반깁스로 처치를 해줬고

그 팔을 하고 여름휴가지인 전라도를 사나흘간 신나게 휩쓸고 다녔다.

그리고 붕대를 바꾸기 위해 찾아간 낯선 곳의 병원에서

2주 이내에 수술하지 않으면 예후가 좋지 않다...

뼈가 자연히 붙기엔 나이도 많다(?)는 말을 듣고

급히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수술결정을 20분만에 하다니... 제 정신이 아니었을까.


며칠 간 못씻을 각오를 하고 정갈하게 몸단장을 하고 다섯 시쯤 입원을 했다.

낯선 사투리 어르신들 사이에 서울말 쓰는 젊은 주부가 들어왔다고

간식도 나눠주고, 누울 틈 없이 말을 붙여주시던 어른들.

덕분에 긴장감을 덜었지만 심란함은 가시지 않았다.

아이들은... 내 일은... 남은 휴가는.... 아-------------휴.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그냥, 시간에 맡겨야했다.


다음 날, 핀 두개를 박아 골절된 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하고,

내 팔꿈치엔 10센티 가량의 상처가 생겼다.


팔을 다치고 나니 생각보다 불편한 일이 너무 많았다.

진짜 답답한 날엔 '사람의 팔이 세개였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무쇠팔 보조기로 무장한 나는

만난 사람에게 순간순간 나의 불편함을 마주하게 하고

'아~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선사했다.

그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절대 알수 없는 귀한(?) 경험담 몇 가지를 털어놓는다.


KakaoTalk_20211221_121735878_02.jpg 수술하고 첫 드라이브. 포항에서 만난 행운의 무지개


1)단정하지 못한 모발상태


한 팔로 머리를 감는 건 쉽지 않다.

고정된 샤워기가 환상적인 각도로 내 정수리를 향해 물을 뿜어주며 그나마 불편이 덜하지만

떡!!!!!!하니 고정된 샤워기. 높낮이 조절 안되고, 손으로 들고 해야하는 샤워기는 정말.... 있어도 못쓴다.

(여름 휴가지 곳곳...일부의 공간에서는 머리 감는 걸 포기했었다)


그리고 긴 머리의 경우, 나 혼자 머리를 묶지 못한다.


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병원에서도 아침에 눈뜨면 머리 묶어 줄 사람부터 찾았다.

땀에 젖은 머리를 묶어주는 건 보통사랑이 아니면 안되지만, 나는 간절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초등고학년인 아들은 포니테일, 똥머리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사랑받을 거 같다.


-> 동네에 산발하고 돌아다니는 누군가가 있거든,

'정상이 아니네??' 라기 보다는 '팔이나 어깨가 아픈 사람이군!' 하고 이해해주시길...


2)칫솔과 콧구멍의 잦은 만남


오른 손 잡이인 사람은 왼손으로 뭔가를 해본다는 건 정말 낯선 일이다.

가장 웃기면서도 슬픈 건...양치할 때마다 왼손 힘조절이 안되서

칫솔이 콧구멍으로, 오른쪽 볼로 질주한다는 거.

아... 이때가 참...거울 속의 내가 웃기면서도 슬프더라.


->전동칫솔 선물 좋아요. 가글제품 좋아요. 입냄새나도 참아주시면 더 좋아요.


3)단추 청바지, 단추 블라우스의 재발견


내가 편한게 좋은 거라고... 밴딩 청바지에 라운드티가 교복이던 나였다.

수술을 하고

오른손에 투박한 보조기를 착용하느라 한쪽 팔이 타노스 같았다.

뼈가 붙기를 기다리는 동안 팔을 움직일 수 없었고

손목도 꺾을 수가 없어서 옷을 입고 벗는 건 에어콘 아래서도 땀나는 일이었다.


헐렁한 티셔츠. 고무줄 바지, 잠옷같은 원피스가 나의 교복이 되었다.


그런데...왜 갑자기

핏 좋은 청바지에 할랑할랑한 단추 블라우스를 입고 싶은지.

웹서핑을 하다가 장바구니 터지게 옷들을 담았다.

핏 좋은 바지는 잠그거나 올릴 수 없고,

블라우스에는 팔이 안껴지고...단추는 못잠그겠고...

과연, 앞으로 입을 순 있을까? 우울감이 생기더라.


차림이 초라하면 집을 나서기가 싫다.

누굴 만나는 거도 싫다.

그래도 꼭 만나야할 사람이 있고, 일상의 환기가 필요하지만

그럴 때도 차림 때문에, 몇 십번 나갈까, 말까 고민하게 된다.


->실내, 프라이빗한 장소에서 만나주세요.

정말 골라 입은 옷이 후줄근해 보이는 날엔 '내가 왜 다쳐가지고!!!'

다친 첫날부터의 슬픔과 원망이 다 몰아쳐요.


4)먹을 때 쳐다보지 마여...!!!


아이들에게 세 끼를 배달 음식을 줄 수 없기에

엄마인 나의 최선책은

잘라진 식재료를 주문하고

왼손 가위질로 아주 어설프게나마 요리를 하는 거였다.


한가지 웃긴 건,

소스 흐르면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쓱- 닦아서 습관처럼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깨닫는데...아...안닿는구나....

결국 물로 씻어내는데. 그럴 때마다 '빨아먹는 습관은 곧 고쳐지겠군!'하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함께 식사를 하면, 아주 볼만하다.

막내보다 내가 더 흘리고... 못 집고...


왼손으로 젓가락을 들고 먹어보려 하는데

'내가 이렇게라도 먹겠다고 용쓰네...'하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숟가락만 쓰는 요리를 먹어봤다.

말도 못하게 흘리고, 숟가락과 입의 각도, 박자가 안맞는다.


포크를 쓰기 시작했다.

쌀국수를 먹다가 더 슬퍼졌다.


집게를 사용했다.

그런 내가 싫어졌다.


어설픈 각도, 박자가 안맞는 아이들의 행동은 무한히 귀여운데,

나의 그런 모습은 정말...싫었다.


맞은 편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의 시선도 부담스럽고,

'잘라줄까?''놔줄까?''집어줄까?'

관심도 부담스럽더라.


-> 밥 사주겠다는 약속은 미뤄주세요.

커피만 마셔요. 우리



5)할 수 있는 건 내가 한다!


아래층 할머니를 만나서 잔소리를 들었다.

그 손을 하고 운전한다고...


사실 걷다가 넘어져 다친 거라

걷는 게 더 무서운 시기였다.

길가의 보도블럭이 튀어나온 게 무섭고,

비오는 날이면 미끄러질까 무섭고,

묵직한 보조기 차고 걷는 건 정말 덥고, 무거웠다.


하지만, 내가 오른손을 다쳤기에

왼손으로 운전석 문을 닫을 수 있었고,

더운 여름 아이들 학원 픽업을 문제 없이 해냈다.

한손이지만 가위질도 가능해서 아들의 생일 미역국도 끓였고

한 손 생활이 익숙해지니 청소기도 할 수 있고,

아이들 샤워도 시킬 수 있다.

심지어...한 손으로 대본쓰는 일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의 일들은 해냈다.


주변에서 꼼짝말라고 하지만

쪼~~~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니

좀 사는 거 같았다.

불편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은 혼자 이겨내야 할 불편함이에요.

할 수 있는 건 해낼 수 있도록 바라보다가

뭔가를 떨어뜨리면 잽싸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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