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려는 겨울에게

by the그레이스

안녕, 겨울아?

오늘도 네 덕에 거실 슬리퍼 속의 내 발은 얼음장이구나.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너에게,

문득 하고 싶은 얘기가 생겼단다.


흙벽과 나무 마루로 지어진 한옥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겨울'이란 이름을 가진 너를 최대한 짧게 만나고 싶었다.

눈이 마당 가득 쌓이면 빗자루 질로 처마 아래에 길을 내야 했어.

여차하면 남아있는 눈이 얼어서 화장실 다녀오다 미끄러질 수 도 있으니

방바닥보다 더 깨끗히 비질을 해야했었어.


과일을 파시던 아빠엄마는 담요로 덮어놓은 배가 얼었다며

못파는 과일을 우리에게 갖다주셨지.

아랫목 두꺼운 이불 아래에 누워있으면

고등학생 언니가 투명하게 얼어버린 배를 얇게 썰어 입에 쏙! 넣어줬단다.

그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란!!!

지금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도 그런 기분으로 한겨울에 아이스크림을 찾는 거 같아.


내가 태어나서 너, 겨울을 간절히 기다렸던 건 딱! 한 해였나봐.

둘째 출산일을 잡은 그 날.

겨울이 깊어지고 해가 바뀌고 눈까지 오던 어느 날,

난 둘째 아이를 만났어.

오똑한 콧날에 한없이 여리해보이던 보물을 품에 안았지.


겨울에 태어나 어느새 아홉살이 된 그 아이는

매일 너를 기대한단다.

한 낮의 햇살이 따뜻해질 수록 너를 기다린단다.

1년이 365일이란 걸 알았을 때,

며칠이 지나야 다시 겨울이 오는지 보려고

달력을 저~ 뒤까지 넘겨 새어보는 아이란다.


우리 둘째가 이렇게 좋아하는 겨울아~

창밖에 목련이 피어날 준비를 마친 것 같아.

화단의 풀들도 초록의 눈을 장착했더라.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너를 좋아하는 우리 딸이,

더 얇고, 가벼운 옷을 입겠다고 매일 아침 나와 신경전을 벌인단다.

이제 봄에게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겠니?


예쁜 봄도 보고, 뜨거운 여름도 겪고, 아름다운 가을도 느낀 후에

다시 너를 사랑하러 기다릴께.


이제, 내 손발을 좀 녹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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